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감이 교차했던 작품”이라고 했다. 방송 2회 만에 컴퓨터그래픽 사고에, 스태프가 제작 현장에서 다쳤다. 뭔가를 보여주기도 전에 ‘문제적 작품’으로 집중됐다. 조기 종영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배우들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4일 끝난 <화유기>(티브이엔·tvN)에서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자 요괴 ‘마왕 우휘’로 출연한 차승원은 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사고를 당한 스태프에게 죄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가족,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아프게 한 것”이라는 그의 말 속에 복잡한 생각이 읽혔다.
그럼에도, 배우란 자기의 역을 끝까지 해낼 수밖에 없는 것. 그는 “우리가 약속한 몫을 마무리 짓는 게 배우의 덕목이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차승원의 내공 깊은 연기는 <화유기>를 끝까지 끌고 간 힘이자, 마지막 회 시청률 6.9%(닐슨코리아 집계)로 초반 논란에 견줘 선방하게 만든 요인이다. 그는 <화유기>에서 코믹과 멜로, 공포 등 정극과 희극을 오가며 ‘열일’ 했다. 진선미(오연서)의 슬리퍼 냄새를 맡으며 코믹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등 스위치가 자유자재로 켜졌다. 첫사랑 나찰녀(김지수)와는 애절한 멜로를 찍더니, 진선미의 피를 마시고 요괴의 본성이 깨어나면서는 섬뜩한 공포를 발산했다. 그는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는 연기를 좋아한다. 한 장면에서 울고 웃는 감정을 오가는 게 힘들지만,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 연기 의욕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차승원은 <화유기>에서 코믹,멜로,공포 등 정극과 희극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연기로 드라마를 이끌었다. 티브이엔 제공.
그가 연기한 우마왕은 기획 단계에서는 좀더 정적인 인물이었지만 “굉장히 깐깐하고 약간은 무섭다가도 아주 낙차가 큰 코미디를 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의견이 반영되어 지금의 캐릭터로 발전했다. 캐릭터의 방향성을 꿰뚫은 덕분에 우마왕은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방대한 내용에 견줘 빈 곳 많았던 이 드라마의 아쉬움을 메워줬다. 작품마다 단어의 끊어 읽기까지 신경 쓰며 고민하는 그는 <화유기>에서도 “합격”이라는 평범한 대사를 “햅~격~”이라고 발음하며 코믹한 캐릭터를 섬세한 뉘앙스로 전달한다. 작품 분석력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쑥스러워했다. “비결은 없어요. 나무보단 숲을 보려고 하고, 배우로서 책임감을 갖고 대본에 충실할 뿐이에요.” 그는 특히 코미디가 강조되면서 그 이미지가 굳어지는 게 우려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코미디를 완전 사랑한다”며 웃었다.
평소 배우로서 선배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는 그는 방송 제작 환경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화유기> 사태는 생방송처럼 그날 찍어 그날 내보내기도 빠듯한 드라마 제작 환경 문제를 다시 한번 공론화시킨 계기가 됐다. 그는 “방송 환경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사전 제작을 활성화해야 하고, 적어도 절반이라도 찍고 들어가야 한다. 미리 꼼꼼하게 준비해서 현장에서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경제적으로 찍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화유기> 사태는 누구 한 명의 책임이 아닌 ‘모두의 책임’이라는 지적도 했다. “드라마가 잘 나오려면 스태프들의 컨디션이 좋아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제를 지켜서 찍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영화처럼 하루 몇 시간 촬영하고 어느 정도 휴식 시간을 주고. 그러기 위해선 감독, 작가, 배우 등 나머지 사람들이 열심히 해야 해요. 우리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스태프들이 계속 밤을 새우게 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던 드라마를 끝내고 한숨 돌린 그는 이제 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계벽 감독의 휴먼 코미디 <힘을내요 미스터리>에 출연을 검토하고 있다.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티브이엔)가 화제를 모았을 때도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는 이번에도 “늘 배우로서 최선을 다할 테니 지켜봐달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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