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30돌을 맞아 <한국방송>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실시한 공모 프로젝트 ‘6월 이야기’에 참여한 오승일·정이든씨.
대학생 정이든(21)씨는 1987년 일어난 6·10 민주항쟁(이하 6월항쟁)을 잘 몰랐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현대사는 뒷부분에 한 문단 정도로 나와요. 그것도 기말고사가 끝난 시점에 배우게 돼죠. 그러면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 (배우는 데) 소홀하게 돼요.” 발생 이유나 결과 정도만 알고 있던 그는 “이제 매년 6월이 되면 6월항쟁을 곱씹어보고 그 의미를 더 깊게 생각해볼 것 같다”고 했다.
계기가 있었다. <한국방송>(KBS)이 6월항쟁 30돌을 맞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실시한 공모 프로젝트 ‘6월 이야기’다. 촛불 세대들이 6월항쟁을 겪은 이들을 직접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60분짜리 채록 다큐로 만들어 제출케 했다. 3월말부터 5월초까지, 정이든씨를 포함해 모두 70개팀이 참가했다. 정씨는 사회인 영화동호회에서 만난 오승일(50)씨를 인터뷰해 채록 다큐를 만들었다. 오씨는 1987년 당시 연세대 학생으로 6월항쟁을 겪었고, 서울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이한열 열사의 주검 탈취를 막으려 열린 연좌시위에도 참여했다. 정씨는 “영화, 다큐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아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는데,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민주화 운동의 깊은 의미와 이를 기록하고 남겨두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다큐로 대상인 ‘국회의장상’을 받았다.
6월항쟁 30돌을 맞아 <한국방송>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실시한 공모 프로젝트 ‘6월 이야기’에 참여한 신애자씨·이인지양.
17살 김미지양은 광주에서 6월항쟁에 참여한 송득용(53)씨의 이야기를 당시 자료와 함께 상세하게 채록해 ‘한국방송 사장상’을 받았다. 이인지(19)양은 강원 원주기독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신애자(51)씨가 그 지역에서 벌인 항쟁의 이야기를 담아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상’을 수상했다. ‘특별상’을 받은 강경식(26)씨 외 6명(김도영, 박상현, 이영돈, 이지현, 윤혜준, 김승현)은 일본인 유학생으로 1987년 8월 한국에 와서 6월항쟁 이후의 한국사회를 1년간 현장에서 지켜본 우에무라 다카시(59)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경험을 풀어냈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도경 <한국방송> 피디는 “공동체의 역사를 계승하고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다. 계몽주의적 시각보다는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해서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 의미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일반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 등으로 직접 촬영·편집했고, 짧게는 며칠 길게는 2주간 만들었다.
올해 6월항쟁은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 손으로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의 결실을 맺은 이후 처음 맞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지만 민주정부 수립까지 끌고 나가지 못한 30년 전 ‘미완의 과제’를, 당시 주역이었던 선배들과 오늘날의 후배들이 손잡고 함께 이뤄냈다. 이 프로젝트가 촛불 세대의 시선으로 6월항쟁을 바라보는 것으로 기획된 이유다. 김미지양이 채록한, 조선대 학생으로 6월항쟁에 참여했던 송득용씨는 다큐에서 “작년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 역시 전 국민적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6월항쟁이 작년과 올해를 꿰뚫고 있는 탄핵 정국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인지양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6·10 민주항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때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작년 촛불집회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6월항쟁 30돌을 맞아 <한국방송>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실시한 공모 프로젝트 ‘6월 이야기’에 참여한 우에무라 다카시·강경식씨.
촛불 세대도, 6월항쟁 세대도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다큐는 오히려 생생하다. 이한열 열사에 견줘 자신은 육체적으로 고통받은 것이 없다는 미안함에 매년 문화행사를 여는 신애자씨나, 최루탄에 맞을까 겁나기도 했다는 송득용씨 등이 겪은 이야기는 내 모습 같아서 더 몰입이 된다. 특히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일상의 이야기가 발굴되기도 했다. 경남 마산에 사는 허진수(62)씨는 아들 허윤(23)씨에게 6월10일 당시 마산에서 열린 대통령배 축구 이집트 대 한국의 경기가 시위로 어떻게 중단됐는지를 들려주며, 경기장의 관중이 시위대에 합세해 애초 1500명의 시위대가 3만명으로 늘었다고 전한다. 정이든씨는 “최루탄 이야기나 백골단 등 시위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는데 세세하게 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6월항쟁 30돌을 맞아 <한국방송>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실시한 공모 프로젝트 ‘6월 이야기’에 참여한 송득용씨·김미지양.
선배들을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은 변한다. 정이든씨는 “홍대 이한열 기념관 앞을 자주 지나가면서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기념관도 방문해보고 사진자료도 보면서 (그를) 깊이 알게 된 시간이었다. 잊어버리기 전에 남겨두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경식씨는 “연대의식을 갖고 있지만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행동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촛불집회의 연장선에서 시민으로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인지양은 “역사에 더 관심을 갖고 더 알아가면 현대사회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은 네 작품을 편집해 10일 밤 10시30분 1텔레비전에서 방영한다.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