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년이 흘렀다. 2003년 2월18일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날이다. 생존자와 유가족의 아픔은 끝나지 않았지만,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도 우리 스스로 ‘잊지 말고 기억하자’며 각자의 방식으로 참사를 추모하고 위로하는 이들이 있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로봇, 소리>는 로봇과 인간의 동행과 부성애를 결합한 작품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를 소재로 삼아 관심을 끌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호재 감독을 직접 만나 영화 속 대구 지하철 참사의 기억과 의미를 들어봤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영상에 담았다.
“굉장히 슬프고 아픈 대구 지하철 참사가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 가고 있다는 상황에서 잊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2016년 영화 <로봇, 소리> 언론 시사회 중 이호재 감독 인터뷰)
“영화 개봉 당시 영화 소개가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의미로 말씀하신 건가요?”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4일, 본사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호재 감독에게 물었다. 이 감독은 “영화 제작 준비에 한창이던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당시 10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는 역시 잊혀 있었고요. 그런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잊혀 가고 있다’는 건 자연스레 시간이 흘렀다는 게 아닐까? 이 감독은 말을 이었다. “눈앞의 끔찍한 참사에 마음 아프면서도 ‘이게 왜 반복되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이전의 참사들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죠.”
제작 과정은 조심스러웠다.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더 자기 검열을 하면서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너무 직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전면에 내세워서 마케팅에 활용하거나, 또 흔히들 얘기하는 그런 신파 비극으로 끌고 가고 싶지 않았어요. 꼭 어느 쪽이 맞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참사를 기억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죠.”
2016년 개봉한 영화 <로봇, 소리>에서 하나뿐인 딸 유주(채수빈)를 잃어버린 아버지 해관(이성민)은 10년 동안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맨다. 모두가 이제 그만 포기하라며 말리던 그때, 마침 인공지능 기능이 탑재된 로봇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휴먼 에스에프(SF) 장르 드라마다.
영화는 2003년 일어난 대구 지하철 참사를 소재로 다룬 사연이 밝혀지면서 관심을 받았다. 개봉 당시 이호재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참사를 관객들을 울리는 데 함부로 이용하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고 있다’는 뜻만 표현하려고 했다”고 했다.
이호재 감독이 기억하는 대구 지하철 참사에는 ‘메시지’가 있었다. 사고가 난 2003년은 이동통신이 일반화하던 시절이었고, 희생자들은 마지막 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감독은 영화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으로 그려냈다. 딸 유주가 마지막 순간 남긴 메시지는 그간 서툴렀던 표현에 감춰진 진심을 전하는 모티브가 됐다.
그런 ‘마지막 메시지’는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통을 생각하게 한다. 뒤늦게 듣게 된 딸 유주의 마지막 메시지로 10년 동안 실종됐던 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버지 해관은 비로소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감독은 메시지라는 키워드가 관통하는 영화를 이렇게 얘기했다. “메시지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소통이잖아요. 한국 부모님의 특징이 자녀에 대한 사랑은 어마어마하면서도 소통에 관해서는 늘 서투신 것 같아요. 자식도 마찬가지고요. 어엿한 성인이 된 자식과 어떻게 소통하며 관계를 이어가고 또 떠나보낼지에 대한 고민을 전하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로봇 소리가 물에 빠지는 장면이나, 또 “보호해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멘트 등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은 의도한 것일까? 이 감독은 우연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 장면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가 하는 부분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를 앞둔 소회도 궁금했다. “참 공교롭죠. 대구 지하철 참사 10주기에 제가 이런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즈음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어요. 저는 사실 잊고 지냈는데 올해가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고, 또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일,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잖아요. 우리가 참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이 감독은 참사 이후의 ‘대처’를 강조했다. 예기치 않은 비극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것. “저는 어떤 (앞서 열거한) 참사들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보진 않은 사람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괜찮고 그 사람들은, 그분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구분 지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나의 영역을 좀 더 확장해서 이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아요.”
또 중요한 건 ‘공감’이라고 얘기했다. “<로봇, 소리>에서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는 누구에게는 그냥 10년 전, 20년 전 뉴스일지 몰라도 그걸 아직도 잊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거였어요. 그런 사람들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겁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그분들을 끌어안는 모습과 함께 참사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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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채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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