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인가. 다큐멘터리 <사수>(2018, 김설해·정종민·조영은)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에 나선 이들의 고뇌를 솔직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감독들은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서 만난 것을 인연으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을 기록했다. 작품은 지난다 22일 노동자의 애환을 담아냈던 천재 조각가 구본주를 기리는 제11회 구본주예술상을 수상했다. 올해는 제작진과 유성기업 노동자가 만난 지 1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에 대한 비난과 편견이 난무하는 시기에, 감독들은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의 시간이 한국 사회에서 왜 필요한지 주목한다.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 엔진 부품을 만드는 하청기업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이 넘는 과중한 노동시간과 야간 노동을 멈추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사측은 2011년부터 계획적인 노조 파괴에 나선다. 결국 노동자들은 분열되고 파업에 함께했던 노동자 중 50퍼센트 이상이 복귀한다. 이후 용역 깡노패와 어용 노조가 함께하는 지옥 같은 시간이 펼쳐진다. 사측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조합원이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고, 동료 동자들은 장례를 미룬 채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한 싸움을 이어나간다.
‘노조 파괴 행위는 불법’이라는 당연한 말을 외치는 노동자도 처음에는 그런 투쟁이 낯설었다. ‘우리 회사’이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한 노동자의 낮은 고백은 자본가들의 속성을 알게 되면서 점점 분노에 찬 일갈로 바뀌어간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발견한 사측의 노조 파괴를 위한 문건은 현대차 본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유성기업 노조 파괴에 관여한 혐의로 현대차 임직원 4명은 지난해 항소심에서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원청 회사 역시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싸움을 이어가던 이들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희망이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부터, 죽은 동료를 팔아
돈 장사를 하려고 한다는 등 외부의 시선에도 지쳐간다. 인간답고 싶어 시작한 싸움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이 파괴된다. “모든 것을 끊고 나도 편해지고 싶다”며 삶의 의욕을 잃거나, 가족에게도 분노를 투사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카메라는 이 싸움의 주체들이 겪는 수많은 흔들림을 조심스레 마주한다. 그 카메라 덕분에 그들이 우리 옆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사측의 악랄한 탄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보다는 먼저 세상을 등진 동료와 가족에게 미안해하는 조합원들의 얼굴 표정에 집중한다.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싸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과 따라오는 죄책감과 갈등이 그 얼굴 속에 있다.
2017년 유성기업 회장의 법정 구속으로 투쟁은 승리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년여 만에 치러진 동료의 장례식은 서글픔으로 가득 차 있다. 아끼던 동료가 없는 세상에 불과하기에 그들은 투쟁이 승리로 끝났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감독들은 노동자들이 괜찮아지기를 바라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괜찮지 않다. 죽어서라도 존엄을 지키려 했던 노동자가 필사적으로 외쳤던 것은 “사과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았다. 왜 권력과 자본가들이 미안해하는 얼굴을 보기가 그토록 힘든 것일까. 그들에게는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권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오티티(OTT) 서비스 사이트 ‘다큐 보다(VoDA)’(voda.dmzdocs.com)에서 볼 수 있다.
영화감독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 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