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중앙정원 야외전시장에 제주의 무덤을 장식했던 석물인 동자석이 전시돼 있다. 그 뒤편으로는 곡식을 도정했던 연자매(연자방아의 제주어)와 각종 석물이 보인다. 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제주까지 가서 무슨 박물관?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공항을 빠져나오면 바닷가나 서귀포시로 넘어가기 바쁘다. 한라산의 웅장한 자태와 오름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 곶자왈 지대의 원시림, 곳곳에 널린 해변의 멋들어진 절경을 즐기기도 바쁘다. 하지만 이번엔 박물관이란 문으로 제주를 들어가 보자. 그곳에는 7∼8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제주의 과거와 현재가 있고 시간의 향기가 있다. 제주 인구는 60만 명을 겨우 넘지만 80여 개의 공사립 박물관이 곳곳에 자리해 인구 대비 박물관이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박물관 천국, 또는 삼다도(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은 섬이란 뜻)가 아닌 박다도(박물관이 많은 섬)로 불리기도 한다. 이제 제주 여행을 좀 해봤다는 이들은 박물관으로 간다.
제주/글·사진 박영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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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제주박물관 중앙홀 전장에는 제주의 탄생설화를 담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박물관 기행은 역시 돌아다니기 힘들 만큼 태양이 내리쬐거나 비가 내릴 때가 제맛이다. 종일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6월 말, 제주 대표 공공 박물관 3곳을 돌아보았다.
■ 국립제주 박물관: 선사부터 오늘까지 제주의 역사
지난 2001년 6월15일 개관한 제주박물관은 15년이 지난 2016년 대대적인 새 단장을 시작해 지난해 3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수년 전에 박물관을 갔더라도 새집을 다시 찾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지난 6월27일 찾은 박물관은 돌하르방과 야자수가 반기는 입구에서부터 제주 냄새를 물씬 풍겼다.
제주 국립박물관 주 전시실 중앙홀에 들어서면 한라산과 오름을 배경으로 제주 국립박물관의 모습을 담은 조감도가 정면에 자리잡고 있다. 제주 전통 초가집을 형상화해 설계하고 화산활동의 산물인 화산송이를 활용해 돌집의 느낌을 표현한 벽체 등 박물관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조감도를 본 뒤 박물관을 보면 그 아름다움이 더욱 실감 난다. 구리로 만든 박물관의 둥근 지붕은 시간이 지나면서 제주의 하늘을 닮은 푸른색으로 변했는데, 뒤편의 사라봉과 어우러져 넉넉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예전 중앙홀 입구에는 제주목관아와 읍성을 재현한 커다란 옛 제주시 모형이 자리했는데, 지난해 3월1일 새롭게 단장하면서 치웠다. 세련된 현대적 영상물이 역할을 대신하지만, 마치 소중한 옛 추억이 사라진 것처럼 조금은 아쉽다.
중앙홀은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아야 한다. 탐라 개국신화를 담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라산 백록담 전설과 탐라 개국신화인 ‘삼성신화’, 제주를 상징하는 삼다를 재해석한 것으로 지난 2001년 처음 박물관이 지어질 때 설치됐다.
중앙홀 왼편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화산섬 제주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타임랩스(긴 시간을 압축해 보여주는 미속 촬영 기법) 및 프로젝션 맵핑(대상물의 표면에 영상을 투사하는 기술) 영상이 관람객을 반긴다. 2분 30초 분량의 이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화산활동이 시작된 180만 년 전 이래 제주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국립제주박물관 전시실 입구의 타임랩스. 국립제주박물관 제공
제주 선사 유적 중 가장 주목할 것은 고산리 유적이다. 오연숙 학예연구사는 “1만 년 전 구석기로부터 신석기 정착 생활로 넘어가는 과도기 모습을 보여주는 한반도 신석기 시대를 여는 유적”이라며 “이러한 부류의 토기를 고산리식 토기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주도에서만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지나면 대표적 토기 유적인 곽지리와 고내리 유적들이 보인다. 높이가 140㎝에 이르는 곽지리식 대형 항아리 등 관람객을 압도하는 토기들 앞에서 홍콩 관광객들의 발길이 오래 머문다. 그 앞에는 거대한 탐라의 해양 교역도가 영상과 함께 누워 있어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개인적으로 특히 발길이 머물었던 곳은 몽골군의 침입에 41년간 저항했던 삼별초의 한이 서린 유적들이다. 항파두리성 유적지에서 발굴된 모습 그대로 전시된 철제갑옷 조각들에 눈길이 머문다. 이는 삼별초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제주시 애월읍 항파두리성의 내성 터에서 출토된 ‘철제갑옷편’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고려 군사들이 입었던 미늘 갑옷편으로 추정한다. 이 갑옷의 주인은 삼별초 저항군이었을까? 아니면 몽골 군대와 함께 온 고려 진압군이었을까.
조선시대에 제작한 41쪽의 채색 화첩 <탐라순력도>도 주목할 만하다. 조선 숙종 28년(1702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제주도에 부임한 이형상(1653∼1733)이 그해 관내 각 고을을 돌며 진행한 행사들과 풍광을 기록한 것이다. <탐라순력도> 첫 장에 수록된 <한라장촉>은 ‘한라산 주변의 장대한 경관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 밖에 장한철의 <표해록>과 제주도에 표박한 네덜란드인 하멜의 기록 등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재들도 흥미롭다.
구석기부터 신석기와 탐라국, 고려, 조선시대 등 시대순으로 전시된 유물들을 지나면 출구에 제주 섬사람들 삶의 이야기가 전시돼 있다.
탐라의 삼성 설화를 모티프로 한 탐라국 이야기와 제주목관아를 주제로 한 영상 등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상설전시실에서 나오면 별도로 기획전시실 건물이 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7월3일부터 오는 8월26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고려 철화청자 특별전을 연다.
입장료: 무료
주소: 제주시 일주동로 17
■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3300만명이 찾은 제주인의 삶과 자연
1984년 5월24일 개관한 도립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34년 만인 지난 5월5일 국내 공립박물관 중에서 최초로 누적 관람객 3300만 명을 돌파했다. 매년 약 1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이곳을 찾은 셈이다. 이름난 건축가인 김홍식 명지대 교수가 건물을 설계했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건물의 전체 모양은 제주도 귀족 가문의 민가 형식(조현옥 초가 표선면 성읍리)을 본떠 만들었다. 박물관은 ‘ㅁ자형 건물’로 지붕은 제주 전통 초가의 물매 형태와 한라산의 완만한 능선을 표현했고, 구멍이 많은 현무암을 마감재로 써 지역적 특성을 살렸다고 한다.
로비에 들어서면 길이 4.5m의 산갈치 표본이 압도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이 산갈치는 1990년 제주시 이호테우해수욕장 앞에서 잡힌 것이다. 산갈치를 지나면 제주의 용암동굴을 재현한 통로를 지나는 것에서부터 관람이 시작된다.
박물관에는 제주 자연과 문화, 주민 생활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제주의 자연생태자원을 보여주는 자연사관과 제주인의 삶을 보여주는 민속전시실 2실 해양생물관 등 4개의 전시실로 구성했다. 이밖에 특별 전시실에서 상설전시 이외의 자료들을 다양한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도지정문화재인 <탐라지도병서> 등 고고 민속자료와 천연기념물 191호인 한란 등 자연사 자료를 아울러 모두 40283점을 소장했으며, 이 가운데 3760점을 상설전시하고 있다.
민속자연사박물관 해양생물관에 전시된 대형해양생물.
정세호 민속자연사박물관장은 “외국인들은 박물관에 오면 몇 시간씩 머무르는데 우리는 아직 30분∼1시간 만에 훌쩍 지나가는 분들이 많다”며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선사에서 현대까지의 역사를,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제주인의 삶과 자연을 보고 나면 제대로 제주를 여행할 준비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장대비가 내렸는데 자연사 전시실과 민속 전시실 사이에 있는 카페테리아는 정말 명물이었다. 한쪽 벽 전체가 유리로 돼 있어 그 너머로 보이는 동자석과 내부 정원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 평화 속에 하염없이 머물고 싶어진다. 박물관 앞마당에 조성된 곶자왈 정원 풍경도 관람객들에게 쉼터로 인기 있다. 박물관 별관 특별전시실에는 ‘강정 윤씨 일가의 옛 생활을 보다’ 전시가 이달 말까지 진행됐는데 제주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박물관 부근에는 제주 고기국수 거리가 조성돼 있어 관람 후 시장기를 달래기도 좋다.
입장료: 대인 2000원, 소인 1000원
주소: 제주시 삼성로 40(일도2동)
■ 해녀박물관: 아련히 들리는듯한 해녀들의 숨비소리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6월28일 구좌읍 하도리 해녀박물관 중앙홀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구성진 장단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니 해녀 노래보존회 회원들의 민속공연 ‘이어도 사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해녀 노래는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제주 여성들 삶의 정서가 옹골차게 표현돼 있다. 해녀들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멜(멸치의 제주어) 후리는 소리’를 하며 ‘테왁춤’(해녀가 물속에서 이동하거나 쉴 때 부표 역할을 하는 테왁을 이용해 추는 춤)을 추는 등 공연은 약 30여 분 동안 이어졌다. 제주 해녀 문화의 가치를 대내외로 알리기 위해 진행하는 이 공연은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공연 말미에는 관객과 해녀가 어우러져 함께 공연하고 사진 찍는 기회도 주어진다.
공연을 본 뒤 전시실을 둘러본다. 해녀의 생활, 일터, 생애별로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체험 시설인 어린이 해녀관은 어린이들이 제주 해녀 관련 놀이기구를 만지고 놀면서 제주 바다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해녀박물관 3층에는 웬만한 카페 ‘찜 쪄먹을’ 멋진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하도리 마을 풍경은 물론 해녀들의 작업장인 파란 바다 밭과 해신당, 포구, 심지어는 물때에 맞춰 작업하는 해녀들을 볼 수 있다. 텀블러에 커피라도 담아가면 금상첨화다. 밖으로 나오면 시원하게 트인 넓은 잔디 마당과 해송이 어우러진 광장에 새롭게 조성한 불턱(해녀들이 불을 쬐며 쉬던 야외 휴게실)과 해신당, 전시된 선박을 만날 수 있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마을이다. 박물관에서 내려오면 백사장과 바다가 이어진다.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마을을 따라 이어진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제주의 집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해안에서 50m 정도 떨어진 토끼섬에서는 7월이면 야생 문주란 군락이 만발해 장관을 이룬다.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조선시대 수군 진지인 별방진이 마을을 푸근히 감싸 안고, 인근 동부해안도로 구간은 가장 제주다운 바다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하도리는 그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뜻깊은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일제의 경제 수탈에 맞서 1930년대 초반 제주 곳곳에서 들불처럼 타오른 해녀항일운동의 시발점이다. 제주도는 올해 9월 해녀박물관 내 제주 항일운동기념탑 옆에 제주 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3인의 흉상을 설치할 예정이다.
대중교통으로 해녀박물관을 갈 때는 일반 간선버스 201번이나 260번을 타고 박물관 앞에서 내리거나 급행버스 101번을 타고 세화 환승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입장료: 성인 1100원, 청소년 500원
주소: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제주/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