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간 펼쳐진 김태호 피디의 이야기를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앞으로도 엠비시에서 인사드리겠다. 다른 데 안 간다. 나도 <무한도전>으로 돌아오고 싶다. 지라시에 나온 것처럼 유재석과 사이 틀어지지 않았다.” 30일 <문화방송>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김태호 피디는 말미에 “이렇게 요약하면 될 걸 길게 말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종영하는 프로그램 피디와의 간담회가 이렇게 뜨겁기는 아마도 처음이다. 대략 70개 매체가 몰렸고, 질문이 끊이지 않아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도 기자들과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그는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그만큼 <무한도전> 종영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는 뜻이자, 이 프로그램이 한국 예능에 미친 영향력이 상당했다는 방증이다.
■“<무한도전> 시즌2로 돌아오고 싶다” <무한도전> 폐지를 둘러싸고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바로 시즌2 유무다. 방송사는 김태호 피디가 시즌2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데, 김태호 피디 역시 명쾌하게 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무한도전>이냐 아니냐에 대한 고민보다는 자유롭게 생각나는 걸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파업이나 우리가 원해서 쉴 때도 다시 돌아오는 건 정해진 것이니 (아이디어를) <무한도전>의 틀로만 생각하게 되더라. 이번에는 틀을 좀 벗어놓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싶다.”
10년 넘게 방영한 아이템만 500여개. 나영석 피디조차 “놀랍다”고 말할 정도로 매회 새로운 포맷을 선보여 온 그는 지금 자신의 상태를 “탈탈 털어 건조기에 넣어 건조까지 끝난 느낌”이라고 했다. <무한도전>을 처음 시작할 당시 갖고 있던 온갖 아이디어가 이미 고갈됐다는 얘기다. “지금 내 안에 내재된 인문학적 소재나 스토리텔링이 모두 바닥난 상태다. 다시 돌아오려면 보여줄 수 있는 총알이 준비돼야 한다. 다 비워진 상태에서 새로운 걸 채우겠다.” 그는 “그렇게 채워 나온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 될지 다른 프로그램이 될 지 모르지만, 만약 <무한도전>으로 돌아온다면 전체 스토리는 유지하면서 후배 피디들과 나눠서 하는 ‘마블’ 같은 시스템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플랫폼에 대한 고민도 할 예정이다. “<무한도전>을 하면서 어떤 아이템에 대해서는 디지털로 5분 내보내면 어떨까 하는 고민도 했다. 다양한 플랫폼 전략으로 봤을 때 유용한 소재도 있었지만 1주일 내내 <무한도전> 방송을 만들면서 같이 하기에는 버거움이 있었다. 플랫폼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는 “어떤 것도 정해진 것 없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분명한 것은 대중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색깔을 가진 프로그램으로 다시 인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어디 가지 않는다. 엠비시에 있는다.” 10여년간 <무한도전> 틀 안에 있던 김태호 피디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는 <문화방송> 구성원뿐 아니라 타사 예능 피디들도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과거에도 대형 기획사와 타방송사에서 제안받았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무한도전> 연출을 그만둔다는 얘기에 이적설은 다시 한번 꿈틀댔다. 이제는 외부 투자사가 콘텐츠 제작사를 차려준다는 구체적인 얘기까지 돌았다.
그는 “무한도전을 사랑한 것보다 더 큰 유혹은 없었다”고 말했다. “5~6년 전에 피디들이 다른 방송사로 옮길 때부터 이적설이 돌았다. 과거에는 제안받은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없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무한도전>에서 일하는 피디로만 생각했다. 어제도 누가 와이지(YG) 가냐고 묻기에 ‘거기서 내가 뭐해야 하지. 빅뱅을 해야 하는 건가’ 생각했다”며 웃었다.
소문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나름 추측했다. “<무한도전> 틀 안에 있는 내가 바깥 콘텐츠와 소통하는 방법은 직접 찾아가는 것밖에 없다. (문화 관련 콘텐츠를 많이 선보이는) 현대카드에 가서 마케팅 관련해서 묻고, 네이버 사람들도 만나고, 72초 티브이 대표도 만나는 등 직접 찾아가 많은 이야기를 듣고 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대카드로 간다는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는 “돈이나 명예보다는 색깔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몇 년 전부터 <무한도전> 시즌제를 고민했던 것도 프로그램의 색깔이 달라져서다. ‘어떻게 하면 제 색깔을 찾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무도> 폐지는 <무도> 발전의 답을 찾는 과정” 그는 <무한도전>을 그만두려고 한 이유를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10년 넘게 해오며 매너리즘에 빠진 듯 했다. “내가 뭘 해야 하지?가 아니라 <무한도전>을 어떻게 하면 좋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가 이런 결정이 났다. 1등 예능도 좋지만 한 회, 한 회 스페셜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내일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게 됐다.”
가요제, 역사 특집 등 좋은 평가도 받았지만 “잘했다는 느낌보다 부족함을 느끼는 시간이 많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졌다.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아 자괴감이 오던 때도 있었다. 장기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무한도전>이 역사와 전통을 함께하고 시청자와 익숙해 지면서 신선도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시스템적 보완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러나 “역사 문제, 선거 제도, 대체 에너지, 법안 발의 등 사회적인 화두를 던지며 1년에 한두번은 의미를 주려고 한 점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넘어오면서부터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지난해 11월 중순 파업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회사에 이런 상황을 얘기했고 시스템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제작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폐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회사 입장에서는 원치 않은 결말이다”며 “‘끝’이라고 결론 내리고 싶지 않았다. <무한도전>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이렇게 진행됐다. 어제 종방연에서 출연진도 갑작스럽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무한도전>은 31일 마지막 방송을 내보내고 4월 한달간은 피디와 출연진의 코멘터리가 담긴 하이라이트를 방영한다. 그는 “늘 바랐던 순간이지만, 막상 다가오니 기분이 이상하다. 시청자의 기대와 배려를 잊지 않고 있기에 보람찬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당장은 3개월 일정으로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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