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KBS 자율성 침해’ 기록 윤성도 피디
어쩌면 가장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다. 윤성도 <한국방송>(KBS) 피디에게, 지난 9년의 시간은 그랬다. 1995년 한국방송에 입사해 <케이비에스 스페셜>, <다큐멘터리(다큐) 3일>, <추적 60분>, <걸어서 세계 속으로>, <세계는 지금> 등을 연출해온 그는 2008년부터 수많은 제작자율성 침해를 지켜봐야 했다. 그는 이 시간을 “숨이 ‘콱’ 막힌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잊고 싶은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을 택했다. 2009년부터 8년간 한국방송 사내 업무포털인 코비스에 담긴 구성원·회사 쪽의 목소리를 모았다. 이 기간 직접 쓴 일지도 차곡차곡 모아 나갔다. 주로 한글파일로 된 이 자료들을 합하면 20∼30기가바이트에 달한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그는 ‘비망록’과 그간 모은 자료의 일부를 조심스레 공개했다.
2009년부터 8년간 사내포털 담긴
구성원·회사 양쪽 목소리 모아
이 기간 직접 쓴 비망록도 공개
제작 자율성 침해 낱낱이 담겨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간부들
관련 다큐 막는 것 보고 기록” 그가 본격적으로 기록 작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국면에서다. 당시 예능 등 예정된 프로그램이 결방되며 한국방송은 대체편성을 해야 했다. 피디들은 <다큐 3일>에서 2008년 다룬 ‘대통령의 귀향: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을 다시 편성하자고 했다. 하지만 편성담당 간부는 그 대신 ‘청산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내보내겠다고 했다. 윤 피디는 “봉하마을 편은 한국방송만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를 안 내보낸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을 겪고 난 뒤 일어난 일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09년 5월25일 그의 일지를 보면, 당시 ‘봉하마을’ 다큐멘터리가 편성되지 않은 것을 두고 담당 간부는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잔잔한 청산도를 방영하기로 한 것”이라고 답한다. 윤 피디의 일지에는 그간 한국방송 내에서 벌어진 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령 2010년 1월28일 윤 피디는 이렇게 적고 있다. “다음주 방송되는 (다큐 3일) 캄보디아 편에서 공방위감(노사가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 함께 구성한 공정방송위원회에서 거론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캄보디아에 김윤옥 여사가 기증한 우물이 하나 있는데 위에서 그것을 편집에 넣으라고 했다는 것”이라고 썼다. 이는 캄보디아에 촬영을 간 <다큐 3일> 제작진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이 기증한 우물을 조명해 방송에 담으라는 ‘외압’이 있었다는 기록이다. 그가 모은 기록에는 회사가 어떻게 사내 언로를 차단해 나갔는지도 담겨 있다. 코비스 내에서 비판·토론 기능은 점차 약화했다. 윤 피디는 “회사 구성원이 쓰는 ‘보도정보 게시판’이 비실명제로 운영됐다. 원래 구성원의 ‘광장’처럼 활용됐다. 그런데 이 게시판이 2009년 실명제로 바뀌었다”며 “당시 기자들이 반발해 기자협회장 아이디를 공유해서 그 아이디로 모두 게시글을 올렸다. 그러자 회사 쪽에서 한 사람당 두 개의 게시글만 올릴 수 있도록 바꿨다”고 했다. 윤 피디는 ‘회사 내 저항을 기록해 나가는 일이 한국방송 선배들의 방식을 잇는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한국방송 구성원은 1990년대에 노보 등을 모아 1980년대 ‘관제 방송’ 시절을 책자로 만들었다. 그런 자료를 보면 선배들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상황에서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생각해본다.” 그가 수집한 기록은 이제 공식 자료로 남게 된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는 윤 피디가 모은 기록과 다른 구성원이 모은 자료를 취합해 올해 안에 이명박 정권 당시 한국방송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백서로 만들기로 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백서도 자료를 보완해 이어 펴낼 계획이다. “언젠가 백서가 방송으로 보도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누군가 그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이 기록들이 기초 자료로 쓰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윤성도 피디
구성원·회사 양쪽 목소리 모아
이 기간 직접 쓴 비망록도 공개
제작 자율성 침해 낱낱이 담겨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간부들
관련 다큐 막는 것 보고 기록” 그가 본격적으로 기록 작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국면에서다. 당시 예능 등 예정된 프로그램이 결방되며 한국방송은 대체편성을 해야 했다. 피디들은 <다큐 3일>에서 2008년 다룬 ‘대통령의 귀향: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을 다시 편성하자고 했다. 하지만 편성담당 간부는 그 대신 ‘청산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내보내겠다고 했다. 윤 피디는 “봉하마을 편은 한국방송만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를 안 내보낸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을 겪고 난 뒤 일어난 일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09년 5월25일 그의 일지를 보면, 당시 ‘봉하마을’ 다큐멘터리가 편성되지 않은 것을 두고 담당 간부는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잔잔한 청산도를 방영하기로 한 것”이라고 답한다. 윤 피디의 일지에는 그간 한국방송 내에서 벌어진 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령 2010년 1월28일 윤 피디는 이렇게 적고 있다. “다음주 방송되는 (다큐 3일) 캄보디아 편에서 공방위감(노사가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 함께 구성한 공정방송위원회에서 거론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캄보디아에 김윤옥 여사가 기증한 우물이 하나 있는데 위에서 그것을 편집에 넣으라고 했다는 것”이라고 썼다. 이는 캄보디아에 촬영을 간 <다큐 3일> 제작진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이 기증한 우물을 조명해 방송에 담으라는 ‘외압’이 있었다는 기록이다. 그가 모은 기록에는 회사가 어떻게 사내 언로를 차단해 나갔는지도 담겨 있다. 코비스 내에서 비판·토론 기능은 점차 약화했다. 윤 피디는 “회사 구성원이 쓰는 ‘보도정보 게시판’이 비실명제로 운영됐다. 원래 구성원의 ‘광장’처럼 활용됐다. 그런데 이 게시판이 2009년 실명제로 바뀌었다”며 “당시 기자들이 반발해 기자협회장 아이디를 공유해서 그 아이디로 모두 게시글을 올렸다. 그러자 회사 쪽에서 한 사람당 두 개의 게시글만 올릴 수 있도록 바꿨다”고 했다. 윤 피디는 ‘회사 내 저항을 기록해 나가는 일이 한국방송 선배들의 방식을 잇는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한국방송 구성원은 1990년대에 노보 등을 모아 1980년대 ‘관제 방송’ 시절을 책자로 만들었다. 그런 자료를 보면 선배들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상황에서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생각해본다.” 그가 수집한 기록은 이제 공식 자료로 남게 된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는 윤 피디가 모은 기록과 다른 구성원이 모은 자료를 취합해 올해 안에 이명박 정권 당시 한국방송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백서로 만들기로 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백서도 자료를 보완해 이어 펴낼 계획이다. “언젠가 백서가 방송으로 보도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누군가 그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이 기록들이 기초 자료로 쓰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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