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역에 100% 동화, 그때 ‘아우라’ 나오죠”
미쳐라…전혀 다른 사람처럼
빠져라…배역 이해할 때까지
적어라…비하인드 상상하며
질러라…볼펜 물고 발성연습
미쳐라…전혀 다른 사람처럼
빠져라…배역 이해할 때까지
적어라…비하인드 상상하며
질러라…볼펜 물고 발성연습
그가 들려준 ‘나의 연기학개론’
지난 28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김 교수, 아니, 배우 김명민(40)씨를 만났습니다. ‘이순신 장군’이자 ‘장준혁 과장’이자 ‘강마에’로 안방을 주름잡았던 그분 말입니다. 사람 몸을 숙주로 삼아 소장에 숨어 영양분을 공급받고 결국 사람을 탈수시켜 죽게 만드는 가상의 기생충 ‘연가시’를 소재로 한 영화 <연가시>(5일 개봉·사진)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가닥의 지렁이처럼 생긴 기생충이 득실대는 영화는 익히 봐 온 가족 신파 드라마로 흐르면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하지만 김명민씨는 연가시에 감염된 가족을 살릴 치료제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재혁’ 역에 몰입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인터뷰 70분의 대부분은 그의 연기론을 듣는 ‘김 교수의 연기학 개론’ 수업 같았습니다. 수업을 들은 학생의 자세로 그의 연기 철학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김 교수의 연기학’이 <연가시>에선 어떻게 구현되는지 영화를 직접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래의 모든 말은 괄호 안을 제외하고는 김 교수의 말 그대로입니다.
1. 아우라는 진정성에서 나온다 배우가 극중 인물 자체가 됐을 때 아우라가 나옵니다.(아우라는 ‘작품 원본’에서만 발견되는 어떤 고유한 분위기를 말한다.) <머시니스트>의 크리스천 베일이 정말 불면증 환자처럼 보일 때,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성대가 상하면서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을 때, 그런 데서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배우가 인물에 동화되지 않으면 관객들은 영화 내내 ‘배우’만 보게 됩니다. 작품에서 이야기하려는 삶을 느끼진 못하는 거죠. 인물에 완전히 동화돼야 관객에게 진정성이 전달됩니다. 배우가 주는 감동은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역할인데 같은 연기를 반복하면 식상할 수밖에 없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 아내가 죽었을 때 오열하는 톤은 다릅니다. 그걸 똑같이 하면 식상한 거죠. 배우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 잊힙니다.
2. 인물을 완전히 이해하라 인물과 완벽히 동화되려면 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합니다. 강간범이든 살인범이든 자신만의 명분과 타당성을 찾아내야 합니다. 스스로가 수긍이 되면 눈빛부터 달라집니다. 그러면 관객도 동화가 됩니다. 내가 못 받아들였는데 남을 설득시키기란 불가능합니다. 인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물론 어려워요. 저도 예전 <베토벤 바이러스> 대본을 처음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무슨 이 따위 캐릭터가 다 있나. 완전히 만화 속 캐릭터에다 막말을 일삼는데 어떻게 공감을 끌어내나’ 고민했죠. 그래서 아예 ‘강마에는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아마데우스>, <카핑 베토벤> 같은 영화를 참고한 게 제 해법이었죠.
3. 인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손글씨로 써라 인물을 이해하는 비법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쓰는 겁니다. 큰 도움이 됩니다. 대본에선 사람의 인생이 극히 일부만 보이지 않습니까?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떤 가정에서 컸는지 등을 상상해서 그의 인생을 손으로 노트에 씁니다. <연가시> 때도 재혁에 대해 썼죠. 재혁은 촉망받는 교수였다가 주식에 잘못 손을 대면서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된 사람입니다. 영화 초반엔 가족에게 짜증만 내고요. 영화에 설명되지 않은 재혁의 인생이 어땠는지 상황과 장면을 구체적으로 씁니다. 쓰면서 상상을 한다는 게 중요해요. 머리로만 생각하면 지워지는데, 글로 쓰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거죠. 아,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일기도 안 쓰는걸요. 노트는 오로지 연기를 위한 것이죠.
4. 화장실의 10분은 훌륭한 발성 연습 시간이다 배우에게 목소리와 대사, 정말 중요합니다. 대사가 받쳐주지 못하면 표현이 안 됩니다. 캐릭터에 따라 다양한 톤을 구사해야 변신할 수 있는 겁니다. 밥을 먹는 것처럼 매일 발성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저는 주로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 볼펜을 물고 책을 읽으며 연습합니다. 우리 집 화장실엔 항상 책이 있습니다. 신문이든 잡지든 글씨가 씌어 있으면 다 됩니다. 볼펜을 꼭 물어야 하냐고요? 그래야만 발음이 정확히 나와요. 사람마다 유독 안 되는 발음이 있는데 볼펜을 물고 하면 또렷하게 나옵니다.
5. 그의 꿈 연기를 더 잘하고 싶습니다. 동료에게 인정받고, 후배에게 귀감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 걱정은 끝이 없습니다.
<간첩>(올해 추석 개봉)을 촬영할 땐 모니터에 비친 제 등을 보고 ‘등으로 감정을 잘 전달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유명 감독님들과는 작품을 할 기회가 아직은 없었는데, 제 역량을 더 뽑아낼 수 있는 베테랑 감독님들과도 작업을 해 보고 싶어요. 참, 살을 빼는 건 다신 안 하고 싶습니다. <내 사랑 내 곁에> 때 정말 힘들었죠. 살을 다시 찌우는 게 너무나 고통스럽더라고요.
글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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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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