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월드시네마 제공
16일 개봉하는 <폴: 600미터>(이하 <폴>)에 대해 스릴러의 대가 스티븐 킹은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절대 보지 말 것”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발아래로 까마득한 강물이나 계곡이 훤히 보이는 투명다리를 사뿐히 건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비추’다. 섣불리 덤볐다가 놀이공원에서 가장 무서운 어트랙션에 100분 동안 발이 묶인 듯한 ‘영혼탈곡기’의 경험을 할 수 있다.
<폴>은 산소통을 메고 케이지에 들어가 바닷속에서 상어를 가까이서 보는 체험 관광 형태인 샤크 케이지가 심해로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생존 스릴러 <47미터>의 제작진이 다시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47미터>에서도 그랬듯 이야기의 짜임새 따위는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도리어 인물 설정과 이야기 전개에서 뻔뻔할 정도로 <47미터>를 그대로 가져온다. 유일한 목표는 관객을 고소공포로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 것.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월드시네마 제공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월드시네마 제공
암벽 등반을 하다 남편을 잃은 베키(그레이스 캐롤라인 커리)는 1년 동안 실의에 빠져 산다. 사고 당시 함께 있던 친구이자 익스트림 체험 유튜버인 헌터(버지니아 가드너)는 베키에게 사막 한가운데 있는 티브이 송신타워에 올라가 보자고 제안한다. 탑의 높이는 600m. 에펠탑 높이가 330m, 81층 높이라고 하니, 150층 높이인 셈이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서울 잠실 시그니엘 타워(123층) 꼭대기에 아파트 한동을 더 올린 높이다. 하지만 이 탑에는 엘리베이터도 에스컬레이터도 없다. 수리할 때 쓰는 간이 계단이 있을 뿐 시야에 들어오는 탑의 모양은 세워놓은 송곳처럼 뾰족하기만 하다. 게다가 철거를 눈앞에 둔, 철근을 조이는 나사들이 삐걱대는 탑이라면.
<폴>의 야심은 철근 덩어리 하나, 높이라는 단 하나의 요소만으로 관객을 극한의 긴장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47미터> 때보다 주요 등장인물은 더 줄여서 단 두명. 목적지에 도착해 이들이 쳐다보는 타워, 그러니까 화면을 가득 채운 요소는 누런 사막과 녹슬고 가느다란 일자형 탑이 전부다. 캘리포니아에 실재하는 티브이 송신탑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월드시네마 제공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월드시네마 제공
비록 삐걱거리기는 하나 간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과정은 수월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올라간 다음 꼭대기의 낡은 사다리가 떨어져 버리면서 발생한다. 두 사람은 작은 원판 지지대에 앉아 구조 신호를 보내려고 하지만 너무 높아 휴대전화는 터지지 않는다. 응급함에 있던 신호탄을 터뜨리자 그걸 보고 찾아온 사람들은 차만 훔쳐간다. 목숨 걸고 첨탑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충전해 날린 드론은 멀리 있는 가게 입구로 들어가기 직전 문제가 발생한다. 게임의 난도를 높여가듯 두 사람은 조난 신호를 보내기 위해, 그리고 작열하는 사막의 태양 아래 살아남기 위해 점점 더 위험한 시도를 감행한다. 한발짝만 어긋나면 600m 아래인 상황에서 살기 위한 이들의 시도가 대담해질수록 추락의 위험은 눈꺼풀 아래까지 차오른다.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월드시네마 제공
중간에 두 친구의 비밀스러운 전사가 조금씩 드러나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삐끗하면 추락한다는 긴장감만으로 100분을 이어간다. 놀이공원의 강도 높은 어트랙션과 똑같은 쾌감이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주인공은 죽지 않을 것이고 어트랙션 위의 나는 무사히 도착 지점에 귀환할 것이다. 알면서도 ‘미치고 환장할’것만 같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그 기분이다. 스콧 만 감독.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