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이 중일·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중국 폭격용으로 사용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알뜨르비행장 격납고를 살펴보고 있다. 제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중국 난징시의 난징대학살 기념관 전시공간에는 ‘세계 항공전 사상 미증유의 대공습’이라는 제목이 붙은 자그마한 신문 기사가 전시돼 있다. 1937년 8월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성공적으로 폭격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와 제주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 한·중·일 세 나라의 한가운데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다. 일본 남단의 규슈 지방과 중국 남부를 잇는 곳에 위치한다. 일본은 1926년 군사적 목적으로 제주시 산지항공사를 하면서 제주도의 군사적 용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에 비행장 건립을 계획했다.
이곳에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전쟁의 흔적이 묻은 군사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의 침략전쟁 아래서 고통을 당했던 흔적들이다.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알뜨르비행장의 옛 급수탑에 오르자 넓은 들판의 밭과 밭 사이에 격납고와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본 해군은 중·일전쟁(1937년 7월7일~1945년 9월2일, 중국에서는 ‘항일전쟁’으로, 일본에서는 1931년 9월18일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15년 전쟁’으로 부른다) 전인 1931년 3월 항공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해 1935년 60만㎡ 규모의 비행장을 완공했다. 주민들은 지명을 따서 지금도 ‘모슬포비행장’ 또는 ‘알뜨르비행장’이라고 부른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통신시설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군사시설. 제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주도가 일본의 전략적 관심을 끈 것은 1937년 8월 중순이었다. 같은 해 7월7일 중국 베이징 근교 루거우차오(사건을 계기로 중국 북부에서 시작된 전쟁은 8월 들어 중국 중부까지 전선이 확대되면서 중·일 전면전으로 전개됐다.
일본 해군은 당시 최신형이자 항속거리가 뛰어난 96식 육상공격기를 사용해 8월15일부터 난징에 대한 해양폭격을 개시했다. 처음에는 일본 나가사키 현의 오무라(大村) 항공기지에서 출격해 폭격했지만, 귀착지는 제주도 항공기지였다. 당시 일본에서 중국 중부에 가장 가까운 장소가 제주도였기 때문이다. 이후 제주도 항공기지에 오무라 해군 항공부대가 주둔하게 되면서 난징, 상하이 등지에 대한 해양폭격 거점도 제주도로 옮겨졌다. 이와 동시에 알뜨르비행장은 132만㎡로 확장됐다. 태평양전쟁 시기인 1944년 10월께부터는 220만㎡로 추가 확장하는 공사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근처 마을은 해방이 지난 한참 뒤에도 ‘대촌부락’으로 불리다 지금은 ‘대동’(大洞)으로 바뀌었다.
일본 해군은 1937년 11월 중순 상하이 부근을 점령해 비행장을 확보하게 되자 오무라 해군 항공부대의 본거지를 중국으로 옮겼다. 제주도민들은 당시 일본군 비행기가 중국 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대정읍 문상진(92)씨는 “지나사변(중일전쟁)이 발발한 때부터 알뜨르비행장에서 중국 쪽으로 폭격하러 비행기가 계속 날아가는 것을 봤다. 비행기가 뜨면 서쪽으로만 날아갔다”고 기억했다.
제주도의 일본군 군사시설을 연구한 쓰카사키 마사유키는 “제주도의 갱도 진지 등 군사시설은 일본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하다. 제주도로부터의 난징 공습은 36회, 연 600기, 투하폭탄은 300t에 이르고, 난징의 많은 시민이 살상됐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평화단체들은 2014년부터 해마다 난징대학살을 추도하는 12월13일이 되면 알뜨르비행장 일대에서 추도식을 열고 있다.
제주도의 일본군 해안진지 유적지도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태평양전쟁(1941년 12월7일~1945년 8월15일) 말기인 1945년 제주도는 거대한 요새였다. 패전을 눈앞에 둔 일본군은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제주도를 방어기지로 삼고 최후의 결사항전을 벌이는 ‘결(決) 7호 작전’ 준비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일제는 제주도 해안가를 빙 둘러 해안진지를 구축했다. 만주에서 전투를 벌였던 관동군 등 각종 무기를 갖춘 군부대들이 제주도 전역에 배치됐다. 1945년 8월 기준 인구 25만여명의 제주도에 6만7천여명의 일본군이 주둔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민들을 동원해 군사시설 용도로 만든 지하갱도 진지. 제주/ 허호준 기자
비행장뿐 아니라 각종 군사시설 구축에는 제주도민들이 강제동원됐다. 일본군은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 두꺼운 콘크리트로 반원형의 지붕을 한 유개엄체(有蓋掩體·일종의 격납고) 20개를 만들었다. 비행기를 숨겨놓기 위한 이 시설 가운데 현재 19개가 알뜨르비행장 주변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비행장 입구를 따라 100여m 들어가다 보면 왼쪽에는 지하벙커(비행대지휘소 또는 통신시설 추정)가 있다. 너비 28m, 길이 35m 규모의 반지하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구조물인 이 벙커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벙커 위의 잡목들을 제거해 정돈된 느낌이다. 모슬봉 레이더기지, 알오름의 거대 갱도 진지, 탄약고, 발전시설, 통신시설 등이 모두 그때 만들어졌다. 이교동 통신시설 주변도 깨끗하게 정비됐다. 일본 해군은 알뜨르비행장 근처의 알오름 정상에 네 개의 고각포진지를 구축하고 고각포를 배치해 대공방어에 나섰다. 지금도 반경 4.3m, 높이 1.5m 규모의 콘크리트 구조물 흔적이 있는데, 알뜨르비행장 및 송악산 일대 군사시설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알오름 지하에는 전투사령실과 탄약고, 연료 저장고, 어뢰 저장고 등 주요 군사시설을 감출 목적으로 높이 3m, 너비 4m에 길이 1220m에 이르는 갱도 진지가 있다. 송악산 해안 마라도행 선착장 남동쪽에는 19개의 어뢰정 진지가 있다.
문화재청은 2002년 5월 격납고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했고, 2006년 12월에는 지하벙커와 통신시설, 성산 일출봉 해안진지 등 12곳을 추가 지정했다.
이 시기 일제는 제주도민들을 군사시설 구축에 내몰았다. 제주도민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면 마을별 몇 명씩 할당돼 일본군의 군사시설 구축에 강제동원됐다. 주민들은 격납고나 갱도 진지를 건설하다가 중상을 입는 경우도 발생했다.
당시 15살의 나이로 이곳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김성방씨는 과거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1945년 5월에 아버지, 형과 함께 강제로 노무 동원돼 송악산에서 굴을 파다가 해방돼 돌아왔다. 당시 60여명 정도 합숙하면서 일을 했는데 곡괭이로 작업하다가 이마를 다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뒤부터 3년 동안 비행장 건설과 격납고 건설에 동원됐던 문상진씨는 “주민 50여명이 비행장에서 일주일 동안 살면서 노동하면 다시 주민 50명이 가서 교대했다. 바다에서 자갈을 옮기고, 망치로 돌담을 잘게 부순 뒤 갖고 가서 격납고를 만들고 위에는 흙을 덮어서 풀을 심고 위장했다. 그때는 장비가 없어 삽과 곡괭이로만 비행장 확장공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결 7호 작전을 위해 일본군이 방어진지 104곳, 비행장 4곳, 해군용 특공기지 5곳 등을 구축했다.
가는 길
■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 일대
이 지역에는 중일전쟁 때부터 활용된 알뜨르비행장을 비롯해 격납고, 고각포진지, 갱도 진지, 지하벙커, 통신시설 등 태평양전쟁 유적지, 제주4.3사건 관련 섯알오름 예비검속 추모비를 볼 수 있다. 대정읍 내에는 한국전쟁 시기 육군 제1 훈련소 관련 정문 기둥과 강병대 교회 등을 볼 수 있다. 4~5시간이면 이들 시설을 둘러볼 수 있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모슬포 종점 정류장(대정읍)까지 시외버스 750-2, 750-3, 750-4 등을 이용해 간다. 버스는 수시로 있다. 그 뒤, 하모2리 정류장 등 대정읍내에서 산이수동 정류장까지 순환버스 951을 타고 간다. 산이수동 정류장에 내리면 송악산 해안 절벽에 만들어진 일본군 해군 특공기지(갱도진지)를 볼 수 있다. 지금은 절벽이 무너질 우려가 있어 출입이 통제됐다. 이곳에서 알뜨르비행장 쪽으로 걸으면서 자연풍광과 군사시설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 성산일출봉 해안특공기지 터
일제는 송악산만 아니라 북촌리, 성산일출봉 등에도 해군 특공기지를 건설했다. 광치기 해변을 따라 갈 수 있는 성산 일출봉 절벽 밑에 있는 해군 특공기지는 아직 접근이 가능하다. 시외버스 710, 710-1 등을 타고 성산리 입구 정류장에 내려서 식당 사이의 골목으로 가면 된다.
제주/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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