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매(1716~1797)는 중국 청나라 시대의 인물이다. 시인이었던 그를 후대의 사람들은 음식 사학자로도 기억한다. 그가 펴낸 고서적 <수원식단> 때문이다. 서른세살 때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관직을 사임하고 낡은 정원을 사들여 ‘수원’이라 이름 짓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평소 사람들과 교류하길 즐겼던 그는 초대받은 집의 음식이 맛있으면 반드시 요리사를 보내 배워 오게 했다. 40여년간 지속한 그의 음식 사랑이 360가지가 넘는 조리법을 담은 명저를 탄생시켰다. 그의 음식 철학은 투철했다. ‘요리사가 해서는 안 될 14계명’에는 ‘요리 이름만 번듯하게 지어서는 안 된다’ ‘요리를 미리 만들어 두면 안 된다’ 등이 꼼꼼히 적혀 있다. 무릇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먹을거리를 만드는 이는 생각이 반듯해야 한다. 맛은 그다음이다. 제주에도 이런 신념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식당 주인들이 있다. 이들의 맛이 궁금하다.
■ 해남이 굴 까는 횟집 ‘일통이반’
한국의 유명한 서양 요리사 오세득이 칭찬한 ‘일통이반’은 해녀가 아니라 ‘해남’이 주인인 횟집이다. 해남은 해녀처럼 물질로 딴 전복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다. 해녀만큼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명맥은 꾸준히 유지됐다. 자타공인 ‘대한민국 해남 1호’인 문정석(72)씨는 식재료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이다. 물질한 지 50년이 넘는 그는 자연산 전복, 보말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실력이 뛰어나다. 반드시 자기 손으로 딴 해산물을 판다.
‘해남이 하는 횟집’이라는 소문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찾는 이들이 많아 가게 안은 늘 손님들로 장사진을 친다. 그가 딴 해산물은 보기만 해도 바다를 통째로 가져다놓은 듯 침이 꼴깍 넘어간다. 본래 일본으로도 물질 원정을 갔는데,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져 그만뒀다. 이후 ‘일통이반’을 열고 정착했다. 굴·보말·전복 등 해산물이 신선하고 맛있다. 그가 직접 담그는 김치도 한번 맛보면 잊을 수가 없다. (주소: 제주시 중앙로2길 25 / 064-752-1029 / 성게 알 3만원, 묵어숙회 2만5000원, 왕보말 1만3000원 등)
■ 아토피 심한 우리 아이도 한 그릇 뚝딱 ‘마라도에서 온 자장면집’
차림표에 적힌 재료의 철학이 돋보이는 식당이다. ‘화학비료와 농약과 화학첨가물과 유전자조작작물(GMO)이 없는 성역’이라는 글귀는 건강한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자녀가 아토피 등으로 고생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주인 류외향(44)씨가 남편과 운영하는 ‘마라도에서 온 자장면집’은 유명 맛집 소개 방송 프로그램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될 정도로 깨끗한 먹을거리를 추구하는 식당이다. 짜장면을 먹고 난 다음 어딘가 속이 더부룩하고 물을 자꾸 찾게 될 때가 더러 있는데, 이 식당의 짜장면은 그런 법이 없다. 짜장면과 짬뽕의 면은 우리 밀로 만들고 음식에 들어가는 채소도 제주산이다. 면의 색이 흑색인 점이 독특한데, 신선한 톳을 갈아 만든 가루를 섞어서이다.
주인 부부는 방송을 탄 뒤 사람들이 몰리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한 먹을거리를 밥상에 내겠다는 철학은 변함이 없다. 류씨는 “자연주의 맛이 사람과 지구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한다
(주소: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해안로 109 / 070-7539-7038 / 7000~1만2000원)
■ 건강한 제주 전통식 파는 ‘메밀꽃차롱’
돼지고기보다 꿩이 흔했던 섬이 제주다. 꿩은 가난했던 섬사람들의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세련된 카페풍의 ‘메밀꽃차롱’은 ‘꿩 샤부샤부’를 파는 식당이다. 종이처럼 얇은 꿩 살은 쫄깃하다. 팔팔 끓는 육수에 푹푹 담가 익혀 먹으면 제아무리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하다. 고형훈(39)씨가 주인이다. 그는 제주 음식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메밀버무리’와 꿩엿도 별미다. 꿩 살을 쪽쪽 찢어 조청과 섞어 만든다. (주소: 제주시 연오로 136 / 064-711-6841 / 9000~6만원)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음식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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