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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한겨레 프리즘] 그 음주운전 연예인/ 남지은

등록 2017-04-02 19:29수정 2019-06-30 19:22

남지은

문화부 대중문화팀

한 배우가 있다. 그의 연기에 반해 팬이 됐는데 몇 차례 술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니 얌전하던 사람이 반말을 내뱉고, 추태를 부렸다. ‘아, 상종 못할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후 그 배우가 있는 술자리엔 가지 않았다. ‘저러다 큰코다치지’ 싶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음주운전이 적발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며 그는 연예계로 돌아왔다. 과연 그는 뭘 잘못했는지, 뭐가 죄송한지 알까? 평소 행실을 생각하면 모를 일이다.

연예인들을 만나면서 놀라웠던 것은 음주운전에 대한 그들의 안이한 생각이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술 마시고 운전한 게 뭐가 대수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가수 김현중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신호 대기 중에 잠이 들었을 정도로 만취 상태였다. 가수 강인 등 초범이 아닌, 재범도 상당수다. 지난해 5월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던 윤제문은 2010년, 2013년에 이어 세번째였다. 언론에 보도된 것만으로도 1990년 이후 음주운전, 폭행, 마약, 도박 등 사건·사고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200명이 넘는다. 그중 음주운전이 70%로 가장 많다. 지난해도 몇명이 적발됐다. 이창명 등 음주운전으로 활동을 접는 이들을 보면서도 그들은 또 운전대를 잡았다.

음주운전에 대해 유독 관대한 연예계 문화가 문제다.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의 자숙 기간은 보통 2~3년인데, 음주운전은 평균 1년 정도로 짧다. 방송인 노홍철은 2015년 음주운전으로 하차한 지 10개월 만에 복귀했다. 세번 적발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윤제문도 10개월 만에 영화가 개봉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케이블과 종편, 웹콘텐츠 등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복귀에 엄격한 지상파가 아니더라도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졌다. 잠깐의 시간 동안 그들은 과연 얼마나 반성을 했을까. 이제는 아예 자신의 잘못을 예능의 소재로 활용하는 뻔뻔한 모습까지 보인다. 한 방송인은 집 고쳐주는 프로그램에서 전동 드릴의 방향을 잘못 잡은 뒤 “내가 후진 기어를 넣어본 지 오래돼서 방향감각을 잃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들 말대로 큰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일까? 도박, 사기 등의 사건 사고와 같이 취급하는 게 과한 것일까. 음주운전은 잠재적 살인 행위다. 백번 양보해서 도박이야 자신의 돈만 탕진하면 그만이지만, 음주운전은 남을 다치게 할 위험성이 크다. 다른 이의 생명, 나아가 다른 이의 가정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 행위를 하고도 잠깐 쉰 뒤 다시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불편하기만 하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에 대한 처벌은 엄격해야 한다. 방송사부터 윤리적인 기준을 단호하게 세워야 한다. 현재 방송사는 특별한 규정 없이 제작진 등이 문의를 하면 위원회를 열고 출연을 규제하거나 해제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대개 소속사의 입김이 큰 영향을 미치는 등 갈수록 관대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방송사 간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위험한 생각이 짙어지고 있다. 연예인의 활동과 사생활은 별개라고도 하지만, 음주운전은 별개여서는 안 된다. 메이저리거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음주운전 때문에 미국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팀에 합류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나저나 술만 먹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그 배우는 이후 술을 끊었을까? 아니, 지금도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다고 한다. 잠시 조심할 뿐이지, 진정한 반성이 없는 그가 운전대를 잡는 건 시간문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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