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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제주 산남에 산다. 산남이어서 행복하다

등록 2017-09-29 14:01

[제주&] 제주 ‘이민자’ 송호균의 제주살이

서귀포 등 한라산 이남 지역을 ‘산남’
산북과 산남의 인구수는 7 대 3 비율
따뜻하고, 덜 붐비고, 덜 관광지 같은
서귀포항 전경
서귀포항 전경
이건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다. 서귀포를 중심으로 한 한라산 이남 지역을 ‘산남’, 북쪽의 제주권을 ‘산북’이라 칭하는데, 우리 부부는 제주 이주를 결정하면서 별다른 고민 하지 않고 서귀포를 택했다.

우선 산남은 따뜻하다. 한라산이 북쪽의 찬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정말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한겨울에도 지나치게 춥거나 건조하지 않다. 언제든 아이들이 쾌적하게 뛰어놀 수 있는 서귀포의 따뜻한 겨울이 마치 축복처럼 느껴진다. 제주 감귤이 주로 산남에서 재배되는 것도 이런 기후 차이 때문이다.

사람도 적고 덜 붐빈다. 산북과 산남의 인구수는 대략 7 대 3 정도라고 하는데, 요즘 제주시에 가보면 산남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교통 체증에 깜짝 놀란다. 가끔 볼일이 있어 서울에 갈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서귀포에서 지내다가 제주시에 들어갈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여행자로서 제주를 찾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차이다.

송호균씨의 두 아들이 서귀포시 법원포구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송호균씨의 두 아들이 서귀포시 법원포구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바다는 또 어떤가? 물론 산북에는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는 해수욕장이 많다. 해저 지형이 모래로 이뤄진 곳이 많아서다. 애월읍이나 월정리 앞바다가 대표적이다. 반면 산남의 바닷속은 대부분 제주 특유의 검은색 현무암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산북의 바다가 화려한 에메랄드빛이라면, 산남의 바다는 투박하지만 작은 포구에 나가 보말이나 거북손을 따거나 뜨거운 여름날 아이들과 함께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는 그런 바다다. 화려함은 덜 해도, 지나치게 ‘관광지’ 같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

스쿠버다이빙의 ‘메카’로 통하는 섶섬, 문섬, 범섬도 산남 서귀포에 있다. 산북에서도 다이빙을 많이 하지만, 그래도 바닷속의 아름다움으로 따지면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이 최고다. 한여름에는 아이들과 함께 범섬이 지척에 있는 법환포구 천연 물놀이장에 나가곤 한다. 용천수가 솟아나와 예전부터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여기서 몸을 씻었다고 하는데, 작은 수영장처럼 되어 있어서 어린아이들이 놀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서귀포시 ’칠십리 시 공원’ 폭포전망대에서는 한라산과 천지연 폭포가 한눈에 보인다.
서귀포시 ’칠십리 시 공원’ 폭포전망대에서는 한라산과 천지연 폭포가 한눈에 보인다.
산남의 ‘숨겨진 보석’은 또 있다. 서귀포 시내 ‘칠십리 시 공원’ 안에 있는 폭포전망대다. ‘칠십리’라는 지명은, 예전 관아가 있었던 성읍에서 이곳까지 거리가 70리(약 28㎞)라는 데에서 유래했다. 화가 이중섭이 가족들과 자주 시간을 보냈다는 ‘자구리 해안’과 서귀포항 일대의 거리 이름이 지금도 ‘칠십리로’다.

공원은 제주 출신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서귀포를 노래한 시와 노랫말 등을 비석으로 만들어 조성한 곳인데, 이주 첫해에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러 들어갔다가 전망대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마침 매우 습하고 더운 날이었는데, 절대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직진하지 않는 첫째와 걸음마도 시작하지 못한 둘째를 한꺼번에 건사하기가 참 힘들었다.

‘폭포고 뭐고 그냥 집에 갈까’ 고민하는 사이에 어찌어찌 도착했는데, 한라산 백록담과 천지연폭포가 한눈에 펼쳐지는 절경에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천지연폭포를 한 발 떨어져 감상하는 것은 물이 바로 눈앞에서 떨어지는 풍경의 장쾌함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물론 한라산이 보이는, 구름이 없는 맑은 날 찾아야 한다. 해마다 10월에는 공원 일대에서 ‘칠십리 축제’가 열리고, 2월에는 매화가 흐드러진다. 집에서 차로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어서, 날씨만 허락한다면 하루가 멀다고 찾곤 한다.

아주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여기저기 다녀봐도 우리 부부에겐 아직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라산과 천지연폭포의 전경이 ‘산남 제1경’이다. 뜻밖에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한 곳이기도 해서다.

앞으로도 도내에서 이사를 하겠지만, 산북으로 올라가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산남에 산다. 산남에 살아서 행복하다.

글·사진 송호균/제주도민이 된 육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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