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이 아부오름 정류장에서 동부 관광지 순환버스에 오르고 있다. 제주/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동부 관광지 순환버스를 타면 ‘오름의 왕국’이라 하는 동부 지역 중산간을 볼 수 있다. 요즘은 유명 관광지보다도 오름과 제주의 속살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전날 서부 관광지 순환버스를 체험한 터라 제주 버스정보 앱을 보고 버스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은 9월 아침부터 제주 관광에 나서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오전 9시15분 표선 제주민속촌 방향으로 가는 빨간 급행버스(120-2)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공항에서 대천 환승정류장까지, 번영로를 따라가는 120-1 급행버스는 48분, 5·16도로와 비자림로를 따라가는 120-2는 1시간이 걸린다. 구제주 시가지를 지나 5·16도로로 접어들자 도로변 제주마 방목지에서 관광객들이 수십 마리의 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비자림로로 접어들자 수령 50년이 넘은 쭉쭉 뻗은 삼나무들이 길가 양쪽으로 들어서 마음마저 상쾌했다. 2002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뽑힌 곳이다. 10시15분께 대천동 환승센터에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용눈이 오름을 오르고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300여m 정도 떨어진 ‘세화 방향’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의 정류소안내기(BIT)는 한국어와 영어로 안내하고 있다. 10시30분 출발한 동부 관광지 순환버스는 교통관광 도우미의 오름에 대한 소개와 함께 4분 뒤 거슨세미오름, 안돌오름, 밧돌오름(밖돌오름), 민오름으로 가는 정류장에 닿았고, 4분을 더 가자 아부오름 앞에 다다랐다. 해발 301m에 있는 이곳은 영화 <이재수의 난>과 <연풍연가>의 촬영지다. 서부 관광지 순환버스가 관광지와 마을 중심이라면, 동부 관광지 순환버스는 오름이 중심이다. 송당리 마을의 주변 농경지에서는 푸릇푸릇한 당근 싹과 무의 새싹들이 중산간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관광지 순환버스가 없을 때는 대중교통으로 오름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버스를 탄 지 15분 남짓 지나자 버스는 드디어 ‘오름의 왕국’으로 접어들었다. 차창 양옆으로 오름들이 나타났다. 다랑쉬오름과 손지오름 앞을 거친 버스는 용눈이오름에 도착했다. 태풍 탈림의 간접 영향권에 접어들어 모자를 눌러쓸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용눈이오름을 오르내리는 탐방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무릎까지 자란 풀들이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만들어내는 초록의 파도가 장관이었다. 오름에 오르자 제주의 넓은 중산간 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탐방객들은 여기저기서 환호를 지르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하늘은 잿빛이지만 오름의 능선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풍요롭고 넉넉했다.
동부 관광지 순환버스로 갈 수 있는 비자림에서 관광객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박승화 기자
잠깐의 등산을 끝낸 뒤 관광지 순환버스를 다시 타고 둔지오름으로 갔다. 중간에는 레일바이크와 수령 500~800년 된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하늘을 가린 비자림, 미로 공원인 ‘메이즈랜드’가 있다. 밭과 밭 사이, 초원과 초원 사이를 뚫은 도로 같다. 버스 안에서는 “800년 넘은 새천년 비자나무도 있다”는 도우미의 설명에 “와!” 하는 탑승객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둔지오름에서는 혼자서 내렸다. 무의 파란 싹들이 정겹게 다가왔다. 탐방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지 길은 정비가 되지 않았고, 가팔랐다. 오름을 오르는 동안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20분 남짓 빠른 걸음으로 오름에 오르자, 태풍의 영향으로 파도가 북동부 해안에 부딪치며 하얀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라산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병풍처럼 오름이 펼쳐지고, 그 아래로 돌담과 방풍림으로 구분된 밭과 곶자왈이 한폭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했다.
오름을 둘러보고 나서 다시 도착한 순환버스에 오르자, 도우미가 둔지오름에서 탑승하는 관광객은 처음이라며 웃는다. 다음 목적지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동백동산 습지센터다. 습지센터가 있는 선흘곶자왈은 자연 생태가 뛰어나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제주고사리삼 등 다양한 희귀 동식물의 중요한 서식처이자 생물 다양성·생태계의 보고다. 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수풀로 우거진 곶자왈에서 탐방객들이 이따금 눈에 띄었다. 버스는 다시 오름과 관광지를 지나 유네스코 3관왕(생물권보전지역 지정, 세계자연유산 등재,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달성한 제주 섬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만든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와 거문오름을 거쳐 대천환승센터로 돌아왔다.
성산포 방면에서 온 빨간 급행버스(110-1)를 타고 공항까지 오는 데 40분이 걸렸다. 기사가 제주 방언으로 “공항 다 와수다. 잘 갑서. 조심헙서”라고 인사하자 버스 안은 유쾌한 웃음바다가 됐다.
제주/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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