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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서울역에서 베를린행 열차를 타리라…한반도 평화를 상상하다

등록 2022-01-15 08:59수정 2022-01-15 17:51

[한겨레S]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렛츠피스’ 팀을 꾸린 10~20대 시베리아횡단열차 몸실어
1년여 여행하는 출연진…돌아와선 해고노동자에 연대 손길

평화를 염원하는 퍼포먼스를 하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떠난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출연진. 씨네소파 제공
평화를 염원하는 퍼포먼스를 하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떠난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출연진. 씨네소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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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까지 갈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선구적 예술가 나혜석도,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들도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향했다.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기 전의 이야기다. 현재 38선 때문에 육로를 통해서는 타국으로 갈 수 없는 남한은 섬나라나 마찬가지다. 분단이 오래 지속된 탓에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평화나 통일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 남북간 군사적 긴장 상태에서 군비를 증강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이 존재하기 때문에 젠더, 복지 등 다른 사회적 의제들은 사소하게 다루어지곤 한다.

지난 연말 개봉한 다큐멘터리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박소현·송영윤, 2019)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넘어서 평화를 일상적으로 상상하자는 청년들의 도전을 담았다. ‘레츠피스’(Let’s Peace)라는, 말 그대로 ‘평화하자’라는 팀을 꾸린 출연진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목적지인 베를린까지 가면서 평화를 염원하는 노래와 퍼포먼스를 하기로 한다. 20대가 주축인 멤버들은 자신보다 어린 10대들과 함께 이 여정을 꾸리기로 결정하고, 추상적인 가치들을 온몸으로 체감하려 애쓴다. 이들이 만들어낸 ‘서울역을 국제역으로’라는 구호는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지 못하는지 실감하게 한다.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온다면, 국경을 육로로 넘나드는 유럽인들처럼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이들의 여행은 평화를 위해 움직였던 이들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던 목포 청년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박차정 열사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묘소로 가는 이정표를 만드는 것으로 일정이 이어진다. 본격적인 여정이 펼쳐지면서 시베리아의 각 역에서 만나는 이들은 레츠피스가 말하는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해도 웃음으로 맞이한다. 영화는 예술의 힘을 믿는 사람들의 순수한 에너지가 타인에게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만남에서 펼쳐지는 화학작용은 평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시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연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마주친 북한 운동선수들의 모습에서 ‘왜 우리는 그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나눌 수 없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평화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감독들은 레츠피스가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시점에서 영화의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여행 이후 해고 노동자를 위한 연대의 현장에 함께하는 출연자의 모습을 통해 이들이 말하는 평화는 다른 이들과 연대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으로 확장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사실 출연진이 1년여의 시간 동안 지구 3분의 1을 도는 여행을 하며 바이칼 호수를 만나고, 베를린 장벽 앞에서 퍼포먼스를 했다고 바뀐 것은 없다. 이 영화가 촬영된 2018년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시기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다시 경직된 남북관계, 그리고 팬데믹 상황 같은 더 큰 단절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 그리고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다른 세상도 시작될 수 있다.

영화감독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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