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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신난다, 그러나 마음 편히 즐기기는 어렵다

등록 2021-08-21 07:32수정 2021-08-21 07:40

[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만든 감독
망작이던 전작에 깔끔한 사망선고

‘아만다 월러’가 다시 자살특공대,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모집한다. 악명 높은 감옥 벨 레브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 중 임무에 적합한 슈퍼파워를 가진 메타휴먼 빌런들이 정예요원으로 뽑힌다. 조건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감형 10년. 서번트, 캡틴 부메랑, 티디케이(TDK), 위즐 등 존재감이 남다른 빌런들이 남아메리카의 섬 코르토 몰티즈에 잠입한다. 그리고 영화 시작 10분 만에 이들 중 대부분이 몰살당한다. “감독이 디시(DC) 돈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했다”는 평가를 받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의 오프닝이다.

더 강력해진 할리 퀸의 귀환​

디시 필름스에서 희대의 망작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를 묻(어버리)고 ‘수어사이드 스쿼드’ 세계관을 ‘리론치’했다.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연출한 제임스 건이 메가폰을 잡았다. 1편의 속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캐릭터와 환경을 다시 설정하는 리부트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제목을 입었다. 팬들의 열광을 보면 디시의 두번째 시도는 꽤 성공적인 것 같다. 건은 오프닝을 통해 전작에 깔끔하게 사망선고를 내리면서 “지금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나만의 색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다. 그 안에는 19금 고어 스펙터클과 ‘저세상’ 유머도 있지만, 작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생명의 선량함을 믿는 따뜻함도 있다.

주인공일 줄 알았던 에이(A)팀이 섬의 남쪽 해안에서 떼죽음을 당하는 동안 북쪽 해안에는 블러드스포트, 피스메이커, 킹 샤크, 랫캐처 2, 폴카-도트맨으로 구성된 비(B)팀이 무사히 상륙한다. 이들은 이후 에이팀에서 살아남은 플래그, 할리 퀸과 만나 코르토 몰티즈가 지난 30년간 진행한 정체불명의 무기 개발 사업 ‘프로젝트 스타피시’를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코르토 몰티즈에서는 얼마 전 쿠데타가 일어나 군부가 독재자의 가족을 몰살하고 정권을 장악한 참이다. 친미 독재 정권과 달리 군부는 반미를 새로운 정권의 정당성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젝트 스타피시’를 그대로 두는 건 미국엔 너무 위험한 일이다.

제일 반가운 건 더 강력해진 할리 퀸의 컴백이다. 디시 팬들이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지독한 실망감을 표할 때에도 할리 퀸만큼은 큰 사랑을 받았다. 다른 한편에선 관객들이 할리 퀸이 ‘조커의 연인’이란 역할에 얽매인 채로 눈요깃거리로만 활용되는 것을 비판했다. 온갖 전투복을 껴입은 남성 캐릭터들과는 달리 쫄티에 속옷 기장의 반바지 한장만 걸치고 거리를 누비는 할리 퀸의 패션은 미러링의 대상이 되었는데, 한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삼각팬티만 입은 데드샷과 캡틴 부메랑, 엘 디아블로의 사진이 돌아다녔다.

디시는 이런 비판을 참조하고 페미니즘 대중화의 열기에 힘입어 2020년에 할리 퀸을 주인공으로 한 <버즈 오브 프레이>(이하 <버즈>)를 공개한다. 감독 캐시 옌은 이 영화에서 할리 퀸에게 세가지를 선물했다. 조금 더 긴 바지, 여자 친구들, 그리고 독립적인 서사. “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는 것처럼 <버즈>는 통쾌한 여성서사이자 <원더우먼>과 <캡틴마블>, <블랙위도우>와 함께 놓일 만한 또 한편의 페미니스트 히어로물이다. 조커와 이별한 할리 퀸은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우연히 만나게 된 네명의 여자들―블랙 카나리, 르네 몬토야, 헌트리스, 카산드라 케인―과 함께 고담시의 악당 로만에게 맞서게 된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전작을 살포시 지르밟은 뒤 <버즈>로 관심을 돌린다. 영화적 사건이 발생하는 순서를 뒤섞는 <버즈>의 장난기 가득한 플래시백을 차용하고, 할리 퀸 액션 시퀀스 디자인의 기본 아이디어를 이어받았다. <버즈>에서 할리 퀸이 경찰서를 습격했을 때 터지는 콩주머니와 색색의 반짝이는 그가 코르토 몰티즈 군부의 감옥을 탈출할 때 벌이는 학살 장면에서 화려하게 만개하던 꽃다발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할리 퀸은 이번에도 ‘나쁜 남자’와 전광석화와도 같이 사랑에 빠지지만, 조커 때와는 달리 그에게 끌려다니기보다는 그를 향해 총을 갈기는 것을 선택한다. “황홀한 해방”을 맛본 할리 퀸은 (나름의 방식으로) 독립적인 개인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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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특공대 활약 독재에서 해방된 섬
미국-아프간 상황 오버랩 ‘씁쓸’

비밀병기 배후 미국 정부라니

일련의 황당무계한 사건들 끝에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프로젝트 스타피시’가 진행되는 거대한 탑 요툰하임 침투에 성공하고, 드디어 거대한 우주 불가사리 ‘스타로’의 모습이 드러난다. ‘스타로’는 작은 불가사리들을 발사해서 사람들의 얼굴을 습격한다. 그렇게 신체를 확장시켜 인간의 의식을 흡입하고 그들을 스타로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독재정권은 반정부 인사들과 그의 가족들을 사료로 삼아 ‘스타로’ 실험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요툰하임이 숨기고 있었던 건 ‘스타로’의 파괴력이 아니다. 진짜 비밀은 이 비인도적인 비밀병기 프로젝트의 배후가 미국 정부라는 사실이다. 30년 전, 미국은 우주에서 ‘스타로’를 포획해서 코르토 몰티즈에 숨겼다. 코르토 몰티즈의 독재정권은 미국 대신 위험천만한 실험을 계속했고, 미국은 그들을 외교적으로 지원했다. 진실을 알게 된 플래그가 이를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나서자, 피스메이커는 미국의 안보를 위해 그럴 수는 없다고 막아선다. “평화를 위해서는 여자도 아이도 다 죽이겠다”는 피스메이커의 단호한 신념은 미국 패권의 양면성을 폭로한다.

결국 코르토 몰티즈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활약으로 독재에서 해방되고 30년 만에 민주적 선거를 치르게 된다. 해피엔딩일까? 2021년 8월, 코르토 몰티즈의 현실판인 아프가니스탄에는 다시 탈레반 정부가 들어섰고, 민중은 절규의 메시지를 세계로 발신하고 있다. 미국의 거대 자본이 선보이는 ‘낄낄거림의 스펙터클’을 즐기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가능할까? 미국 정부는 국민의 승인 아래 ‘아메리칸 퍼스트’를 외치고, 할리우드는 그걸 스토리의 자원으로 삼아 돈을 번다. 무언가를 마음 편히 사랑하기가, 참 어렵다.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손희정 영화평론가가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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