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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악~ 우릴 버린 채 전쟁이 끝났다고?

등록 2007-07-01 17:23

 〈제9중대〉
〈제9중대〉
제9중대
전쟁은 언제나 핏빛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반드시 총을 겨눠야 한다. 두렵다고 주저하거나 망설인다면? 나와 동료가 죽음에 내몰린다. 제아무리 선량한 인간이라도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면 의지와 상관없이 살인병기가 된다. 전장의 피비린내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한 뒤에야 사그라든다. 그래서 전쟁은 언제나 무섭고, 슬프다. 그런데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몬다.

〈제9중대〉는 전쟁영화지만, 다른 영화들처럼 총성이 난무하거나 잔인한 살육 장면에 앵글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9중대 대원들이 전장에 배치되기 전 거치는 3개월의 훈련소 생활에 더 무게를 두고, 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9년째인 1988년, 끝이 보이지 않는 대결의 접점에 젊은 청년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어느 겨울밤 화가를 꿈꾸는 예술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교생 실습생, 결혼식을 치른 지 하루 만에 소집되어 온 새신랑, 어린 딸을 둔 가장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자신의 꿈과 이별하지만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이유”도 모른 채 훈련소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전쟁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모조리 빼앗아갔다. 지독한 훈련생활을 거치며 순수한 교사 지망생 바라비의 몸은 어느새 근육질의 싸움병기로 단련되어 간다. 화가를 꿈꾸었던 지오콘다는 붓보다 총을 잡는 게 더 익숙해졌고, 현실주의자 류타예프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하나둘씩 체득해 나간다. 그 안에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았던 9중대 대원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게 된다.

아프간 침공 동원된 소련 젊은이들
화가·교사 꿈 대신 총들고 살육훈련
무의미한 전쟁에 파괴된 인간 그려

 〈제9중대〉
〈제9중대〉
이들의 전투지는 아프간의 자르단 고지 3234. 후방에서 수송부대를 보호하는 것이 주임무다. 이 9중대의 가장 큰 비극은 본 부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 철수하라는 무선통신 명령을 받지 못하고, 고지를 지키려다 무자헤딘의 공격을 당한다. 통신만 두절되지 않았어도, 이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전장에서 버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아니, 이들의 죽음이 의미있는 것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고지를 지나다 유일한 생존자를 발견한 장교가 “전쟁은 끝났다”고 말했을 때 홀로 살아남은 류타예프의 절규는 그래서 더 크고 찡한 울림을 준다.

감독은 병사들의 일상을 시간순서에 따라 무덤덤하게 그려내면서도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인간들의 모습을 아프간의 세련된 영상미와 감동적인 전우애로 덧씌웠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잔인하고 치열한 전투 장면이 없지만, 그 안에 반전의 당위성과 명분 없는 전쟁의 허구가 오밀조밀하게 녹아들었다.


어떤 명분이든 전쟁은 인간을 파괴한다. 전쟁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건 인간의 삶과 내면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작비 83억원이 들어간 러시아 블록버스터로 2005년 개봉 당시 러시아에서 흥행 1위에 올랐던 작품이다. 기존의 할리우드 대작 전쟁영화와 비교해 보면 새로울 듯. 〈전쟁과 평화〉의 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아들인 표도르의 감독 데뷔작이다. 7월12일 개봉.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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