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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야광봉 없어도…‘듀라니’들은 행복했네

등록 2017-02-24 15:49수정 2017-02-24 21:05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한국팬클럽 1호 만든 듀란듀란

‘듀라니’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지? 고라니의 오타가 아니다. 지금은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낯선 단어지만 1980년대 우리나라의 10대들이라면 귀에 익을 것이다. 그 시절 팝음악 좀 들었다는 이들에게는 뜨거운 마음이 담긴 표현들 중 하나였을 테다. 바로 팝그룹 ‘듀란듀란’의 팬클럽 듀라니스 이야기다.

듀란듀란은 1978년 영국의 버밍엄에서 아트 스쿨 학생 존 테일러와 닉 로즈를 주축으로 결성되었다. 정식 데뷔 전까지 몇 번의 멤버 교체가 있었으나 오리지널 멤버는 사이먼 르 봉(보컬), 닉 로즈(키보드), 존 테일러(베이스 기타), 로저 테일러(드럼), 앤디 테일러(기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회 아하를 소개하면서도 언급했지만 종종 이 두 그룹은 라이벌처럼 여겨진다. 데뷔 연도로 치면 듀란듀란이 한참 선배다. 아하가 첫 음반을 냈던 1985년에 듀란듀란은 이미 4장의 정규음반을 내고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슈퍼스타였다. 두 팀 모두 꽃미남 청년들로 이뤄진 유럽 팝그룹인데다 신스팝이라는 80년대 대중음악 트렌드의 선봉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함께 거론되는 일을 피할 수는 없을 듯하다.

처음에는 하이틴을 겨냥해 통통 튀는 댄스곡을 발표하던 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음악적인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멤버들이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갖고 있었던 덕에 신시사이저에 휘둘리지 않고 록음악의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었고, 트렌드가 바뀌어도 음악적 노선을 과감하게 수정해가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단순히 트렌드를 쫓아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색채를 잃지 않고 주도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펑크와 디스코음악의 최상급 세션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를 기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덕분에 후반부에 발표한 노래들도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오랜 기간 활동하는 팝스타들이 겪는, 골수팬들이 등을 돌리는 일도 없었다.

초기, 중기, 후기로 활동 기간을 나눌 때 각각 추천곡을 골라본다면 일단 ‘헝그리 라이크 울프’(Hungry Like The Wolf)로 풋풋한 듀란듀란을 느껴보길 바란다. 그리고 다섯 번째 음반의 타이틀곡이자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노래 ‘노토리어스’(Notorious), 마지막으로 후기의 발라드 명곡 ‘오디너리 월드’(Ordinary World)를 추천한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듀란듀란은 엄청난 성과를 남겼지만 그들은 아이돌 스타이기도 했다. 본국인 영국에서는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제일 좋아하는 그룹이 듀란듀란이라고 밝힐 정도로 국민가수급의 영예를 누렸고, 미국과 일본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음반과 공연 수익 면에서 보자면 듀란듀란은 비교 대상이 안 될 정도로 아하를 훌쩍 넘어선다.

듀란듀란은 우리나라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팬클럽 문화를 처음으로 심은 아티스트다. 일단, 우리나라의 팬클럽 1호가 듀란듀란 팬클럽인 듀라니스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자료를 찾아보면 1984년 결성된 비틀스 팬클럽이 최초고 1986년 듀란듀란 팬클럽이 두 번째인 듯한데, 비틀스는 그때 이미 해체된 지가 10년이 훌쩍 넘었을 때이므로 팬클럽이라기보다는 동호회의 성격이었을 테고, 활동하는 가수를 응원하는 팬클럽은 듀란듀란이 시초라고 보는 게 맞겠다.

듀라니스를 시작으로 팬클럽 문화는 대중음악계를 살찌우는 토양이 되었다. 특히 10대가 대중문화의 최대 소비자층으로 떠오른 90년대 이후에는 팬클럽이 기업 못지않게 조직적으로 변모해갔다. 그 숫자도, 팬클럽 회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기획사 측에서 팬클럽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라이벌 가수들의 팬클럽끼리 싸우거나 팬클럽 내에서 운영진이 일반 회원들에게 횡포를 부리기도 하는 등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 기획사에서 팬클럽을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공개방송을 자주 연출하는 내 경우에도 지나치게 뜨거운 팬클럽 문화를 질색하는 편이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잔뜩 객석을 차지하고 있다가, 그 가수의 순서가 끝나면 다음 출연진이 민망하든 말든 휑하니 객석에서 빠져나가 버리는 행태 때문이다. 요즘도 그렇다. 그래서 요즘 핫하다는 아이돌 가수의 경우 제일 뒤쪽으로 출연 순서를 잡는 것이 보통이다.

문득 내가 팬클럽에 가입할 나이도 되지 않던 그 시절, 듀라니스 형 누나들을 선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화려한 야광봉도, 맞춤 티셔츠도, 회원 관리 시스템도 없었지만 그저 듀란듀란의 음악을 함께 듣고 춤을 따라 추고 사전을 뒤져가며 팬레터를 쓰던 소년소녀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들이 이제 중고등학생을 둔 부모 나이쯤일 텐데, 엄마아빠가 된 듀라니들은 자녀들의 팬질·덕질을 더 잘 이해하려나?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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