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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열살 ‘올레’, 두 갈래 길에 서다

등록 2016-11-23 15:55수정 2016-12-28 13:35

[제주&] “올레길, 바람 불어도 비가 내려도 매력 ”

2016 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인 10월21일 오전 참가자들이 1코스 역올레 시작점인 광치기해변을 걷고 있다.
2016 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인 10월21일 오전 참가자들이 1코스 역올레 시작점인 광치기해변을 걷고 있다.

“세찬 비바람 속에서 광치기 해변 등 제주 올레길을 걸은 것은 혼자선 하기 힘든 체험이었어요.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제주 올레길 1구간 광치기 해변에서 만난 중국 상하이 출신의 30대 여성 장룽룽씨의 말이다. 옛 직장 동료 천이핑(대만)과 함께 제주로 여행을 온 장은 일반적인 중국 여행객들과는 다른 여행을 택했다. 인터넷에서 제주 올레 축제에 대한 정보를 구한 그들은 지난달 21일 제주올레 걷기축제를 찾았고, 이곳에서 잊기 힘든 소중한 체험을 했다.

지난달 21~22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에서는 처음 올레가 시작된 1~2코스를 역으로 걸으며 곳곳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즐기는 ‘2016 제주올레 걷기축제’가 열렸다. 2010년 시작해 올해 7회째를 맞는 축제다. 비록 때로 심하게 바람이 불고 가을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장과 함께 온 천이핑은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올레길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듯하다”며 “중국어 홍보가 부족한 점이 개선되면 좀 더 많은 중국 여행객들이 올레길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6 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인 10월21일 오전 참가자들이 1코스 제주시 구좌읍의 알오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6 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인 10월21일 오전 참가자들이 1코스 제주시 구좌읍의 알오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2007년 1코스(서귀포시 성산읍 시흥~광치기해변) 개장을 시작으로 첫발을 내디딘 제주올레가 우리 나이로 올해 열 살이 됐다. 이전 제주여행은 신혼부부들이나 단체관광객들이 택시나 관광버스, 렌터카를 이용해 유명 관광지나 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단체쇼핑을 하는 식이었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이런 식의 제주 여행은 한계에 이르렀고, ‘제주 이미 가봤고 더 볼 것이 없다’ ‘제주 갈 비용이면 동남아’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제주 관광의 위기였다. 제주올레는 때마침 도입된 저가항공과 함께 제주 관광의 틀을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한 달씩 머물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힐링 여행’을 하러 올레길을 찾는 이른바 ‘올레 폐인’도 생겨났다. 올레 코스 주변에는 세련된 개성을 지닌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등이 생겨나 제주 여행을 풍요롭게 했다. 짐을 가지러 숙소로 돌아올 필요 없이 1만원만 내면 다음 코스에 있는 숙소로 짐을 옮겨주는 등 각종 편의서비스도 정비됐고 7월에는 서귀포에 올레여행자센터도 문을 열었다.

제주올레는 언론인 출신인 서명숙(59) 제주올레 이사장이 10년 전인 2006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제주에도 이런 길을 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 것에서 시작됐다. 서 이사장은 고향으로 돌아와 제주 사람들의 삶의 숨결이 느껴지고, 자연경관이 좋은 곳 등을 중심으로 길을 만들어갔다. 마을 주민이나 땅임자들을 몇번이고 찾아가 설득하고 손으로 길을 내는 길고도 험난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올레는 이제는 26개 코스 425㎞로 늘어나 제주도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됐고, 우도·가파도·추자도 등 제주에 딸린 섬에까지 이어진다.

제주올레의 영향으로 걷기 여행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북한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강화 나들길(강화도 올레길) 등 숱한 걷기 여행길을 만들어냈다. 명소를 찾아가 사진 한장 찍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빨리빨리 여행’이 구석구석을 느끼고 호흡하는 ‘느린 여행’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올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건 압축적 성장 속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지쳐 있었기 때문”이라며 “비슷한 압축적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중국인들에게도 제주올레는 좋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제주올레 걷기축제에서 만난 30대 여성 이은영(서울 강서구)씨도 올레로부터 힐링을 얻는 올레 마니아 중 한 사람이다. 2013년 이래 거의 매년 2~3차례 제주올레를 찾았다. 이씨는 “북한산 둘레길 등 수많은 도보여행길이 만들어졌지만 제주올레처럼 독특한 곳은 없는 것 같다”며 “코스마다 풍경이 다 다른 것도 그만의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대기업 직원 윤상호(46)씨는 고교 시절 친구들과 올레 축제에 참여했다. 한 해에 몇 차례씩 올레길을 찾는다는 그는 “2009년 처음 올레길을 알게 된 뒤로 제주에서 렌터카를 빌려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함께 온 배운연(46·용인시)씨는 “올레길 부근에는 성게미역국, 몸국 등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각종 먹거리가 많아서 좋다”고 말했다. 서울~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417㎞)보다 긴 제주올레 완주를 코앞에 두고 있다는 박종태(서울)씨는 “길도 좋지만 길 위에서 만나는 이들이 더 좋다”며 “언제나 그 길에서 어떤 이를 만날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2016 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인 10월21일 오전 참가자들이 서귀포시 시흥초등학교에서 첫날 마무리 행사로 열린 장필순과 신동수 재즈유닛의 공연을 보고 있다.
2016 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인 10월21일 오전 참가자들이 서귀포시 시흥초등학교에서 첫날 마무리 행사로 열린 장필순과 신동수 재즈유닛의 공연을 보고 있다.
제주를 한 바퀴 도는 하드웨어를 완성한 제주올레는 이제 ‘세계’와 ‘마을’이라는 두 가지 길을 앞에 두고 새롭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먼저 올레길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제주올레를 세계의 명소로 만들기 위한 발걸음이 가볍다. 2012년엔 일본 규슈에 제주올레를 모방한 규슈올레가 세워졌다. 민관 합동 조직인 규슈관광추진기구가 운영하는 도보여행길로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코스개발 자문 및 길 표지 디자인을 제공해 제주올레 자매길로 불린다. 몽골에도 제주올레의 지원으로 올레길이 열린다. 걸어서 만나는 새로운 몽골을 소개할 몽골올레 첫 코스는 내년 6월 개장된다. 박미정 제주올레 홍보팀장은 “최근 몽골에서도 등산 동호회나 걷기 모임이 활성화되는 추세”라며 “몽골 방문 관광객도 꾸준히 증가해 몽골올레를 통한 제주관광 홍보 효과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영국·스위스·캐나다에도 ‘우정의 길’이나 ‘제주올레’라는 이름이 생겨났고,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올레 축제에 참여하거나 올레길을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주올레가 가야 할 두 번째 길은 마을로 향한다. 길을 내주고 여행객을 반갑게 맞아준 올레길 위 제주 마을들과 함께 이 길을 더 오래 지켜나가기 위해 제주올레는 선으로 연결된 이 길을 더 튼튼한 면으로 살찌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마을마다 품은 자원을 활용해 고유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마을 살림과 공동체 회복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주올레의 스토리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작업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는 녹차 초콜릿과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이름난 녹차 마을로, 표선면 세화3리는 허브 마을로 꾸미고, 광활한 승마장을 가진 남원읍 의귀리와는 말을 테마로 한 사업을 준비하는 식이다.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은 “제주올레가 내려 했던 길은 경치 좋은 관광코스가 아니라 삶이 이뤄지고 정신이 깃든 현장”이라며 “걷는 사람들에게는 치유의 행복을, 길 위에 사는 지역민에게는 자부심과 경제적 혜택을, 이 길이 가능하게 해준 자연에는 지속 가능함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박영률 기자, 사진 신소영 기자 ylpak@hani.co.kr

21일 오전 2016제주올레 걷기 축제 참가자들이 1코스 제주시 구좌읍의 알오름을 걷고 있다.
21일 오전 2016제주올레 걷기 축제 참가자들이 1코스 제주시 구좌읍의 알오름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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