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 교회에서 자리덕 선착장으로 가는 억새밭길을 한 관광객이 걷고 있다. 박영률 기자
‘가파도(갚아도) 좋고 마라도(말아도) 좋고.’
한반도 가장 남쪽에 있는 이 두 섬이 빚을 돌려받기가 어려울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는 데서 유래한 제주도 속담이다. 하지만 이 섬들은 요즘 전국에서 가장 핫한 관광지 중 하나가 됐다.
마라도는 한반도의 최남단이자 육지에서 본다면 제주도의 끝이다. 배를 타고 가다 보면 섬 전체가 하나의 목장처럼 보이는,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예쁜 섬이다.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된 이 섬을 지난해 41만8천명이 찾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쟁반을 엎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마라도는 면적이 0.3㎢에 불과하다.
마라도에는 살레덕과 자리덕, 선착장 두 곳이 있는데 풍향에 따라 선착장 중 한 곳에 배가 선다. 13일 오전 살레덕 선착장에 내리니 눈앞에 탁 트인 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초지는 편의점과 짜장면집이 있는 거리로 이어진다.
마라도를 대중적인 관광지로 만든 것은 개그맨 이창명이 등장하는 한 통신사의 광고였다. 이 광고가 나간 뒤 짜장면은 마라도에서 꼭 먹어봐야 할 대표 음식이 됐다. 행정자료로는 65가구 127명이지만 실제로는 35가구 50여명이 사는 이 섬에 짜장면집만 10곳이나 있다. 젊은 해녀가 한다는 한 짜장면집에서 급하게 짜장면 한 그릇을 해치웠다. 톳이 올려져 있는 것 외에 특별한 맛은 없지만 뱃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먹는 데 가장 제격인 음식이다.
짜장면 거리를 중심으로 편의점도 두 곳이나 있어 굳이 생수나 간식거리를 육지서 가져갈 필요가 없다. 자리덕 선착장 부근, 짜장면 거리 초입에 지난해 문을 연 GS25 편의점 점장은 마라도 이장인 김은영(47)씨다. 김 이장은 “육지와 달리 아침에 열고 밤 9∼10시쯤 닫는다”며 “짜장면집들은 마지막 배가 떠난 뒤인 4시 반께에, 가장 늦게 하는 횟집도 저녁 8시께면 닫지만 편의점은 민박 손님을 위해 조금 더 문을 연다”고 말했다. 그 안쪽에 있는 편의점은 약 10년 전 생겼다.
자리덕 선착장 부근에 있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 분교는 2016년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한 뒤 신입생이 없어 2년째 휴교 상태다.
작은 섬이지만 교회와 성당, 절도 있다. 특히 등대 부근의 천주교 성당은 독특한 모양으로 인기가 많다. 자리덕 선착장 앞 억새길을 따라 올라가면 억새밭 한가운데 근사한 교회가 있다. 짜장면집 거리를 지나 해안가에 동화 속 집 같은 초콜릿 캐슬이 보인다.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초콜릿 박물관에서 홍보관으로 지어놓은 건물인데 그 옆 빨간 카페에서는 커피와 디저트도 판다. 사유지여서 이장을 통해 말만 잘해 사전 허락을 받으면 앞마당에서 하룻밤 야영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어 대한민국 최남단임을 알리는 기념비와 마라도 성당을 지나면 1915년 설치된 마라 등대가 나온다. 세계 해도에서 제주도는 표기되지 않아도 마라 등대는 표기된다고 하는데 앞이 탁 트여 사진찍기에 그만인 장소다. 마라 등대를 지나 쭉 내려오면 다시 살레덕 선착장이다.
배를 탈 때 반드시 지정된 다음 배로 나와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체류시간이 1~2시간밖에 안 돼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배를 놓치더라도 조금 여유가 있는 마지막 배로 나올 수도 있으니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여건이 된다면 마라도의 일몰과 일출을 즐기며 하룻밤 머물 것을 권한다.
가파도는 마라도와 제주 사이에 있지만 찾는 이가 드물었다. 그러다 <1박 2일> 등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고 가파도에 제주 올레 10-1코스가 열리면서 명성을 얻게 됐다. 특히 섬 전체가 청보리밭으로 장관을 이뤄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봄철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배를 타기 힘들 정도다. 최고 높이가 20.5m에 불과해 한국의 유인도 가운데 가장 낮은 섬이다. 덕분에 섬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어디에서든 탁 트인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봄철이 성수기지만 가을엔 금빛 억새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그래서 봄철보다 인파가 적은 가을의 가파도가 더 마음에 든다는 이들도 있다. 1~2시간이면 해안도로를 따라 섬 전체를 돌 수 있지만 섬 안 올레길도 가보고 느릿느릿 걷기를 권한다.
■마라도·가파도 가는 배
모슬포항과 송악산에서 배가 출발한다. 모슬포항에서는 오전 9시50분부터 마라도행 배가 5회, 가파도행 배는 9시부터 4회 출항한다. 성인 기준 마라도 왕복 1만8000원(해상공원 입장료 포함), 가파도 1만2100원. 064)794-5490
송악산에서는 마라도 가는 여객선만 운항한다. 오전 9시15분에 첫 배가 있고, 모두 9차례 배편이 있다. 왕복 요금 1만8000원. 064)794-6661
자리가 없거나 기상 상황에 따라 결항될 수 있으니 사전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마라도·가파도/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