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은
대중문화팀 기자
“상을 받는다고 돈이 나오나.”
배우 한갑수는 전국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을 때마다 지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한갑수. 최근 종영한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문화방송)에서 ‘미풍이 아버지’라고 하면 얼추 모습이 그려진다. 사실 그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에 출연한, 1987년 데뷔 이후 3년 만에 전국연극제 연극상을 휩쓴 연극배우다.
연극배우 시절 그는 연봉이 10년 동안 50만원도 안 됐다. “상을 받으면 뭐해요. 생활이 안 되니 도저히 살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연극을 그만두고 막노동을 전전하며 2년간 4000만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전셋집을 얻어 결혼을 한 뒤 다시 연극으로 돌아왔다. 연극의 주역들이 드라마에선 단역으로 출연하는 게 싫었다는 그가 이후 <아내의 자격>(제이티비시)에서 대사 한마디인 ‘경찰’ 역을 받아들인 데는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단역이었던 경찰로 번 돈은 그가 받았다는 연봉 50만원보다 많지 않았을까.
드라마의 경우 회당 출연료가 1억원까지 치솟는 주연 배우들은 둘째 치고, 매회 한 장면 정도만 고정으로 나오는 배우들도 회당 100만~300만원을 받는다. 우리가 얼굴은 알아도 이름은 모르는 배우들도 드라마 한 편 찍고 나면 많게는 수천만원을 거머쥔다. <불어라 미풍아>에서 처음으로 주요 배역을 맡아 몇달 동안 매회 등장한 한갑수는 연기를 하면서 가장 많은 숫자가 통장에 찍혔을 것이다.
한갑수처럼 연극판을 지키고 싶다던 배우들이 연극판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년 발표한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연극인들이 1년간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평균 1285만원이다. 이마저도 평균일 뿐, 대다수가 국민 최저소득 이하의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막노동은 기본이고, 대리운전, 주차요원 등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그러다 지치면 극단적인 선택도 한다. 2015년엔 연극배우 김운하가 스스로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스타를 앞세워 일단 거액의 투자를 받아 제작하는 뮤지컬, 드라마와는 제작비 등 규모 자체가 다르다. 표값도 많게는 14만원인 뮤지컬과 달리 대부분 수만원 선이다. 표를 다 팔아도 큰돈을 벌기 힘들다. 드라마처럼 한국에서 실패해도 해외에 팔아 수익을 내는 한류붐에 올라탈 수도 없다. 출연료도 다른 장르와 천지 차이다. 순수연극의 90% 이상이 적자다. 제작사, 배우까지 연극인들은 열정과 사랑으로 공연을 만들고 무대에 선다. 그러나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열정은 상실감만 불러온다.
연극인들은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자는 취지로 2005년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을 설립했지만 역부족이다. 정부의 관심과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최소 소득을 보장해주면서 연극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한 연극 배우는 “최순실, 정유라를 위해 투자한 돈의 손톱만큼이라도 예술인 복지를 위해 쓰였다면 조금은 나아졌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연극판을 지키고 싶었다는 한갑수는 언젠간 다시 연극 무대에 설 것이라고 했다. 잘돼서 동료, 선후배들이 마음껏 연극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한다. 성공한 뒤 연극에 돌아오면 그 자체로도 좋을 일이다. 유명해진 뒤 연극판을 무시하며 배고프던 시절을 애써 지우는 이들도 있다. 연극 등 기초 예술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과 삶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다. 연극판에는 언제 봄이 올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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