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티탄>은 규범으로 결정된 모든 ‘정상성’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영화특별시SMC 제공
“괴물성은 우리를 구분 짓고 가두는 규범이라는 벽을 밀어내는 무기이자 힘입니다. 괴물을 받아들여준 심사위원단에 감사합니다.”
제7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티탄>(2021)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단편 <주니어>(2011)에서부터 첫 단독 연출 장편 <로우>(2017)를 지나 <티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여성 괴물의 형상을 탐구해왔다. 이 세편의 영화로 그는 보디 호러의 대표적 작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보디 호러는 신체의 부자연스러운 변형, 퇴화, 부패, 파괴 등을 통해서 불쾌함과 두려움을 끌어내는 공포물이다. 이런 영화들은 우리가 강박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건강하고 방정한’ 신체 이미지를 뒤틀면서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뒤쿠르노의 작품에서 여자들은 스스로의 신체를 변형시키거나 타인의 신체를 파괴하면서 괴물성을 뽐낸다.
뒤쿠르노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피부’다. 그의 영화에서 피부는 외부 세계와 불화하는 주인공이 세상과 만나는 접점이자 경계다. 주인공의 신체는 피부로부터 변태·변신(metamorphosis)하기 시작한다. <주니어>의 쥐스틴(가랑스 마릴리에)은 피부가 벗겨지고 뱀으로 전화하면서 고집스럽게 지키던 ‘소년성’에서 벗어나 ‘여성성’을 즐기게 된다. <로우>의 쥐스틴(가랑스 마릴리에)은 수의학대학에서 신입생 통과의례로 토끼 생간을 먹고 난 뒤 끔찍한 피부 발진을 경험한다. 그리고 뜨거운 식인 본능에 눈을 뜬다. <티탄>의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는 피부가 헐고 찢어지면서 쩍 벌어진 상처 사이로 몸 안에서 자라고 있던 티타늄이 드러난다. 피부가 견뎌주는 한 뒤쿠르노의 괴물들은 사람들 사이에 그럭저럭 섞여 살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피부를 경계로 ‘나’와 분리되는 외부가 추구할 만한 ‘정상’적인 세계인 것은 아니다. 뒤쿠르노의 괴물들은 충분히 반사회적이지만, 애초에 그 ‘사회’라는 것 자체가 이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친절을 모르는 폭력의 시공간이다. 뒤쿠르노는 말한다. “괴물성은 긍정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괴이한 상상력의 소유자는 세계에 균열을 내는 괴물을 처단하거나 봉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엔딩에 이르면 그 균열을 더욱 크게 벌리면서 세계관을 확장해버린다.
확실히 <티탄>은 전작인 <로우>보다 조금 더 기괴하다.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알렉시아는 박살이 난 두개골에 티타늄을 이식한다. 이 위험한 수술에서 회복한 직후, 알렉시아에게는 자동차를 향한 설명할 수 없는 사랑 혹은 욕정이 닥쳐온다. 컷이 바뀌고 현재의 알렉시아는 모터쇼에서 스트립 댄스를 춘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성애화한다.
어릴 적 사고로 머리를 다친 알렉시아는 두개골에 티타늄을 이식한다. 영화특별시SMC 제공
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알렉시아는 팬을 자처하는 한 남자에게 쫓긴다. 앞 시퀀스에서 카메라가 신나게 핥았던 알렉시아의 몸은 남성의 완력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불안해 보이지만, 그것도 잠시. 알렉시아는 비녀처럼 생긴 금속의 머리장식품으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남자의 뇌를 박살 낸다. 그리고 남자의 체액과 토사물로 더럽혀진 몸을 씻기 위해 돌아간 모터쇼장에서 자신의 댄스 파트너인 캐딜락(그렇다, 바로 그 전설의 자동차다)의 유혹을 받고 그와 성관계를 맺는다. 이 장면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댄스 시퀀스가 알렉시아의 사물 성애(혹은 자동차 성애)를 강조하고, 보는 사람의 성적 쾌락을 기어이 배반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 성관계 후 임신한 알렉시아의 신체는 끊임없이 통증과 이물감을 환기시키고 혐오를 유발한다. 그리고 포르노를 자처했던 영화는 또 다른 보디 장르인 호러로 빠르게 미끄러진다.
자동차와 섹스를 하고 임신을 한 여자의 이야기. 여기까지만 해도 기이하지만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이후 또 살인을 저지르다 신분이 탄로 난 알렉시아는 경찰의 포위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가지 묘책을 생각해낸다. 전단지에서 본 10년 전 실종된 남자아이인 척하는 것. 그는 머리를 자르고 얼굴을 세면대에 내리쳐 코를 부러트린다. 그리고 압박붕대로 부풀어 오르는 가슴과 배를 동여 감는다. 그렇게 10년째 아들을 찾아 헤매던 소년의 아버지 뱅상(뱅상 랭동)을 만난다. 왜인지 알렉시아가 아들이라고 확신하는 뱅상은 ‘사라져가는 남성성’에 집착하는 스테로이드 중독자다. 남자인 척하는 임신한 여자와 남성성을 붙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늙은 남자의 기묘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는 규범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모든 ‘정상성’의 경계를 침입하고 흩트려놓는다. 압박붕대에 휘감긴 알렉시아의 피부가 찢어지고 짓무르고 구멍 나듯이 말이다. 임신한 신체가 수행하는 남성성은 젠더의 경계를 질문하고, 뱅상과 알렉시아의 관계는 이성애-동성애-근친상간의 경계를 가지고 논다. 모유 대신 기름을 질질 흘리는 알렉시아의 가슴은 유기체와 무기체의 구분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의 끝, 알렉시아가 드디어 출산을 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질문과 만나게 된다. 알렉시아는 21세기의 동정녀 마리아인가? 캐딜락 안에서 벌어졌던 일은 상호 관계가 아니라 자위였나? 저 아이는 이 가련한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예수인가, 아니면 이미 몰락한 세계를 끝장낼 괴물인가. 혹은 영화는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채 부유하는, 이 모든 것인가.
뒤쿠르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가 보디 호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보다는 “코미디, 드라마, 호러가 교차하는 일종의 크로스오버에 가깝다”는 것이다. <티탄>을 곱씹어보면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그의 농담은 악취미처럼 보이지만 이 세계의 지루한 규범을 세련되게 조롱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괴물들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무리한다는 점에서 지독히 멜로드라마적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언어를 부정하는 감독이다. 그러니 관객인 우리도 규정하기를 멈춰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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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