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연계에서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들한테 다양한 재미를 주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특히 연극 <바보햄릿>은 객석을 무대 위로 올린 실험적인 시도로 눈길을 끈다. 내용에 따라 객석을 이동시키며 다양한 동선을 만든다. 극단 진일보 제공
왜 공연 보는 내내 꼼짝달싹 못하는 걸까? 관객이 객석에서 숨죽이고 가만히 앉아 무대를 지켜보기만 하던 관람 틀이 깨지고 있다. 최근 연극 무대에서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잇따른다. 좁은 무대를 좀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동시에, 때론 공연과 동화되고 싶어하던 관객의 마음을 읽었다.
25일부터 6월4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바보햄릿>은 객석을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공연장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삼고, 객석을 30석씩 무대 위 네 부분에 나눠 배치했다. 극의 내용과 배우 동선에 따라 객석이 앞뒤 혹은 옆으로 움직이며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확보해준다. <바보햄릿>은 자칭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의 문제에 발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깨어 있는 시민인가’라고 묻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삼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2일부터 나흘간 선보이는 연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대학로 예술극장)는 관객 체험형 공연이다. 공연은 내일인데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스태프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는 설정. 관객들은 조연출을 연기하는 배우를 따라 분장실, 사무실 등 공연장 곳곳을 누빈다. 미션을 수행해 진행에 도움을 주면서 직접 공연에도 참여한다. 2013년 초연 당시 수동적인 공연 관람 문화를 능동적으로 바꿨다고 평가받았다. 지난 7일 끝난, 증강현실(AR)을 접목한 융복합 공연 <플러그인 시티>도 관객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직접 방을 옮겨가며 이야기를 관람하는 체험 형식이 눈길을 끌었다.
객석과 무대의 벽을 허문 관객 체험형 공연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의 한장면. 홍보영상 갈무리.
공연장의 한정된 무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지금까지 많은 제작자의 고민이었다. 특히 소극장은 무대가 좁아 공연 내내 세트에 변화를 주기가 힘들다. 한계가 많은 공간 활용 대신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작품에 역동성을 안겨야 한다. 이런 제약을 벗어나려고 공연계 전반에서 몇년 전부터 홀로그램이나 입체(3D) 기법 등 영상을 활용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올해 11회를 맞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7월 선보이는 <폴리타>도 이런 기법을 접목해 관객이 3D 안경을 쓰고 무대를 관람하게 한다.
<바보햄릿>을 홍보하는 창크리에이티브 노주현씨는 “그러나 영상에도 한계가 있다. 지금껏 한계를 벗어나려고 무대를 바꿀 생각만 했지, 관객을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객석과 무대의 벽을 허무니 공연이 풍족해졌다. <바보햄릿>은 객석이 여러 형태로 움직이니 배우들의 동선이 다양해졌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더 많아졌다. 예를 들어 배우 네 명이 서로 다른 객석 앞에서 각자의 상황을 하소연하는 장면은 평소처럼 고정된 무대였다면 불가능했다. 공연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관객의 마음도 어느 정도 만족시켜줄 수 있다.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관계자 말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을 직접 본다는 점, 배우들과 공연의 속살을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 직접 공연의 배우가 될 수 있다는 설정 등이 흥미를 끈다. 노주현씨는 “무대에서 떨어져서 보면 (공연과 배우들이) 나와 상관없는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무대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된다”고 했다. 어느 자리에서나 다 잘 보이니 <바보햄릿> 티켓값은 좌석 등급 없이 모두 4만원이다.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전석 2만원.
<플러그인 시티>를 홍보한 마케팅컴퍼니아침의 문정은 실장은 “가만히 앉아서 공연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객들에게 더 많은 재미를 제공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이런 변화가 공연을 더 풍족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소극장 공연은 제작비가 부족해 파격적 실험을 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한 예로 <바보햄릿>은 객석을 배우 16명이 직접 밀어 움직인다. 이 작품은 제작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텀블벅에서 24일까지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한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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