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갑수씨가 2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6일 끝난 주말드라마 <불어라 미풍아>(문화방송)의 최대 수혜자는 한갑수(49)다. 탈북하다 총상 충격으로 기억을 잃고 10살 지능을 갖게 된 미풍 아버지 ‘김대훈’을 연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상봉한 아빠를 “아바디, 아바디” 부르며 총총 따라다니는 등 진짜 10살 같은 연기가 화제가 됐다. 죽은 줄 알았던 김대훈이 살아 돌아온 36회 이후부터 10% 초반에 머물던 시청률이 쑥쑥 올라 20%를 넘어섰다.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을 찾은 한갑수는 “<불어라 미풍아>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신다. 특히 아이들이 ‘대훈아 대훈아’ 부르며 좋아해줘 놀랐다”고 말했다.
‘10살 김대훈’은 납치 등 자극적인 소재가 난무했던 이 드라마를 참고 보게 하는 해독제였다.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말하는 등 해맑은 모습이 우리 나이로 50살 어른한테서 나왔다. “우리보다 조금 더 순수할 것 같은 북한의 10살 아이를 콘셉트로 잡았다”고 한다. “처음 캐스팅될 때는 (나중에 10살이 되는 걸) 몰랐어요. 30회 이후에 멋진 모습으로 등장한다고만 했어요.(웃음) 대본을 받고 걱정이 돼서 연극 연출가, 연극배우 등 동료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목소리 톤을 높이고, 눈을 크게 뜨는” 등 디테일을 살렸다. “아이 역할을 많이 했던 연극배우인 아내도 큰 도움이 됐어요.” 현재 매니저 일을 봐주는 아내는 피디의 추천으로 드라마에서 만두집 건물주로 나왔다.
한갑수는 <불어라 미풍아>를 하면서 소속감을 느낀 게 행복하다고 했다. 1987년 연극 <방황하는 별들>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는 2012년 <아내의 자격>(제이티비시) 경찰을 시작으로 열편 정도 출연했다. 대부분 단역 등 작은 역할이었다. <유나의 거리>(2014) 김옥빈 아빠, <오만과 편견>(2014) 최진혁 아빠, <디데이>(2015) 정소민 아빠…. “잠깐 나오니까 촬영장 가도 기다렸다가 내 분량만 하고 집에 왔어요. 이번처럼 두달 넘게 계속 촬영하면서 스태프, 배우들과 친해진 게 처음이에요. 그래서 너무 아쉬워요.” 그는 처음 드라마를 할 때는 “대사를 너무 크게 말해 감독이 화들짝 놀라며 ‘마이크 있으니 작게 하라’고 주문했을 정도”로 카메라 연기톤을 가늠하지 못했다. “멘붕이었어요.(웃음) (이휘향 오빠로 나온) <결혼계약>(2016) 때 와서야 조금 익숙해졌지만, 지금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숨이 안 편해요.”
<불어라 미풍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 문화방송 제공.
<불어라 미풍아>에서 아이처럼 울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10살 아이에게 이질감 없이 동화된 데는 그의 연기력이 밑바탕이 됐다. 한갑수는 드라마에서 어떻게 단역을 할까 싶을 정도로 연극판에서는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1987년 연극에 발을 디딘 지 3년 만에 <칠산리>를 시작으로 수년간 연극제에서 연기 대상을 섭렵했고,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집단 ‘연희단거리패’ 단원으로 활동했다. 2007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그의 연기는 특히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힘든 환경에 잠시 떠나기도 했다. “10년 연극했는데, 연봉 50만원이 안 됐어요. 1년에 50만원도 못 버니까 못 살겠더라고요. 연극판을 떠나 일용직을 하면서 2년간 4000만원을 모았어요. 그 돈으로 전셋집 구해 결혼했죠.” “너무 사랑해서” 다시 돌아왔고, 카메라 연기를 경험하자는 생각에 티브이에 발을 디뎠다. “다행히 요즘은 연극판도 방송 출연에 열려 있어요. ‘저 선배 고생 많이 했는데 잘돼서 좋다’고들 해요.” 연극에서 인정받아도 생활이 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몸소 체험한 그는 ‘예술인 복지’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에 대한 소견을 한참 말하기도 했다.
실제 성격은 “경상도 남자라 말이 별로 없다”는데, 순박한 모습에서 김대훈이 연상도 된다. 그는 소박하고 오래된 차를 몰고 왔다. 연예계에 발을 디디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 일단 외제차부터 뽑는 사람들 속에서 그의 낡은 차가 빛났다. 아내와의 에피소드도 부부의 모습처럼 순수했다. “갑수 선배가 (합숙하는) 연희단거리패에 왔는데, 무대 선 모습 보고 첫눈에 반해 아침마다 ‘한갑수는 내 거다’를 외쳤어요.”(아내) 처음에는 신경도 안 썼던 한갑수는 “길들여진다고 해야 하나(웃음) 누가 나를 이렇게까지 좋아해주겠나 싶어 마음이 가더라”고 했다. 연기도, 사랑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면 성공한다, 뭐 그런 교훈이랄까. 한갑수는 송아지 같은 맑은 눈을 더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하하하” 김대훈처럼 웃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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