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균씨와 큰아들이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조랑말 체험공원에서 말에게 당근을 먹이고 있다.
제주로 이주해 와서 눈으로 실감하는 큰 변화 중 하나는 곳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광경이 신기하기만 해서 길을 가다 말들만 보이면 차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말들을 친구처럼 느끼는 것 같다. 큰아이가 20개월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작년 이주 초반의 일이다. 길가에서 울타리 근처의 말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주위의 관광객을 따라 바닥의 풀을 뜯어 말에게 먹이려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닌가?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풀 한 움큼을 모아쥔 그 공손함이라니! 귀엽기도 했지만 어이가 없었다.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일이 모두 전투 같던 시절이었다. 엄마·아빠에게도 그렇게 좀 하면 안 되겠니?
‘헌마공신’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제주는 조선 선조 때부터 모두 1300여마리의 말을 나라에 바쳐 지금의 부총리급이라는 종1품 숭정대부에 제수되기도 했던 ‘헌마공신’ 김만일의 고장이다. 김만일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나라에 말을 바쳤고, 벼슬도 세습되어 220년간 모두 83명의 후손이 종6품 감 목관 직을 지냈다. 임금이 타는 ‘어승마’도 대대로 이들이 바쳤다고 한다. 김만일의 고향인 ‘의귀’(衣貴)라는 지명 자체가 김만일이 ‘임금이 하사한 귀한 옷을 받은 곳’이라는 뜻이란다.
후손들은 여전히 말과 함께 살고 있다. 지역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찾아보니 김만일의 후손인 김동후씨는 제주마주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마주이고, 딸인 김성미씨는 서귀포산업과학고 말산업부 교사라고 한다. 김만일은 제주 출신으로서는 가장 높은 벼슬을 지낸 분이다. 그야말로 말과 관련한 명문가라 할 만하다. 올해부터는 말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헌마공신 김만일상’도 제정된다고 한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성 이시돌 목장에서 말들이 노닐고 있다.
지금도 의귀리와 가시리 일대에는 말 목장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성산읍 표선면 가시리 조랑말 박물관은 국립도 아니고, 시립도 아닌 무려 국내 최초의 리립 박물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 자체 사업으로 박물관을 열고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물관과 연계한 조랑말 체험공원에서는 3000원만 내면 당근 한 봉지를 살 수 있는데, 하나씩 막대기에 꽂아 말들에게 먹이다 보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아직 겁이 많은 큰아이가 엄마 품에서 처음 말을 타본 곳도 이곳인데, 워낙 자주 찾다 보니 ‘왕비, 공주, 바람, 섭지’ 등 말들의 이름도 줄줄 꿰고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둘째도 말에게 당근을 하나씩 먹이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곤 한다. 말들이 새끼를 낳고, 망아지들이 커나가는 과정도 지켜보게 된다. 망아지들도 이제 제법 당근을 씹을 만큼 자랐고, 아이들도 말에게 당근을 먹이는 일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컸다. 시간은, 참 잘도 간다.
가시리 말 목장은 봄철에는 유채꽃과 벚꽃이 함께 흐드러져 늘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곤 하는 녹산로에 있는데, 체험 승마도 단지 트랙 몇 바퀴를 돌다 마는 게 아니라 녹산로를 따라 펼쳐진 탁 트인 녹지를 누빌 수 있어서 좋았다. 말 목장에서 놀다 가시리 마을로 내려가 돼지고기 두루치기에 막걸리나 한잔 기울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가시 식당, 가스름 식당, 나목도 식당 세 곳이 모두 맛있다. 흑돼지 삼겹살도 기가 막히다.
우리 부부는 육아에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이곳 가시리 목장에서 단지 체험이 아니라 정식으로 승마를 배워볼 계획을 갖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가르쳐볼 생각이다. 경마 잡히고 코스를 도는 게 아니라 진짜 승마 말이다. 작년부터 올 초까지 온 나라를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로 승마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지만, 대충 알아보니 처음 승마를 배우는 데 비용이 아주 많이 드는 건 아닌 것 같다. 말이나 장비를 사는 것도 아니고,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는 비용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미 우리 부부는 다이버인데, 스쿠버다이빙뿐 아니라 네 식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레포츠’의 버킷 리스트가 하나 더 늘었다.
송호균/제주도민이 된 육아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