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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치고받고 싸워도 끊어낼 수 없는 징글징글한 모녀

등록 2023-01-26 07:00수정 2023-01-26 08:00

비틀린 모녀관계 조명한 영화 ‘라인’ 25일 개봉
영화 <라인>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 <라인>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가 시작되면 비발디의 화려한 찬송가를 배경으로 몸부림치는 한 여성의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클로즈업된다. 포효하는 듯 내지르는 젊은 여성의 움직임은 한 중년 여성을 향하고 있음이 서서히 드러나고, 중년 여성이 이를 피하다가 피아노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지면서 장면은 멈춘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저리도 짐승처럼 발악을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걷히고 둘의 관계가 드러나면 관객은 잠시 망연해진다. 엄마와 딸. 도대체 무슨 원망과 증오가 켜켜이 쌓였기에 딸이 주변 사람들에 의해 집 밖으로 질질 끌려나와 내쳐진 뒤에야 이 소동이 멈춘 걸까.

영화 &lt;라인&gt;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 <라인>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엄마와 딸 사이의 적대적 관계가 이처럼 충격적으로 묘사된 장면은 지난해 한국 독립영화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김세인 감독)에서 엄마가 운전하는 차가 딸을 향해 돌진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징글징글하다는 표현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엄마와 딸의 비틀린 관계. 영화 <라인>(25일 개봉)은 장편 데뷔작부터 칸과 베를린에서 잇따라 주목받으며 차세대 거장으로 이력을 쌓고 있는 프랑스 출신 위르쉴라 메이에 감독의 신작이다.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까지 받은 마르가레트(스테파니 블랑슈)는 함께 살던 집에 100m 이내 접근금지 명령을 받는다. 그런데 마르가레트는 계속 집 주변을 얼쩡거리며 출입금지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가해자’의 석연찮은 행동이 이어지는 동안 ‘피해자’의 더 석연찮은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 유망한 피아니스트였다가 임신과 함께 주저앉은 엄마 크리스티나(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는 딸 셋을 키우면서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신세한탄을 한다. 새 애인에 빠져 늦둥이 막내딸 마리옹(엘리 스파뇰로)을 혼자 두고 애인과 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둘째 딸이 갓 낳은 쌍둥이 손주들의 울음소리가 거슬린다며 안아주지도 않으면서 식구들 앞에서 민망한 사랑놀이에만 빠져 있다. 맨 앞 장면에 대한 설명이 없어도 30대의 큰딸 마르가레트는 철없고 세 딸에게 태연하게 상처를 주는 엄마와 부딪치고 싸워오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눈덩이처럼 커졌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영화 &lt;라인&gt;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 <라인>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큰딸은 엄마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면서도 엄마가 또 남자에게 상처 입지 않을까, 어린 동생이 방치되지 않을까 마음이 쓰여 계속 집 주변을 서성거린다. 엄마가 시켜 집 반경 100m 안에 언니가 들어올 수 없도록 파란 페인트로 줄(라인)을 긋는 마리옹은 집안의 풍파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애타게 기도한다. 아이를 키우며 시들어버린 재능과 청춘, 그런 엄마의 신세한탄을 철없게 여기는 자식, 집안 공기를 얼리는 긴장관계에 쩔쩔매는 아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각자의 자리에서 엄마와 딸 사이에 존재하는, 또는 존재해야 하는 ‘선’이란 무엇인지 영화는 질문한다.

영화 &lt;라인&gt;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 <라인>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피아니스트인 엄마와 싱어송라이터인 마르가레트, 매일 들판에서 성가를 연습하는 마리옹. <라인>에서 음악은 엄마와 딸을 서로 온전히 이해 못하면서도 끊어낼 수 없는 운명처럼 연결한다. 그렇게도 미워하는 엄마의 모습이나 습관을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딸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엄마를 연기한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는 실력 있는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며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여러 작품에 출연한 배우로,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배우자인 모델 겸 가수 카를라 브루니의 언니이기도 하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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