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국내 첫 1인 토크쇼 <자니윤 쇼>를 진행한 코미디언 자니윤이 별세했다. 향년 84.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 ‘1인 토크쇼’의 원조였던 코미디언 자니윤(한국이름 윤종승)이 지난 8일(현지시각) 세상과 작별했다. 향년 84.
그는 치매 증세로 로스앤젤레스(LA) 헌팅턴 요양센터에서 지내왔다. 지난 4일 혈압 저하로 엘에이 알함브라 메디컬 센터에 입원했지만 나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검은 고인의 뜻에 따라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메디컬센터에 기증될 예정이다.
자니 윤은 지난 1989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자니윤 쇼>(한국방송2)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본래 미국에서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던 그는 솔직하고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1인 토크쇼가 생소했던 국내 시청자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어색한 한국어 발음조차 ‘버터 발음’으로 불리며 그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군사정권 시절 딱딱한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은 1년 만에 폐지됐지만, 방영 기간에 견줘 반향은 컸다. 이후 1991년 <자니윤, 이야기쇼>(에스비에스), 2002년 <자니윤의 왓츠업>(아이티브이) 등 방송사를 바꿔 비슷한 시도를 이어갔고, 2002년엔 <코미디 클럽>(한국방송2)으로 지상파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기도 했다.
코미디를 향한 재능과 노력이 그를 한 시대를 풍미한 연예인으로 만들었다. 1936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뒤 미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1977년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의 인기 토크쇼 <자니 카슨 투나잇쇼>에 출연해 인기를 얻었다. 단발성으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였는데 너무 뛰어나 34회나 출연한 사실은 유명하다. 1982년 그가 주인공을 맡은 영화 <내 이름은 브루스>(They Call Me Bruce?)가 미국에서 흥행하기도 했다.
1인 토크쇼, 스탠드업 코미디 등 흐름을 앞서가는 방송인이었지만 그는 말년들어 정치권과 인연을 맺으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그가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되면서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2016년 뇌출혈로 입원하면서 임기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감사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치료와 요양을 해왔다.
그의 투병 소식은 <인생다큐, 마이웨이>(채널에이) 등 티브이 프로그램을 통해 간간이 전해졌다. 건장했던 옛 모습과 너무도 달라진 그를 수많은 시청자들이 안타까워하며 쾌유를 빌기도 했다. 방송에서 그는 “여전히 코미디를 사랑하냐”는 아내의 말에 “사랑하고 말고, 내 생각을 하면 항상 웃고(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치기도 했다.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자니윤쇼>의 클로징 멘트처럼 코미디를 사랑하던 남자도 이제 영원한 잠에 들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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