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교실>
해부학교실
여름철마다 회자되는 공포 이야기 하나. “해부학실습실에 갇힌 학생이 손톱으로 문을 긁다 죽었다!”
이 이야깃거리를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 <해부학교실>이다. 의대 본과 1학년 선화(한지민), 병원 이사장 아들 중석(온주완), 따뜻한 성격의 기범(오태경), 공부벌레 은주(소이), 덩치와 달리 심약한 경민(문원주), 은주와 경쟁관계인 지영(채윤서)은 해부학 실습 팀원이다. 실습 첫날, 젊고 예쁜 카데바(해부용 주검)를 배당받은 이들은 이상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갑자기 팀원들이 차례로 죽어간다. 이 모든 것이 카데바와 관련돼 있음을 직감한 선화와 중석, 기범은 카데바의 과거를 추적해간다.
한국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공간인 해부학실습실, 여기에 나뒹구는 주검과 사실적인 해부장면, 살인사건을 교묘하게 섞었다면? 아마 가장 끔찍한 공포영화 중 하나가 됐을 것이다. <해부학실습>은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귀신의 등장이나 잔인한 살육 장면, 카메라 워크를 이용한 깜짝 놀랄 만한 설정 대신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과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주목했다. 손태웅 감독은 “극을 관통하는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녹아 있다면 직접적인 살인보다 살인이 벌어지는 과정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소신을 밀고 나갔다.
그래서 사실적인 화면 구성과 음향에 공을 들였다. 각 의과대학 실습실을 본떠 130평 규모의 해부학실습실 세트를 짓고, 한 구당 4천만원짜리 카데바를 포함해 총 5개의 모형을 만들었다. 보는 것만으로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실습실과 카데바, 여기에 더해지는 음산한 음향이 이 영화만의 공포 코드다. 실망하지 마시라. <해부학교실>은 귀신이 등장하지 않아도, 잔인한 살육의 장면이 없어도 ‘공포영화’ 장르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니까. 물론 섬뜩한 장면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다소 미련이 남을 수도 있다.
뻔한 설정과 엉성한 이야기틀, 단선적인 인물 설정, 그리고 카데바의 과거를 추적하는데 필요한 키를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친절하게 드러낸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무모하리만큼 공포영화의 관습적 표현들을 극복하려 했던 감독의 뚝심, 공포물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11일 개봉.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청어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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