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나일강의 죽음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 영화화한
2020년대판 ‘나일강의 죽음’
영리한 각색, 시대적 한계 극복
푸아로 캐릭터 변형은 아쉬워
나일강의 죽음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 영화화한
2020년대판 ‘나일강의 죽음’
영리한 각색, 시대적 한계 극복
푸아로 캐릭터 변형은 아쉬워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2020년대 식으로 각색한 영화 <나일강의 죽음>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소설·1978년 영화와 뭐가 달라? 1937년, 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의 영국 런던.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케네스 브래나)는 한 사교클럽에서 잘 어울리는 한쌍의 연인이 격정적인 춤을 추는 것을 보게 된다. 사이먼 도일(아미 해머)과 재클린 드 벨포르(에마 매키)다. 핏빛의 붉은 드레스를 입고 온몸으로 성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재클린은 훤칠한 키에 ‘남성미’를 뽐내는 사이먼을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하다. 커플의 춤이 끝나자 은빛 드레스를 찰랑이며 여신의 풍모를 한 리넷 리지웨이(갈 가도트)가 클럽에 들어선다. 리넷은 대공황기 많은 사람들이 몰락할 때 기회를 잘 잡아 거부(巨富)로 성장한 리지웨이의 상속녀다. 재클린은 친구 리넷에게 약혼자 사이먼을 소개하고, 리넷과 사이먼은 함께 춤을 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재클린의 얼굴은 질투로 이글거린다. 그로부터 6주 뒤. 이집트 나일 강변의 초호화 호텔에서 ‘선남선녀’의 결혼식이 열린다. 신랑 신부는 바로 사이먼 도일과 리넷 리지웨이다. 두 사람은 리넷과 가까운 소수의 사람들만 이집트로 초대해 결혼식을 올리고, 피로연을 겸해 손님들에게 카르낙호 유람선 여행을 선물한다. 그러나 신혼부부의 단꿈은 재클린이 등장하면서 깨져버린다. 재클린은 약혼자를 빼앗긴 이후 쭉 사이먼과 리넷을 스토킹하면서 괴롭혀왔던 것이다. 그는 결국 카르낙호에까지 승선한다. 아름다운 유람선에 메마른 불안이 서서히 피어오르던 중 드디어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수면제를 먹고 잠든 리넷이 관자놀이에 22구경 탄환을 맞은 것이다. 리넷에게 고용되어 함께 유람을 즐기던 푸아로는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리넷은 죽기 직전 푸아로에게 “배에 탄 사람 중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과 사이먼을 보호해달라고 부탁했고, 푸아로는 모두를 용의선상에 올려놓는다. 마치 땅속에 파묻혀 있던 고대 유물을 확인하기 위해 섬세한 솔로 모래를 살살 털어내듯이, 푸아로는 한명 한명 취조하면서 범인의 실체에 다가간다. 그리고 영화의 끝, 그는 모든 용의자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이렇게 외친다. “범인은 너다!”
영화 <나일강의 죽음>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푸아로는 어쩌다 사랑에 빠졌나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푸아로 캐릭터의 변형이다. 1920년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으로 데뷔해서 1975년 <커튼>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푸아로는 이성애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캐릭터였다. 그는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그로부터 거리를 두고 논평하는 판관에 가깝다. 하지만 영화는 푸아로를 사랑으로 떠밀었다. 젊은 시절 푸아로의 연인을 보여주는 오프닝과 새로운 만남을 예감하게 하는 엔딩이 이런 구실을 하는데, 이는 원작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케네스 브래나 감독만의 장면이다. 이와 함께 바뀌는 것은 작품이 사랑의 비대칭성을 다루는 방식이다. 내가 원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소설의 도입부, 푸아로가 사이먼-재클린 커플을 최신 유행의 작은 식당 셰 마 탕트에서 처음 보았을 때 내뱉은 말이었다. “저 아가씨는 지나치게 열렬한 사랑을 하고 있군. 그건 위험하지. (…) 한 사람은 사랑에 빠져 있고, 또 한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도록 방치하고 있군.” 크리스티는 <나일강의 죽음>에서 사랑이 안전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동등하지도 평등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이먼과 재클린은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했지만, 안타깝게도 사이먼의 욕망은 돈을 향해 있었고, 재클린은 그런 연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재클린은 원작에서도 영화에서도 똑똑하고 독립적인 인물이지만, 사이먼과의 관계에서 주체적인 건 아니었다. 그걸 이해했기 때문에 원작의 푸아로는 끝까지 재클린에 대한 연민을 거두지 못한다. 반면 영화는 심지어 푸아로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테마에 집중하느라 이런 권력관계를 지워버린다. 그렇게 푸아로를 퍼즐을 푸는 사람이 아니라, 이 고통스러운 퍼즐의 한 조각으로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영화는 심지어 푸아로의 수염까지 밀어버린다. 이것만은 정말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었다.
손희정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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