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나일강의 죽음>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물리적으로 고립된 공간에서 내부인에 의해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사설탐정은 읊조린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이 말을 빗대 쓴다. 범인은 이 글 안에 있다.
9일 개봉하는 영화 <나일강의 죽음>은, 추리소설의 설정 중 하나인 ‘클로즈드 서클’(닫힌 공간)을 기반으로 한 서스펜스 스릴러물이다. 추리소설의 거장 애거사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1937)이 원작으로, 1978년 영화화된 바 있다.
억만장자인 상속자 리넷(갈 가도트)은 남편 도일(아미 해머)과 이집트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리넷의 전 연인, 대모와 유모, 재산관리인, 친구 가족 등 지인 10여명을 여행에 초대한다. 이들은 함께 나일강의 호화 유람선 카르낙호에 오른다. 우연히 동행하게 된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케네스 브래나)는 이들 부부로부터 신변 보호 요청을 받는다. 리넷의 친구이자 도일의 전 애인인 재클린(에마 매키)이 이들을 위협한다는 것. 헤어진 연인인 도일을 못 잊은 재클린이 카르낙호까지 따라온 그날 밤, 리넷이 총에 맞아 피살된다. 그러나 재클린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명백하다. 이 와중에 푸아로는 리넷의 지인 모두가 그를 살해할 나름의 이유가 있는 용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범인은 누구인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나일강의 죽음>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에서 푸아로 역할로 출연한 케네스 브래너가 전작처럼 주연·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1930년대 이집트의 황홀한 풍광을 보기 좋게 녹여낸 것으로 우선 눈길을 끈다.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압도적인 석상, 나일강의 낙조 등이 연이어 벌어지는 비극과 대비돼 더 아름답게 보인다. 몰입감을 위해 전세계에서 단 4대뿐인 65㎜ 필름카메라를 사용해 촬영했다.
특히 영화 속 결혼식장인 호텔을 애거사 크리스티가 <나일강의 죽음>을 집필했던 ‘카타락트 호텔’을 모티브로 해 실물 세트로 제작하거나, 10여명의 조각가들이 폴리스타이렌과 회반죽 덩어리를 조각해 실제와 똑같은 크기(높이 21m 너비 30m)의 ‘아부심벨 신전’ 세트를 만든 일, 30주 동안 약 255톤의 초호화 여객선 카르낙호를 제작한 것 등은 볼거리와 함께 영화의 스케일을 짐작게 한다. 다만 영상미에 비해 선상 연쇄살인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서스펜스는 다소 약한 편.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나일강의 죽음>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물론 원작 소설과 비교하는 가외의 재미는 있다. 원작에서 푸아로와 레이스 대령이 방 수색을 할 때 “우리들 방도 수색해야 한다”며 전작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 때 용의자의 잠옷이 푸아로의 여행가방에서 나온 것을 언급하지만, 이 대목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전작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마지막에서 푸아로가 경찰에게 “나일강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전갈을 받는 장면은 원작에 없는 설정이다. 후속 영화 <나일강의 죽음>에서 푸아로가 살인 사건을 맡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밑밥’이었던 것.
결국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는 까탈스러운 푸아로에 의해 사건은 해결된다. 이례적으로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가 부고 기사(1975년 8월6일)까지 썼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벨기에 출신의 가상 인물 푸아로. 코넌 도일에게 셜록 홈스가 있다면, 애거사 크리스티에겐 명탐정 푸아로가 있다. 각설하고 범인이 누구냐고? 추리는 각자의 몫. 더욱이 천인공노할 스포일러가 될 순 없지 않은가.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나일강의 죽음>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