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돌을 맞은 <다큐멘터리 3일>(한국방송2)을 만든 윤한용·정병권·황범하 피디(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와 조정훈 현 <케이비에스 스페셜> 피디(앞줄 왼쪽)를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우리는 화면 뒤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다. 그러나 지금은 스포트라이트를 즐겨도 될 때다. <다큐멘터리 3일>(이하 <다큐 3일>, 한국방송2, 일 밤 10시40분)이 3일로 10돌, 14일로 500회를 맞았다. 10돌 특집 2부작으로, 그간 방송에서 화제가 됐던 사람들을 다시 찾아가는 <다큐 3일, 10년의 기억> 1부를 14일 방영한 데 이어 21일엔 2부를 내보낸다. 피맛골 달걀장수 김철령씨,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만났던 서영씨, 재개발 예정 옥수동에서 만난 신혼부부 등 8명이다.
교양다큐가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 굳건한 건 이례적이다. 2007년 5월3일 첫 방송부터 거쳐 간 피디 67명, 작가 25명, 브이제이(VJ) 78명 등이 땀 흘린 결과다. 그중에서 현재 <다큐 3일>을 담당하는 정병권·윤한용·황범하 피디와 ‘법정 스님 가시는 길’(141회) 등 화제가 된 아이템을 많이 연출했던 조정훈 현 <케이비에스(KBS) 스페셜> 피디를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나 10년의 비결을 곱씹었다. 황 피디는 창립 멤버로 3년5개월 연출했고, 윤 피디와 정 피디는 각각 지난해 1월과 5월 합류했다. 조 피디는 2008~2009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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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 출연자들의 힘 이들은 10돌을 맞은 게 신기하다고 했다. “잘되면 3~4년은 가겠다고 생각했어요.”(황 피디) 기존의 교양다큐 문법을 뒤집은 포맷이 신선하지만, 과연 통할 것인가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큐 3일>은 피디가 말하려는 주제 혹은 목적을 정해 놓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큰 테두리만 정한 뒤 촬영에 들어간다. “그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가 매회 내용을 좌지우지해서 (최종적으로 뭐가 나올지) 가늠할 수가 없어요.”(정 피디)
그래서 피디들한테는 늘 불안한 프로그램이라는데, 이런 ‘날것’의 재미가 오히려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시장, 골목길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른 수많은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와 대비되며 우리 일상을 음미하고 반추하게 한다.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그 자체로 울림이 크다. 브이제이의 “힘드시죠” 한마디에 폐휴지를 줍던 할머니(74회)는 살아온 인생을 술술 풀어내고, 창신동 봉제공장 주인(140회)은 일상을 들려준다. 윤 피디 말마따나 방송의 “일등공신은 출연자이고, 그들이 바로 스토리텔러”다. <다큐 3일>은 이런 이야기를 미화하지 않고 담담히 담아낸다. 조 피디는 “시청자가 대상과 정서적 거리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는 짐작하도록 하는 게 공감을 크게 일으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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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을 찍는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다큐 3일>이 “빠른 걸 원하는 시대에 다큐 본래의 깊이와 일상을 차분히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준 프로”라고 했다. 티브이 교양다큐는 <인간극장>처럼 한 대상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방식이다가 <브이제이 특공대>처럼 빠르게 겉을 훑는 식으로 변했다. <다큐 3일>은 그 ‘중간’으로, 긴박함을 주는 동시에 한 공간을 제법 길게 들여다보며 공감하게 했다. 황 피디는 “3일은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정리하는 시간으로 봤다”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주니 훨씬 생동감 있는 프로그램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3일은 제작진이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이기도 했다. <다큐 3일>은 정말 72시간을 찍는다. 7일 0시부터 시작하면 9일 자정에 끝나는 식이다. 4회 산부인과 분만실처럼 24시간 돌아가는 곳에서는 교대로 밤을 새우며 72시간 버티지만, 밤에 일하지 않는 공간을 촬영할 때는 이들도 밤에 쉰다. 그래서 초창기 때는 ‘3디(D) 프로그램’으로 인식됐다. “섭외 없이 ‘현장 박치기’를 해야 하고, 밤새 촬영이나 편집도 많이 했죠.”(황 피디)
촬영에는 암묵적 약속이 있다. 어림잡아 18가지 정도 된다. 72시간만 찍고, 시간 순서대로 편집하고, 오디오와 영상은 항상 일치해야 한다 등이다. “이 모든 것이 현장 리얼리티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정 피디) 노출을 원하지 않는 출연자는 모자이크 처리하는 등 촬영 윤리도 지킨다. 황 피디는 “<다큐 3일>은 피디가 개인기를 부리면 위험하다. 그래서 내 색깔을 보여주고 싶은 피디들한테는 심심한 곳이지만 일상의 단면, 다큐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은 피디들한테는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정병권·윤한용·황범하 피디(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와 조정훈 현 <케이비에스 스페셜> 피디.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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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지 넘어 세상을 향한 목소리 <다큐 3일>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시장과 마을이다. 사라져가는 공간도 어김없이 기록해, 생활 풍속지 역할을 해왔다. 황 피디는 “종로 피맛골 철거 직전 마지막 골목 모습(93회)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계셨을 때 봉하마을(48회) 곳곳 등 의미있는 공간을 기록해 놓은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공간 선정은 시사성과 시의성을 본단다.
세월호 유가족 관련 방송이 윗선의 지시로 제작이 중단되는 등 ‘시국의 부침’도 겪었다. 하지만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을 통해, 표현의 자유에 목마른 피디들을 대변하는 창구 노릇도 했다. 조 피디는 “지난 10년 동안 직접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피디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간접적으로라도 말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기도 했다”고 말했다. ‘옥수 재개발 구역’(100회)을 다루면서 우리에게 주거공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 공간 속 사람들의 입을 빌려 전하는 식이다. “속마음을 읽어내주는 시청자들을 만나면 너무 고마웠어요.”(조 피디)
황 피디는 “<다큐 3일>은 <한국방송>과 별개로 분류되더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봉하마을에서 <한국방송>은 분노의 대상이었는데 <다큐 3일>이라고 밝히면 협조를 잘해줬다”고 했다. 윤 피디는 “촛불집회 때도 <다큐 3일>은 광화문에서 당당하게 취재했다”고 말했다. “10년간 진정성을 갖고 땀 흘려 일한 성과라고 생각해요.”(정 피디)
힘들고 어려워도 내일을 향해 열심히 뛴다는 식으로 늘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쉽다. 20년, 30년 이어지는 장수 프로를 꿈꾸기에, 더 자유롭고 더 깊이있는 공간을 비추고 싶다는 고민도 계속된다. “화이트칼라의 일상을 들여다보고도 싶지만, 과연 솔직한 모습이 나올까 고민이다.”(윤 피디)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북한 주민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다.”(황 피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