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의 아파트>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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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는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로 불렸다. 현재는 올림픽파크포레온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대단지가 건설 중이다. 1979년에 준공해 6천가구 규모의 둔촌주공에는 한때 2만~3만여명의 사람이 살기도 했다. 과거의 여유로운 조경 방식 덕분에 아파트 높이만큼 크게 자란 나무들이 초록빛 장관을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주민들은 재건축이 확정되자 2018년부터 이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이주하고 난 다음에도 남아 있는 생명체들이 있었다. 250여마리에 이르는 고양이들이다.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정재은, 2022)는 이 고양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활동과 둔촌주공의 마지막 풍광을 담았다.
이삿짐을 나르는 사다리차의 움직임과 일견 무심해 보이는 고양이들의 얼굴로 영화는 시작된다. 단지 내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던 주민들 덕에 아직 고양이들은 평화로워 보인다. 상가 건물 입구의 오래된 약국 앞을 자기 자리인 양 앉아 있는 고양이는 마치 약국지기처럼 보인다. 약국이 이사를 가고 문을 닫아도 고양이는 늘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를 지킨다. 고양이들이 여전히 앉아 있는 것은 이 공간이 사라질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건물 지하에서 외롭게 죽어갈지도 모를 위기에서 고양이들을 구하기 위해 ‘둔촌냥이’라는 모임을 만든 활동가들이 나선다.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는 입양을 보내고, 그렇지 못한 고양이들은 다른 곳으로 서서히 이주시킨다. 이 과정은 그리 순탄치 못하다. 입양을 위해 고양이를 순화시키는 과정도, 둔촌냥이의 활동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양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캣맘들과의 의사소통도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가장 큰 난관은 고양이들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인간과 고양이가 서로의 마음을 완벽하게 나누기엔 한계가 있다. 물어보고 싶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인간은 어차피 고양이들에게 (고양이 밥을 주는) ‘캔따개’일 뿐이라는 한 동물권 활동가의 말은 인간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고양이들의 아파트>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카메라는 이 모든 과정을 덤덤하면서도 사려 깊게 담는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등장한 새들과, 점점 폐허가 되어가는 아파트들. 그리고 옮겨 심어지거나 베어지는 커다란 나무들. 그 사이를 위험천만하게 뛰어서 돌아다니는 고양이들. 이주에 성공하지 못하고 회귀한 고양이들은 생활환경이 거칠어졌기 때문인지 이전처럼 털이 곱지 않고, 표정도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인간의 이익에 부합하는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같이 살아가던 생명체들이 한순간에 자리를 잃어가는 모습이 화면에 새겨진다.
엔딩 장면은 모든 건축물이 부서진 거대한 단지가 보이는 드론 부감숏이다. 조심스레 고양이를 쫓던 카메라가 마주한 것은 결국 인간의 욕망이다. 처참한 폐허처럼 보이는 압도적인 풍광은 의문을 가져온다. 유지 기간이 고작 30~40년에 불과한 건축물밖에 지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능력 탓일까, 아니면 욕망 탓일까. 인간됨이 타 개체에 대한 혐오나 배제의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인간의 욕망을 어찌할 수 없다면, 다른 생명체에 대한 배려와 공존의 감각이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담하게 전한다.
영화감독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