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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섬속의 미술관을 걷다, 제주비엔날레

등록 2017-08-31 11:22수정 2017-09-01 11:23

[제주&] 미술관기행①서귀포 작가의 산책길 미술관들
4.9㎞ 거리 지붕 없는 거대한 미술관
‘폭풍의 화가’ 상설전시 기당미술관
이중섭의 추억 어린 이중섭미술관
칠십리 시 공원 산책로 곳곳엔 조형물

대한민국 최초의 시립미술관 기당미술관에서 아트올레 참석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서귀포/김진수 기자 jsk@hami.co.kr
대한민국 최초의 시립미술관 기당미술관에서 아트올레 참석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서귀포/김진수 기자 jsk@hami.co.kr
“바람·돌·여자에 미술관을 더해 사다도라지요.”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김선희 관장의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제주는 인구 대비 미술관이 가장 많은 섬이 되었다. 인구 60만 남짓한 섬에 모두 18개의 미술관이 있다. 이중섭, 변시지, 장리석, 김창열 등 거장들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9월2일부터 12월3일까지 석달 동안은 첫번째 제주비엔날레가 도내 5개 권역에서 열린다. 미술의 섬이 된 제주의 미술관으로 떠난다.

“우르릉 쾅!”

19일 오후 2시 서귀포시 서홍동 기당미술관 제주비엔날레 아트 올레 여섯번째 행사가 열리는 중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빗소리가 미술관 천장을 때렸다.

비와 천둥소리 속에서 ‘폭풍의 화가’라는 이름을 가졌던 변시지 화백의 그림을 보는 것은 특별한 체험이었다. ‘황톳빛 제주화’라는 독창적인 화풍으로 세계에 알려진 변 화백은 서귀포 출신 작가로 일본과 서울 생활을 거쳐 1975년 고향 제주로 귀향한 뒤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제주 사람을 통해 인간 본성을 통찰했다. 변 화백의 그림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도 전시되고 있는데 기당미술관은 그의 작품 38점을 소장하고 상설 전시하고 있다.

기당미술관에 걸린 변 화백의 그림에는 대부분 남자와 말, 절벽 위 초가집과 바다와 배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림은 그 몇개의 한정된 소재로 절망과 희망 등 다양한 주제들을 표현하고 있다. 해설사 강춘생씨는 <태풍>이란 그림을 해설하면서 “저 파도 치는 폭풍우에도 저 멀리 한점 조각배가 떠 있는데, 배는 희망의 끈”이라며 “남자도 말도 저 멀리 배를 응시한다”고 설명했다.

기당미술관 전경                                                                                                                                                         서귀포/김진수 기자
기당미술관 전경 서귀포/김진수 기자

한국 최초의 시립미술관인 기당미술관은 재일교포 사업가 기당 강구범 선생이 지어서 서귀포시에 기증했으며 1987년 문을 열었다. 변 화백의 그림도 좋지만 농촌의 ‘눌’(볏짚단)을 형상화한 미술관 건물도 볼만하다. 내부 천장도 초가집 서까래 지붕을 형상화한 것이며 자연 채광이 되도록 설계됐고, 한쪽에 변 화백의 작업실도 재현돼 있다.

이날 행사는 서귀포의 기당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등을 돌아보고 이중섭 창작스튜디오에서 입주작가들과 대화를 가지는 순서로 진행됐다. 행사에는 2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는데 이 기행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 6시에 서울 송파구의 집을 나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왔다는 초로의 부부가 눈길을 끌었다. 부인 김혜경씨는 기행을 마친 뒤 “미술이 어렵고 문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행사를 통해 한결 가깝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방문한 곳들은 ‘작가의 산책길’의 일부다. 작가의 산책길은 서귀포에 머물던 예술가들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다. 모두 4.9㎞, 3개의 코스로 구분해놨는데 그 안에 이중섭미술관과 기당미술관, 시비가 곳곳에 서 있는 칠십리 시 공원과 자구리 해안(조각공원), 소암기념관 등이 순환 코스로 이어져 있다. 정방폭포 어귀의 왈종미술관도 가볼만하다. 비 때문에 자구리 해안 등 일부 구간은 못 가게 되었지만, 이날 아침 혼자서 미리 작가의 산책길 전 구간을 돌아봤다.

이중섭 미술관  전경                                                                                                                                      서귀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이중섭 미술관 전경 서귀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길은 화가 이중섭의 추억에서 시작된다. 이중섭공원 옆 이중섭미술관은 소박한 작은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이중섭이 살던 옛집과 함께 있다. 그는 1951년 전쟁을 피해 고향 원산을 떠나 제주도 서귀포로 가족을 데리고 왔다. 가난했으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불과 11개월 만에 그의 일본인 아내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와 아들은 일본으로 떠나야 했고, 1953년 잠깐의 해후 뒤에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런 인연으로 이곳에 미술관이 생겼지만 교과서 등에서 보던 중섭의 황소 그림은 없다. 수십억 원 하는 그림값을 열악한 서귀포시 재정이 감당하지 못해서다. 미술관에 전시된 것은 주로 이중섭과 아내 마사코의 절절한 사랑을 담은 편지와 은박지에 담은 소품들이다. 하지만 옥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옛 거리와 서귀포항, 문섬과 섶섬의 풍경은 이중섭의 추억을 더듬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술관 바로 아래는 이중섭과 가족들이 살던 작은 초가집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고, 미술관 옆에는 1963년 개관해 시민들의 애환을 담아오다 지금은 예술공연장으로 쓰이고 있는 옛 서귀포 관광극장이 추억을 담고 서 있다.

이중섭 거리                                                                                                                                            서귀포/ 김진수 기자
이중섭 거리 서귀포/ 김진수 기자
각종 가게와 공방들이 아기자기 들어선 이중섭 거리를 따라 내려와 나폴리 호텔 부근 샛길로 접어들면 칠십리 시 공원이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공원길도 빼어나게 아름답지만, 곳곳에 조형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이곳을 포함해 작가의 산책길 전 구간에 40여점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으니 그 자체로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할 만하다. 이중섭 거리 근처 커뮤니티센터(안내소)에서 받은 산책길 지도에는 이 작품들의 위치가 사진과 함께 번호로 매겨져 있어 작품들을 찾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의 산책길 전 구간에 40여점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서귀포/박영률 기자
작가의 산책길 전 구간에 40여점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서귀포/박영률 기자
산책로와 이어지는 기당미술관에 들렀다가 천지연폭포 어귀 천지연 광장을 거쳐 마을 길을 지나면 자구리 해안에 닿는다. 자구리 해안에는 이중섭이 은박지화를 그리는 모습을 형상화해놓은 정미진 작가의 조형물 <게와 아이들-그리다> 등 여러 가지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아메리카노 한잔을 옆에 두고 벤치에 앉아 넋 놓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 정겹다. 해안 길을 따라 정방폭포 쪽으로 잠시 걷다 보면 진시황의 명을 받들어 불로초를 찾으려고 길을 떠난 서복이 정방폭포를 거쳐 갔다는 전설에 기초해 지어놓은 서복전시관이 나온다. 정방폭포 입구에는 이왈종 화백의 사설 미술관인 왈종미술관이 있다. 이어진 올레길을 따라 소정방폭포 쪽으로 걸어가면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초기작 ‘소라의 성’도 볼 수 있다.

작가의 산책길 `자구리해안`                                                                                                                                              서귀포/김진수 기자
작가의 산책길 `자구리해안` 서귀포/김진수 기자
시간이 없으면 서복전시관 앞에서 이중섭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면 된다. 그 길목에 서예의 대가 소암 현중화 선생의 제주의 바람을 재현한 듯한 필체를 볼 수 있는 소암전시관이 있다. 그냥 빨리 걸으면 전 구간이 두 시간 남짓한 거리지만 미술품들을 제대로 감상하자면 한나절도 부족하니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게 좋다.

서귀포 시청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해설사와 함께 무료로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는 작가의 산책길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신청자가 적으면 운영하지 않으니 미리 문의해보고 가야 한다. 064-740-2482

서귀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작가의 산책길                                                                                                                                                                      서귀포시 제공
작가의 산책길 서귀포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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