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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개념 웹툰’이 포털로 돌아왔다

등록 2014-01-12 15:19수정 2014-01-13 15:32

잉어왕
잉어왕
‘잉어왕’ ‘미선 임파서블’ ‘송곳’ ‘곱게 자란 자식’ 등
국정원 대선 개입·철도 민영화 등 현안 풍자 감칠맛
묵직한 주제로 ‘웹툰은 심심풀이’라는 선입견에 변화
‘민영화 다방’ ‘주어 없음’ ‘댓글 달아라’…. 요즘 웹툰에서 쏟아내는 깨알같은 풍자다. 게다가 노동 문제나 빈곤, 역사를 본격적인 주제로 삼는 묵직한 웹툰들이 등장하고 있다. 심심풀이나 시간 때우기용으로 여겨졌던 웹툰들의 변화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제공하는 <노점 묵시록>(백봉 작)은 노점상들의 암투와 수련을 그린 만화다. 지난 12월25일자로 올라온 8화에선 한 노점상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꼼수를 쓴 붕식이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난 분명히 ‘운암노점 숙수가 되면’이라고 했지 ‘내가 운암노점 숙수가 되면’이라고 안했단 말이지” 특검수사 당시 MB가 광운대에서 “BBK를 설립 큰 수익을 내고 있다”고 강연한 동영상이 공개됐을 때 나경원 전 의원은 “나는, 내가”라는 “주어”가 빠져 있어 MB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던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지난 12월21일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하는 <잉어왕>에는 주인공이 애써 침대를 들어내고 청소하다가 ‘민영화 다방’이라고 쓰인 라이터만 발견하고 허탈해하는 장면이 나왔다. 철도 민영화가 우리 사회의 쟁점으로 떠올랐던 시기,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화에 깨알같은 풍자를 끼워넣은 것이다.
미선 임파서블
미선 임파서블

네이버 연재 웹툰 <미선 임파서블>(이수민 작)은 국정원 비밀 요원이 평범한 교사로 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그린 웹툰이다. 그런데 지난 12월29일 올란온 33화에는 국정원 사이버팀 상사가 직원에게 “이럴 시간 있으면 댓글이라도 하나 더 달라”고 나무라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요즘은 댓글 지우는게 국정원 사이버팀이 주로 하는 일이란다. ‘본격 국정원 홍보 웹툰’쯤으로 여겨졌던 이 만화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을 풍자하자 만화 게시판이 북적였다. “만화에서 정치색은 보고 싶지 않다”는 비판과 “왜 우리나라 예술가들은 (사회참여)하면 안되냐. 부정선거는 정치 편향 이전에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건데”라는 찬성이 엇갈렸다.

송곳
송곳
‘정치 무풍지대’처럼 여겨졌던 네이버도 변하는 모습이 보인다. 지난 12월17일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는 최규석 작가의 <송곳>은 노동조합 활동을 소재와 배경으로 삼은 만화다.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전면에 내세운 이 만화는 그동안 보수적이라는 평을 들어온 네이버 웹툰에 리얼리즘 작가 최규석씨가 연재를 시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였다. 지난 6일 올라온 4회에서 <송곳>의 주인공은 “판매사원들을 대량 해고하라”는 상사의 지시를 거부한다.

웹툰에선 낯설지 몰라도 만화는 본래 참여적 매체다. 1980년대 리얼리즘 만화가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고 다른 매체가 하지 못하는 말을 퍼뜨리자 정부는 만화 작가를 구속하고 만화 작품을 압수하기도 했다. 웹툰 시대 지금까지 만화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사회 중심에서 밀려난 후진 인생’으로 자학하고 냉소하는데 그쳤지만, 점차 묵직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사회 한가운데로 들어오고 있는 조짐이다.

곱게 자란 자식
곱게 자란 자식
다음 웹툰 <곱게 자란 자식>(이무기 작)은 일제 강점기 시절, 전라도의 한 동네를 배경으로 악랄한 친일파에 맞서 동네 주민들이 일어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 만화를 그린 이무기 작가는 전작 <인생이 장난> 등에서 ‘원조 병맛’을 선보인 사람이다. 이렇게 돌아온 ‘개념 웹툰’은 80년대 민중만화와는 또 달랐다. <곱게 자란 자식>은 진한 사실 묘사, 찰진 전라도 사투리, 애끓는 사연들 사이사이 ‘병맛 개그’로 독자들의 뒷통수를 친다. 작가가 보인 뜻밖의 성장과 무거운 역사적 주제에 현재적 숨결을 불어넣는 솜씨에 진보든 보수 성향의 독자든 이의없이 엄지손가락을 추켜드는 추세다. 보수적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이건 레전드”(닉네임 b***)라는 칭송이 나왔다. 한 누리꾼(아이디 w****)은 독자 게시판에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현실, 역사를 기억하고 힘을 기르고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바꿔나가자”는 댓글을 남겼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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