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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굿닥터>는 어떻게 미국 시청자를 사로잡았나

등록 2018-03-19 05:01수정 2018-03-19 10:53

미국 지상파 ABC 리메이크
<더 굿닥터> 최근 시즌2 결정
자폐 주인공 성장이야기 높이 평가
트럼프 인종차별 저항감 영향 탓도
한국적 정서 미국서 통해 한류 새길 열어
<에이비시>(ABC) 누리집 갈무리
<에이비시>(ABC) 누리집 갈무리
“놀랍고 신기해요.” 지난 14일 전화로 만난 박재범 작가는 미국 드라마 <더 굿닥터>(18부작) 시즌2가 제작된다는 소식에 이렇게 반응했다. <더 굿닥터>는 박재범 작가가 2013년 집필했던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의사의 성장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굿닥터>(한국방송2·KBS2)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지난해 9월25일부터 미국 지상파 <에이비시>(ABC)에서 방영 중인데, 최근 반응이 좋아 시즌2 제작이 결정됐다. 평균시청률 2%대(18~49)로, 미국내 성공 기준 1.5~2%를 넘겼다. 매회 약 180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첫회 시청자수 1920만명은 <에이비시> 월요드라마 기록을 21년 만에 깼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금껏 미국에 리메이크 판권이 팔린 뒤 실제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은 <신의 선물-14일>(2014년, 에스비에스·SBS)과 <굿닥터> 두 편뿐이다. <신의 선물-14일>은 <썸웨어 비트윈>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7월24일부터 9월19일까지 <에이비시>에서 10회로 내보냈지만, 시즌2는 제작되지 않았다. 유건식 케이비에스아메리카 대표는 <방송 트렌드&인사이드> 기고문에서 “할리우드에서는 파일럿(1회성으로 만든 뒤 반응이 좋으면 정규 편성 하는 것) 제작 결정이 이뤄지는 1월에만 기획안이 100개 이상 올라온다. 이 중 8개 정도만 제작된다”고 말했다. 정규 편성되어도 시즌2로 이어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에이비시> 누리집 갈무리
<에이비시> 누리집 갈무리
이런 치열한 환경에서 <굿닥터>는 어떻게 미국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을까. 전문가들은 드라마에 깔린 휴머니즘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고 말한다. 김지호 <한국방송> 콘텐츠사업부 담당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굿닥터>는 미국 제작사에서 자폐를 가진 주인공이 차별을 견디며 성장해 나아가는 점을 높이 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드라마가 제작되지만 장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는 의외로 별로 없다. 의학드라마에서는 처음이다. 박재범 작가는 “미국 안에서 마이너리티를 효과적으로 그리는 드라마를 찾았는데, 생각보다 그런 소재가 많지 않았다. 자폐라는 희소성과 함께 성장 과정의 휴머니즘이 강조되니 훨씬 더 감성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자폐가 있는 주인공이 여러 사람들의 편견에 부딪히면서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아메리칸 드림의 판타지를 갖고 있는 미국인들에게는 특히 더 보편적인 감성으로 다가온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포레스트 검프>나 <레인맨>처럼 천재성을 가진 장애가 있는 주인공의 성장이야기를 미국시청자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더 굿닥터>의 성공은 최근 미국 사회의 현실적 고민과 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기도 하다. 최근 한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 성인 1337명 중 57%가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답할 정도로 요즘 미국 사회는 차별에 민감하다. 언어장애를 지닌 청소부와 괴생명체의 사랑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받은 것도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더 굿닥터>도 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내세운 것은 물론, 아프리칸, 히스패닉, 아시안 의료진 등 다양한 인종을 주요 인물로 내세웠다. <굿닥터>를 연출한 기민수 피디는 <한겨레>에 “따뜻한 이야기를 보고싶어하는 대중의 요구와 맞아떨어진 것 같다. 진한 장르물 홍수 속에서 휴먼드라마에 목말라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판과 달리 주인공 캐릭터를 자폐에만 집중하면서 선입견을 깨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낳았다. 소아외과가 배경이었던 한국판에서 주인공은 자폐에 10살 지능을 가졌다. 미국판에서는 배경을 일반외과로 변경하면서 ‘10살 지능’을 덜어냈다. 30~40% 분량의 멜로는 10%로 줄이고, 주인공이 겪는 사회와의 갈등 상황에 좀더 초점을 뒀다. 박재범 작가는 “주인공이 마트에서 강도를 당하는 경우 등 장애인이 사회에 내던져졌을 때 겪는 보편적인 상황들을 잘 푼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더 굿닥터>는 자폐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렸다며 지난해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폐증 단체인 ‘오티슴 스피크스’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방송> 제공
<한국방송> 제공
<더 굿닥터>는 한국 드라마의 감성이 할리우드에서도 통했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더 많은 한국 드라마가 할리우드에 진출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한령으로 중국 시장이 막혔지만, <노란복수초>가 우크라이나에서 리메이크되는 등 한류는 다양한 곳으로 뻗어가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를 보면, 예능과 드라마를 통틀어 포맷 수출은 중국 시장의 경우 2016년 70%에서 지난해 55%로 감소했는데, 유럽과 미국은 늘어나는 추세다. 제작비 10~15%를 라이선스 비용으로 받는 것 외에 당장은 큰 수익을 기대할 순 없지만, 넷플릭스 등 플랫폼이 다양화하면서 시즌이 거듭될수록 수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더 굿닥터>는 시즌2 제작만 결정됐을 뿐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아직 없다. 박재범 작가는 “미국 제작사의 자율성에 맡길 것”이라며 “다만 <굿닥터>에서 멜로를 담았던 것은 장애인의 가장 큰 감정의 장벽은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중요한 화두인 사랑 이야기가 좀더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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