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 중 누가 가장 오래 살았을까? 성군인 세종대왕? 아니다. 정답은 영조(1694~1776)다. 의학이 발달하지도, 먹을거리가 풍부하지도 않던 시대에 82살까지 살았으니 ‘장수왕’이라 불러도 될 법하다. 영조의 장수에는 밥상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고기를 좋아했던 세종대왕과 달리 영조는 흰 쌀밥도 싫어했다. 나물과 보리밥이 올라간 소박한 밥상을 즐겨 먹었다. 하지만 그런 영조도 때로 별미를 찾았다. 살짝 구운 사슴 고기는 당쟁 등에 지친 그에게 가뭄 날 단비 같은 존재였다.
제주는 영조가 자주 먹은 보리밥처럼 건강한 식재료가 넘쳐나는 섬이다. 신선한 전복과 탱탱한 옥돔, 고소한 고사리가 식당마다 넘쳐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제주엔 영조가 즐긴 사슴 고기구이처럼 별미를 파는 식당들이 많아졌다. 별난 음식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 비린 듯 비리지 않은 고등어 샌드위치, ‘솔 피시’(SOL FISH)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 이중섭의 손편지와 그림 등이 전시된 ‘이중섭미술관’은 서귀포시에 있다. 제주 여행의 단골 코스인 이 미술관은 고즈넉한 언덕에 있어 자박자박 걷는 맛도 있다. 워낙 찾는 이들이 많다 보니 주변엔 수제 만년필 등을 파는 공방 등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다. 여행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것이다.
그 가게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한 자리 차지하고 여행객에게 손짓하는 식당이 있다. ‘솔 피시’다. 가게 이름처럼 생선을 파는 식당이다. 하지만 이곳 생선은 제주의 여느 횟집과는 다르다.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 생선이 아니다. 이름도 생경한 ‘고등어 샌드위치’다. 영국의 샌드위치 가문이 먹기 시작해 널리 퍼졌다는 샌드위치는 빵 사이에 고기, 채소 등을 넣어 먹는 간편식이다. 빵 안쪽에 버터나 기름기 많은 소스를 발라 빵이 눅눅해지는 것을 막고, 토마토와 다진 고기 등을 넣어 먹는 음식이다. 이 식당은 잘 구운 고등어와 한치가 들어간다. 지방이 많은 고등어는 이름만 들어도 비릿한 맛이 입안에서 감도는 듯하다. 고등어를 짧게는 1~2주, 길게는 몇 달간 숙성시키는 일본의 ‘시메사바’는 그런 비릿한 맛을 극대화한 음식이다. 하지만 ‘고등어=비린 맛’이란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솔 피시’의 고등어는 비리지 않다. 도톰한 빵 사이에 들어가 양파와 함께 춤을 춘다. 한치 샌드위치, 한치 튀김 등도 있다.
주소:서귀포시 서귀동 553-4/064-733-5567/4000~1만9000원
■ 밭에서 나는 쌀로 만든 우엉밥, ‘코삿헌’
주인 김은영(51)씨는 1년 반 전만 해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에 살았다. 제주시가 고향인 그는 문성희 건강요리연구가의 수업을 듣는 등 몇 해 전부터 깨끗한 먹거리에 관심이 커졌다. “더 좋은 식재료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는 그는 ‘산디쌀’로 지은 꼬들꼬들한 밥을 상에 낸다. 산디쌀은 ‘찹쌀’의 함경도 방언이나 논이 없는 제주에서는 밭에서 재배하는 잡곡류를 말한다. 배우 고두심도 이 산디쌀의 매력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김씨는 “(산디쌀은) 찰기가 적어 처음 먹는 이는 생소한 맛이지만 씹을수록 고소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얇게 저민 우엉을 넣어 밥을 짓는다. 비트 무침, 뭇국 등도 같이 나오는데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제주의 건강이 가슴에 닿는 느낌이다. ‘코삿’은 제주 토속어로 ‘기분 좋다’는 뜻이다. 가게는 둘러볼수록 신기하다. 마치 미술관처럼 천장도, 식탁도, 벽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디자인을 전공한 주인의 솜씨가 배어 있다.
주소:제주시 조천읍 북촌9길 13-1/070-8830-1800/1만7000원
■ 게살과 라면의 만남, ‘꼬들꼬들’
서귀포시에 있는 온평포구는 아담한 항구다. 관광객이 몰려들어 소란스러운 여느 제주의 항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도로의 주인인 양 흰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때때로 불어오는 해풍이 여행객을 외롭게 하는 묘한 동네다. 하지만 외로움이 나쁘지만은 않다.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 포구에서 서쪽으로 2~3분 가면 귤색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마구로동 고급참치회 덮밥 이자까야’.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알록달록한 나무들로 장식한 허름한 식당 ‘꼬들꼬들’이 나타난다. 골목 초입의 간판 글은 이 식당의 메뉴들이다. 이 식당이 내세우는 건 참치 덮밥이지만 정작 손님들이 재미있어 하는 건 게살 라면이다. 꼬들꼬들한 라면 위에 숙주, 새우 등이 올라가는데 그 사이에 보들보들한 게살도 있다. 일본식 라면인데 게살과 만나니 별미다.
주소: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1110-4/064-782-8522/1만2000~2만원
제주/글 사진 박미향 <한겨레> ESC 팀장 겸 음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