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모범가족>의 한 장면. 배우 정우가 주인공 박동하를 연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벌금 한번 내지 않고 살아온 모범시민 박동하. 하지만 가장으로는 낙제점이다. 뇌물까지 바치며 정교수가 되려 했지만 실패했다. 심장병인 아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딸, 바람을 피우는 아내. 벼랑 끝에 몰린 동하는 사고를 당한 차 안에서 피투성이인 남자 둘과 막대한 돈다발을 발견한다. 돈만 있다면 ‘모범가족’이 될 수 있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동하는 시체를 유기한다. 결과는 뻔하다. 마약조직이 동하를 뒤쫓고, 협박한다.
지난 12일 공개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모범가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족’을 열망한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가족이나 집단이 사상누각이라는 의미다. 동하의 가족은 해체 직전이다. 동하를 뒤쫓는 마약조직은 내분 상태다. 두목 용수의 처남인 강준은 15년간 조직을 지켜온 마광철을 질투한다. 가족이 아닌 광철은 독립을 꿈꾼다. 형사 강주현은 마약조직에 침투한 언더커버 한철이 사라진 것에 자책한다. 경찰에 밀고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서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건을 덮으려고 한다. ‘경찰 가족’이라는 구호가 무색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모범가족>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일찌감치 범죄물은 가족 드라마와 근친이었다. 가부장제의 상징에 함몰된 남자들은 여성을 도피처, 구원의 대상으로 간주했고, 행복한 ‘모범가족’은 궁극의 이상향이었다. 갱스터 영화의 고전 <대부>는 ‘패밀리’라 자칭하는 마피아의 역사를 그린다. 가족과 이웃을 보호하겠다며 만든 조직이 결국 가족을 파괴하고 망친다. <소프라노스>(1999)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아이들의 진학과 가족의 건강 그리고 화합을 고민하는 ‘평범’한 이탈리아 마피아 가족의 일상을 보여준다. <브레이킹 배드>(2008)에서 암에 걸린 중년의 화학교사 월터는 장애인인 아들과 아내를 위해, 마약을 제조하며 범죄 세계에 뛰어든다. 죽은 뒤 남겨질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가족은 지금 부서지고 있다.
<모범가족>은 2017년 넷플릭스에서 방영을 시작한 <오자크>의 영향을 받았다. 회계사 마티의 회사는 남미 마약조직의 돈을 세탁하고 있었다. 동업자가 횡령하다 들키는 바람에 마티에게 불똥이 튀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는 마티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시골 마을 오자크에 내려간 마티의 가족은 새로운, 처절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모범가족>의 동하도 비슷한 상황이다. 살기 위해서, 조직이 시키는 일을 해야만 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모범가족>의 한 장면. 배우 박희순이 주인공 마광철을 연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하지만 <모범가족>은 독자적인 길을 간다. 전반부는 돈을 훔친 동하가 두려움에 떨며 방황하는 상황이다. 대니 보일의 <쉘로우 그레이브>(1994), 샘 레이미의 <심플 플랜>(1998),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일본 소설을 각색한 한국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 등이 떠오른다. 우연히 돈가방을 발견했다가 인생이 꼬인다. 후반부는 <오자크>처럼 조직의 명령을 따라야만 하는 동하와 가족의 절망을 그린다. <오자크>는 마티의 직업인 회계사를 이용한 돈세탁이 주요 업무이지만, <모범가족>에서 교수인 동하가 할 수 있는 것은 육체노동인 마약배달뿐이다.
<모범가족>의 주인공은 갑자기 범죄에 휘말리는 동하다. 그러나 동하의 추락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모범가족>의 모든 ‘가족’이 엉망이다. 동하의 가족은 돈가방을 얻기 전부터 깨져 있었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딸은 가정에서 벗어나려 한다. 마약조직의 강준은 광철을 견제하고, 언젠가 제거하려 한다. 가족이라지만 가족이 아닌 광철은, 언젠가부터 남이 되었다. 주현은 경찰을 믿을 수 없다. 가족이란 말은 거짓이다. 누가 밀고자인지 알 수 없고, 간부들은 자기 잇속만 차린다. 모범시민, 모범가족이 최고의 가치처럼 떠들지만 정작 모범적으로 살면 짓밟히고, 희생당하고, 배신당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모범가족>의 한 장면. 배우 윤진서가 주인공 박동하의 아내 강은주를 연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모범가족>은 동하, 광철, 주현의 고난을 엮으면서 힘차게 전진한다. 중심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고, 이야기는 세부까지 탄탄하게 맞물려 있다. 세개의 가족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들며 마지막까지 긴장을 유지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동하는 <지킬과 하이드>를 인용하여 “생존에 유리한 건 언제나 선보다 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범가족>의 악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악이 반드시 이긴다기보다, 더욱 절실한 이들이 결국 살아남는다.
그들은 모두 말한다. “지켜야죠, 가족을.” 하지만 모든 가족은 해체된다. 그리고 붕괴하기 직전이었던 동하의 가족만이 유일하게 복원된다. 아직 얼기설기 기워진 상태이지만, 그래도 서로의 손을 붙잡는다. 일단은 살아야 하니까.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