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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봄나물부터 루콜라·바질까지…점포 500곳 서귀포 오일장

등록 2017-11-02 10:24

[제주&] “제주 이민자” 송호균의 제주살이

모슬포 대정·성산읍 고성 오일장
서귀포 오일장이 규모 가장 커
가성비 높고 특산물·제철 과일 풍성
푸근한 인심 속 제주 정취 물씬
시장 체험은 아이들에게도 좋은 놀잇거리가 된다. 송호균씨의 둘째 아들이 서귀포 향토 오일장의 한 채소가게 앞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장 체험은 아이들에게도 좋은 놀잇거리가 된다. 송호균씨의 둘째 아들이 서귀포 향토 오일장의 한 채소가게 앞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도시 촌놈’인지라 시장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차를 몰고 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됐다. 그런데 서귀포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일장의 주기로 날을 계산하게 된다. “다음 장날이 언제지? 아, 사흘 전이 장날이었으니 모레구나.” 이런 식이다.

제주시권은 물론이고 서귀포 지역에도 동네마다 오일장이 있다. 모슬포에 있는 대정 오일장은 1·6일장이고, 성산읍의 고성 오일장은 서귀포와 마찬가지로 4·9일이 장날이다. 서귀포 지역에서는 물론 서귀포 시내 인근의 ‘서귀포 향토 오일장’의 규모가 가장 크다. 점포가 500곳이 넘는다 하니 웬만한 백화점이 부럽지 않다. 지난 대선 때는 장날만 되면 각 정당의 유세차들이 주차장을 점령하고 선거운동을 벌였다.

오일장에서는 살아 있는 닭도 만날 수 있다.
오일장에서는 살아 있는 닭도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장이 선다고 하니 그저 구경이나 가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웬걸, 각종 식재료가 정말 신선하고 가격까지 저렴해 이제는 장날을 빼먹으면 서운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쓸 차렵이불이나 내가 입을 속옷도 오일장에서 샀다. 특히 속옷이 싸서 많이 샀다. “당신, 시장에서 속옷 사 입는 남자였어?” 아내가 놀려댔다. 집에서 쓰는 식칼이나 과도가 무뎌지면, 장날에 맞춰 신문지에 싸 들고 가서 갈아 왔다.

우리 부부는 고수를 좋아해 고수가 들어간 샐러드나 파히타(멕시코식 쌈 요리) 등을 자주 해 먹는데, 서귀포 시내 대형마트에서도 고수를 팔지 않아 차를 몰고 신서귀포까지 나가야 했다. 그런데 오일장에서, 무려 직접 재배한 고수를 파는 채소 가게를 발견했다. 당근, 무, 대파, 가지, 오이 그리고 고수 한 다발. 매번 서귀포 오일장 ‘삼무농산’에서 사는 기본 품목인데, 전통시장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이 가게에선 루콜라나 바질도 판다. 아이들이 유모차를 타던 때부터 자주 찾다 보니 “오늘은 둘째가 안 왔네?”라며 반겨주고, 덤도 얹어주신다. 도시에선 단골 대접을 받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오일장 인심은 살갑고 푸근했다. 제주답게 몸이나 톳 등의 해조류를 파는 가게들도 많다.

어물전은 또 어떤가? 서귀포 시내에는 중앙로터리 근처에 상설 시장인 ‘매일올레시장’이 따로 있는데, 장르의 차이가 있다. 횟집이 주력인 매일올레시장이 방어나 한치 등 제철 회 한 접시에 소주를 기울이거나 포장해 가는 곳이라면, 서귀포 오일장의 어물전에선 주로 집에서 해 먹을 해산물들을 판다. 싱싱한 생물 삼치 한 마리를 사서 구우면 밥상이 그렇게 풍성해질 수가 없다.

서귀포 향토 오일장 간판.
서귀포 향토 오일장 간판.
계절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오일장만이 가진 매력이다. 봄에는 생고사리를 비롯한 봄나물들이 향긋하고, 찬바람이 불면 감귤이 나왔다. 가끔 육지의 지인들에게 감귤, 한라봉, 애플망고 등의 제철 과일을 보내는 곳도 이곳 오일장이다.

떡볶이나 핫도그, 호떡 같은 군것질거리도 차고 넘친다. 돼지껍데기를 얹어주는 1만원짜리 족발을 포장해 가면 두 부부가 다 못 먹고 남길 정도로 양이 많다. 막걸리 한 잔도 빠질 수 없다. 이주 초반부터 자주 가던 국밥집이 있는데, 아내와 국밥 한 그릇에 파전이라도 놓고 자주 막걸리를 부어 마시곤 했다. 가끔 기분이 내키면 주문하는 참새구이는 짭짤하고 고소했다. 올해 초 <한겨레> 토요판의 최아무개 선배가 찾아주셔서 이 집으로 안내했는데, 죄송하게도 진짜 맛집은 따로 있었다. 아내가 알게 된 서귀포 토박이의 추천으로 뒤늦게 가본 ‘본전식당’의 5000원짜리 순대국밥은 그야말로 가성비가 끝내줬다. 머릿고기도 기가 막혔다. 다시 오시면 꼭 제대로 된 집으로 모실 생각이다.

유명한 관광지들로 빼곡한 서귀포지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한 번 일정을 맞춰 오일장을 찾아가라고 권하고 싶다. 제대로 된 제주의 정취를 느끼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서귀포에서의 삶은, 풍요롭고 즐겁다. 오일장이 있어 더욱 그렇다.

송호균/제주도민이 된 육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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