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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할배들, 예능 영토를 넓히다

등록 2017-06-20 07:00수정 2017-06-20 08:31

송해·임백천·이상벽·허참·이순재
‘세상의 모든 방송’ ‘아이돌 학교’ 등
젊은 진행자 독무대였던 예능에
연륜과 상식으로 묵직한 중심 잡아
“신구 연예인들의 화합…TV 밖에서도
세대간 벽 허무는 데 기여할 것”
예능프로그램 <일밤-세모방: 세상의 모든 방송>에 출연하는 임백천, 송해, 이상벽, 허참. 문화방송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예능프로그램 <일밤-세모방: 세상의 모든 방송>에 출연하는 임백천, 송해, 이상벽, 허참. 문화방송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90살인 송해는 “이렇게 네명이 (한 프로그램에서) 만나기도 힘들다”고 했다. 59살 임백천, 68살 허참, 70살 이상벽을 두고 한 말이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시작한 예능프로그램 <일밤-세모방: 세상의 모든 방송>(문화방송 일 오후 6시30분, 이하 <세모방>)을 진행한다. 방송경력 도합 195년인 이들을 이 시간대에 만나는 건 더 힘들다. 주말 오후 6시대는 시청률 경쟁이 심한 ‘황금 시간대’로, 그동안 젊은 진행자들의 독무대였다. 이례적인 화면 속 풍경은 <티브이엔>에서도 볼 수 있다. 83살인 이순재가 7월 시작하는 걸그룹 육성 예능프로그램 <아이돌 학교>에 출연한다.

최근 예능프로그램은 신구 진행자가 짝을 이루며 눈길을 끈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 정도를 빼놓으면 찾아보기 힘들던 예능 속 ‘어른’들이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는 ‘신기한’ 장면이 등장한다. 그동안 예능은 방송사간 시청률 경쟁이 심해지고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가 주요한 흐름을 이루면서 젊은 진행자들 위주로 진영이 짜였다. 속사포의 말장난이 넘쳐나는 스튜디오 예능도 마찬가지다. 한 케이블 예능 피디의 말마따나 “몸개그도 필요하고,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즉흥대사)나 센 발언도 해야 하는데 예전 선생님들은 대본대로 하는 경우가 많아 시청자들이 재미없다고 느껴왔”던 탓이다.

걸그룹 육성 예능프로그램 <아이돌 학교> 진행자로 나선 이순재. 티브이엔 제공
걸그룹 육성 예능프로그램 <아이돌 학교> 진행자로 나선 이순재. 티브이엔 제공
그랬던 예능계가 가벼운 말장난 대신 신선하면서도 묵직한 재미를 찾기 시작하면서 어르신들이 다시 호명되기 시작했다. 또한 누가 진행하는가 하는 ‘스타파워’보다 내용의 참신함에 무게가 실리며 이름값보다 프로그램 성격에 맞는 적절한 진행자 찾기가 핵심이 된 것이다. <세모방> 김명진 피디는 “네분 경력이 도합 195년이다. (세상의 다양한 예능에 참여하고 평가하는 프로그램 취지에)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또다른 케이블 예능 피디는 “의미 없이 웃고 떠드는 예능이 지고 요즘은 인문학, 정치 등을 접목한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연륜있고 상식에 해박한 어른들이 중심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돌 학교>의 제작진은 “이순재가 연예계 대선배이자 인생 선배로 아이돌들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단순히 춤과 노래 등 기술적인 조련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성숙의 과정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노익장이라고 진지하기만 한 건 아니다. <세모방>에서 송해는 몽골에 갔다 왔다는 박수홍의 말에 울란바토르가 남양주와 자매결연을 맺었다는 식의 기계적인 정보들을 줄줄이 나열하면서 의외의 웃음을 만들어냈다. 또 프로그램 이름을 ‘세방위’라고 잘못 말하거나 ‘우리 나이를 합하면 몇살’인가를 여러번 되묻는 식의 ‘아재’ 유머가 툭툭 터진다.

어른들의 합류 효과는 아직 미비하다. <세모방> 시청률은 4%대로 낮다. 그러나 티브이 속 신구의 조화가 티브이 밖에서도 세대간의 벽을 허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치로만 그 의미를 평가할 수는 없다. 18일 방송에서 가수 헨리는 송해한테 적극적으로 다가가 ‘한다맨’ 포즈를 알려주고 같이 해보는 등, 반세기가 넘는 나이 차에도 거리낌 없이 대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한 누리꾼은 “주말 저녁 시간에 신구 연예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니 색달랐다”며 “어른들한테 다가가기 힘든데 헨리처럼 대한다면 (어르신들도)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이 프로에 출연하는 이상벽은 “요즘은 젊은층들이 선호하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인데 함께하게 돼서 일면 좀 두렵기도 했지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개그맨 이홍렬은 2년 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구봉서 선생님은 지금도 개그를 하고 싶어 한다. 무대만 있으면 하실 분”이라고 말했다. 비록 구봉서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껏 곁을 내주지 않던 젊은 예능에 노익장의 영토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사회적으로 세대간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런 프로그램들이 세대간 화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가치있는 시도”라면서도 이런 시도가 이어지려면 “화합 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제대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내용에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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