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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스웨덴영화’ 한국 덕후들 덕분에 10돌 잔칫상 차려요”

등록 2021-08-24 22:57수정 2021-08-25 02:08

[짬] 주한 스웨덴 대사 야콥 할그렌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가 지난 16일 대사관 사무실에서 스웨덴 외교부에서 선정해 받은 ‘베스트 프로모션상’과 스웨덴영화제 10돌의 의의를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가 지난 16일 대사관 사무실에서 스웨덴 외교부에서 선정해 받은 ‘베스트 프로모션상’과 스웨덴영화제 10돌의 의의를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외교관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한국은 영원한 친구의 나라로 남을 겁니다. 대사로서 첫 부임지에서, 스웨덴 외교부에서 주는 ‘베스트 프로모션상’까지 받았으니까요.”

지난 16일 오후 서울 남산 입구 대사관 사무실에서 만난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의 목소리는 약간 흥분된 상태였다. 이달 말로 3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그는 “전 세계 109개의 스웨덴 재외공관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영예로운 상을 받게 된 가장 큰 성과는 ‘스웨덴영화제’”라고 자랑했다. “부임 첫해인 2018년은 마침 잉마르 베리만(1918∼2007) 감독의 탄생 100돌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예술영화 시장과 독립영화관의 발전 가능성을 모색한 행사에 스웨덴 영화가 도움을 줄 수 있어 더 뜻이 깊었습니다. ‘초임 대사’로서 큰 행운이었던 셈이죠.”

실제로 오는 9월 9일 개막하는 ‘스웨덴영화제’는 대사관 차원에서 주최하는 특정 국가 영화행사로는 드물게 올해 10돌을 맞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를 비롯 부산 영화의 전당(9일), 광주 광주극장(9일), 대구 시지브이(CGV)대구 한일(10일), 인천 영화공간 주안(23일)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온·오프 동시에 진행한다.

귀국 채비에 정신없이 분주한 중에도 짬을 내 준 할그렌 대사에게 스웨덴영화제의 성공 비결과 두 나라의 문화 교류 의미를 들어봤다.

2012년 ‘제1회 스웨덴영화제’ 포스터(왼쪽). 오는 9월9일 개막하는 ‘제10회 스웨덴영화제’ 포스터(오른쪽). 주한 스웨덴대사관 제공
2012년 ‘제1회 스웨덴영화제’ 포스터(왼쪽). 오는 9월9일 개막하는 ‘제10회 스웨덴영화제’ 포스터(오른쪽). 주한 스웨덴대사관 제공

우선 임기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그는 그 역시 영화제와 관련이 깊다고 소개했다. “2019년 한-스웨덴 수교 60돌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의 스웨덴 국빈 방문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는 2012년 스웨덴 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 부처가 한국을 국빈 방문한 지 7년 만의 답방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9년 전 5월 국왕의 국빈 방한에 맞춰 ‘제1회 스웨덴영화제’ 개막했고, 그때 실비아 왕비가 참석해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유독 방한 기념 행사로 ‘영화제’가 열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앞서 2011년부터 전세계 스웨덴 대사관에서 스웨덴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20세기 현대 서구영화의 거목으로 불리는 <잉마르 베리만-심오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위대한 인간>을 순회 전시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때 마침 한국에서 ‘잉마르 베리만 감독 영화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함께 손을 잡게 됐어요.”

영화사 백두대간이 운영하는 독립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진행한 ‘명불허전:우리 시대 최고의 명감독'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시리즈로 <잉마르 베리만을 찾아서: 스칸디나비아 시네마 배낭여행>이 바로 그것이었다. 2011년 5월부터 무려 1년간 사진전·영화학교·포럼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이어진 행사의 대미를 이듬해 ‘스웨덴영화제’로 장식했다. 그 자신 <아름다운 시절>(1998년)을 연출한 대표적인 예술영화 감독인 이광모 백두대간 대표가 수집한 잉마르 베르만 감독의 대표작 9편을 소개했다. 그와 동시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베리만 회고전’을 열어 17편의 숨겨진 걸작들을 소개하면서 어느 때보다 한국에서 스웨덴 영화의 열기가 뜨거워진 시기였다.

2012년 5월30일 이화여대 ECC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스웨덴 영화제’ 개막식에서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함께 국빈방문한 실비아 왕비가 축사를 하고 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2012년 5월30일 이화여대 ECC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스웨덴 영화제’ 개막식에서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함께 국빈방문한 실비아 왕비가 축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처럼 출발부터 순조로웠던 스웨덴영화제는 해를 거듭하면서 한국 팬들의 관심이 높아져 이제는 상영 기간 내내 영화 전편을 빠짐없이 관람하는 ‘덕후’가 생길 정도로 정착을 했다. 덕분에 한국은 스웨덴 영화가 가장 많이 배급되는 나라로 부상했다. 지난해 8월에는 주스웨덴 한국대사관 주최로 두 나라의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제1회 한-스웨덴 온라인 영화제’가 스톡홀름 현지에서 열린 데 이어 올해도 26~29일 2회째 영화제를 한다.

매해 나온 신작 10편을 정선해 영화제에 제공해온 스웨덴영화진흥원과 스웨덴대외홍보처에서는 한국의 뜨거운 호응과 성공 요인을 분석하고자 영화제 답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할그렌 대사는 “무엇보다 한서문화예술협회의 지속적인 재정 지원이 큰 힘이 됐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쯤에서 서유럽권에서 유독 스웨덴이 ‘예술영화 강국’으로 발달한 배경이 궁금해졌다. “영화는 물론 문화 전문가가 아니어서 정확한 설명은 자신할 수 없습니다만, 아마도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문화 토양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영화제 개막 이래 지금껏 소개된 작품의 특징도 ‘다양성과 성평등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고, 올해 영화제 주제인 ‘지속가능한 삶의 가치’ 역시 상업영화에서는 다루기 힘든 진지하고 민감한 철학적 질문들을 하고 있거든요.”

실제로 영화문화사의 관점에서 스웨덴은 20세기 상반기 내내 세계대전의 시기 ‘중립국’을 선언한 덕분에 전후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될 수 있었고, 이는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와 같은 심오한 주제를 자유롭고 정직하게 고민할 수 있는 양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문화적 배경은 할그렌 대사의 이력과 그가 한국 대사로 지원하게 된 이유와도 맥이 닿아 있다. “평화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고, 죽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불편했다”는 그는 18살 때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회봉사를 했다. 그뒤 스웨덴의 예테보리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를 받은 그는 1997년 스웨덴 외교부에 들어가 주로 국가간 갈등 중재와 평화 구축 분야 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특히 2012년부터 대사로 오기 직전까지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외교정책의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부소장을 지냈다.

“한국과 특별한 개인적 인연은 없었지만, ‘북핵’이라는 위협 속에서도 놀라운 경제 발전과 강력한 시민사회의 힘으로 이룬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지켜보면서 한국에 흥미와 매력을 느꼈습니다. 물론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교육·노동시간·양극화·복지 등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과 과제가 있겠지만, 앞으로도 스웨덴의 경험이 합리적인 해결과 긍정적인 변화를 축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연말 처음으로 ‘스웨덴-한국 노벨 메모리얼 프로그램’을 개최한 것도 평화 전문가로서 거둔 하나의 보람이라고 소개한 할그렌 대사는 “3년 임기가 너무 짧아 아쉽기만 하다, 앞으로 어디서든 한반도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고, 기회가 되면 언제든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2021 스웨덴영화제 개막작인 ‘차터’의 한 장면. 주한스웨덴대사관 제공
2021 스웨덴영화제 개막작인 ‘차터’의 한 장면. 주한스웨덴대사관 제공

2021 스웨덴영화제 상영작 중 신작인 ‘나의 아빠 마리안’의 한 장면. 주한 스웨덴대사관 제공
2021 스웨덴영화제 상영작 중 신작인 ‘나의 아빠 마리안’의 한 장면. 주한 스웨덴대사관 제공

2021 스웨덴영화제 상영작 중 신작인 ‘런 우예 런’의 주연 배우 우예 브란델리우스(왼쪽)와 헨리 휘페르트 감독(오른쪽). 주한 스웨덴대사관 제공
2021 스웨덴영화제 상영작 중 신작인 ‘런 우예 런’의 주연 배우 우예 브란델리우스(왼쪽)와 헨리 휘페르트 감독(오른쪽). 주한 스웨덴대사관 제공

제10회 스웨덴영화제는 누리집(swedishfilmfestival.com) 등에서 예매할 수 있고, 코로나로 방한하지 못하는 대신 사전 제작한 동영상 인터뷰를 통해 상영작 10편 가운데 개막작인 <차터>(아만다 세르넬 감독)와 <나의 아빠 마리안>(모르텐 클링베리 감독), <런 우예 런>(헨릭 훼페르트 감독) 등 3편의 제작진과 비대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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