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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다음 연극은 호텔 갈까 병원 갈까, 머릿속이 바빠요”

등록 2017-07-07 08:01수정 2017-07-07 13:41

형식 파괴 연출가 김태형

관객이 배우따라 극장 돌아다니며
무대 만드는 ‘내일 공연인데…’ 등
공간·내용 한계 벗어난 작품 선보여

올해만 연극·뮤지컬 10편 작업
“연극은 사회적 메시지 전하는 수단
언젠가 영화 연출도 하고 싶어”
‘무대 파괴’를 시도하는 김태형 연출가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무대 파괴’를 시도하는 김태형 연출가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대체 연출이 누구야?” 연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를 보고 나면 이런 생각부터 든다. 관객들이 배우들을 따라 분장실, 복도, 대기실 등 극장 곳곳을 돌아다니고 발길 닿는 곳이 무대가 된다. 공간 허물기가 기발하다. 가만, 이런 신선함을 어디서 느꼈더라. 4~5월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한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도 관객과 소통하며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내용 파괴가 화제를 모았다.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두 작품은 모두 이 사람이 만들었다. 요즘 연극·뮤지컬계에서 부쩍 바빠진 김태형(39) 연출가다. 지난달 2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예전부터 연기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공연하는 등 일상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고 싶었다”며 “관객들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체험을 하면서 자기 삶에 변화의 작은 씨앗을 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공간 파괴’에 관심이 많다. 2007년에는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며 보는 연극 <커피플레이-맛>을 선보인 바 있다. 2013년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초연 때는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대학로 거리에 좀비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구상 중인 작품도 이렇다. “관광호텔 한 층을 빌려서 방방마다 서로 다른 콘셉트의 공연을 선보이고, 문 닫은 종합병원을 대관해서 공포연극을 만들고….” 머릿속이 바쁘다.

이런 시도는 연극판에서 꾸준히 고민해왔던 문제들의 해답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극은 무대가 좁아서 세트 교체 등 입체적인 묘사가 어렵다. “왜 연극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하지 못할까, 라는 고민을 꾸준히 해왔다”는 그는 자신의 실험이 “연극이 갖고 있는 공간의 한계성을 여러 방법으로 탈피하고 확장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또 “제작비에 견줘 대관료가 비싸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노력에 관객들도 호응했다.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초연에 이어 재연도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도 자신의 의견이 내용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평가가 좋았다. 그는 “의외로 관객들이 새로운 시도에 목말라 있더라”고 했다. “체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관객이 많다. 여기저기 움직여야 한다는 점 때문에 관객이 귀찮아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했지만, 워크숍에 온 것처럼 즐기고 가더라.” 참신함과 보편성의 균형을 맞춘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다. “구조는 독창적이지만 내용은 보편적이다. 우리 곁에 있는 이야기를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냈다는 느낌이 있어서 쉽게 다가가는 것 같다.”

연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에 참여한 관객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연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에 참여한 관객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그러나 호응에 견줘 ‘무대 밖 공연’이 대중화되지 않는 것은 아쉽다. 극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펼치는 공연이 국외에서는 활발하지만 한국에서는 꾸준히 이어지지 않는다. “관객 참여형 공연은 관객 수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도 받기가 힘든 탓이다. 지난달 22~25일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도 당일 관객 120명으로 제한했고, 제작비 등의 이유로 나흘만 공연했다. 그는 “이런 시도가 활발해지려면 꾸준한 지원과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올해는 인식이 조금은 달라져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7월22일 경기도 수원을 시작으로 처음으로 지방공연도 추진하고 있다.

그의 인생도 추구하는 무대처럼 독창적이다. 과학고를 나와 카이스트 3학년까지 다니다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에 갔더니 나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많아 충격받았다”는데, 실은 예술의 열망이 오래전부터 꿈틀댔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고, 고등학교와 대학 때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 작품을 칭찬하는 게 좋았다”고 한다. “대학교 2학년 때 교양수업인 ‘연극 영화의 이해’를 들으면서 연극이 지금은 ‘엔터테인먼트’로 보이지만 어떤 시절에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는 얘기에, 평생을 걸 만한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업으로 삼았다.”

‘당연히’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 “(부모님은 지금도) 방송사에 취직하는 게 어떻겠느냐 권유하지만”, 그는 올해만 10편을 작업하는 등 인정받는 연극·뮤지컬 연출가로 승승장구 중이다. 기대작이었던 대극장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그가 연출했다. “앞으로 5편 남았어요.” 14일 개막하는, 미국 잡지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연극 <글로리아>(아트원씨어터)와, 아내이자 뮤지컬 배우인 이영미가 나오는 뮤지컬 <미 온 더 송> 등이 기다리고 있다. 도전은 끝이 없다. 그는 “언젠가는 영화 연출도 하고 싶다”며 밥도 거르고 <글로리아> 연습실로 향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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