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를 당해 새우잡이 배에 팔려 갈 뻔하고, 사람에게 속아 목장에서 노예처럼 일을 한다. 길가다가 퍽치기를 당하고, 심지어는 가족들이 치매로 몰고 간다. 딸의 반항에 충격받은 엄마는 실어증에 걸린다. <리얼스토리 눈> 같은 사회고발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엽기적인 일들이 온 가족 대상 주말드라마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불어라 미풍아>(문화방송)와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한국방송2)이다.
<불어라 미풍아>는 탈북한 김미풍(임지연)과 엄마 주영애(이일화)가 남한에 있는 할아버지를 찾는 과정을 그린다. 죽은 줄 알았던 아빠가 살아 돌아와 아빠 찾기도 추가됐다. <월계수 양복점…>은 복선녀(라미란)-배삼도(차인표), 이동진(이동건)-나연실(조윤희), 강태양(현우)-민효원(이세영) 각 커플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지는 전형적인 주말드라마 구도다. 두 드라마 제작진은 방영 전 모두 “막장 없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국 누가 더 자극적인가를 내기라도 하듯 개연성 없는 전개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납치에 퍽치기…범죄의 왕국? 납치, 폭력은 두 드라마에서는 식은 죽 먹기다. <불어라 미풍아>에서는 북한에서 미풍 가족에게 얹혀살던 박신애(임수향)가 자신이 미풍인 척 가짜 손녀 행세하는 것을 숨기려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신애는 탈북 당시 총상 충격으로 기억을 잃고 10살의 지능이 된 미풍 아빠 김대훈(한갑수)이 혹시 기억이 돌아와 자신이 가짜인 게 알려질까봐 납치를 사주한다. 납치범을 시켜 대훈을 원양어선에 팔아넘기려고 한다. <월계수 양복점…>에서는 이동진과 결혼하려는 나연실이 전남편인 홍기표(지승현)한테 납치당한다. 위치 추적 앱까지 설치하는 등 범죄에 가까운 일들이 버젓이 등장한다.
‘퍽치기’도 벌어졌다. <불어라 미풍아>에서 신애는 가짜 손녀가 되기 전 영애가 끼고 있는 반지를 뺏으려고 길 가던 영애 머리를 각목으로 때렸고, 영애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반지를 훔쳤다. 반지는 할아버지의 손녀라는 징표다.
■ 질병도 가볍게 활용 인생 중대사인 큰 병 또한 가볍게 쓰인다. <월계수 양복점…>은 복선녀가 뇌종양에 걸린 것 같은 에피소드를 한동안 끌고 갔다. 죽음을 준비하며 주변을 정리하고 영정사진까지 찍는 내용이 방송됐는데, 알고 보니 아니더라는 한마디로 사태는 종영됐다. “병원에서 검진도 해보지 않고 의심된다는 의사 말에 혼자 주변정리까지 한 복선녀의 모습을 같은 병을 앓는 시청자와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지켜봤을까”라는 누리꾼의 항의가 쏟아졌다. 또 고은숙(박준금)은 딸 민효원이 애인 강태양과 헤어지라는 말을 듣지 않고 대들자 충격을 받고 실어증에 걸린다.
<불어라 미풍아>는 신애가 아빠를 “자꾸 거짓말이나 하고 이상한 소리나 해대는” 치매환자로 몰고 간다. 또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아빠가 한번씩 난폭해진다”며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이를 매일 먹게 하곤 종일 잠을 재운다. 드라마의 자극도를 높이려고 ‘노인 학대’ 같은 극단적 악행까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쉽게 벌어지는 일처럼 묘사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시청률 목매는 방송사 두 드라마는 방영 초반 평가가 좋았다. <불어라 미풍아>는 북한이탈주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에 대한 편견을 깼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월계수 양복점…>은 각 커플의 서로 다른 분위기가 유쾌해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두 드라마가 갈수록 폭력적이고 자극적이 된 것은 시청률 지상주의의 폐해라는 지적이 많다. <불어라 미풍아>는 1회 10.4%(닐슨코리아 집계)로 시작해 절반이 지난 28회에 15%를 찍었다. 답보 상태였던 시청률은 아빠가 돌아오고 신애의 악행이 갈수록 잔인해진 올해 들어 쑥쑥 올랐다. 1월1일 18.9%를 기록하더니, 지난 5일 방송(21.6%)에서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불어라 미풍아>는 3회 연장, <월계수 양복점…>은 4회 연장을 결정하는 등 높아진 시청률 지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는 정도를 넘어 갈수록 ‘막장’ 소재의 나열로만 치닫는 행태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아직도 주말드라마는 여러 가족 구성원이 저녁 식사 하며 함께 보는 경우가 많은데, 범죄적 행각이 아무것도 아닌 양 묘사되는 것은 문제”라며 “치밀하게 이야기를 짜고 드라마 자체의 극적인 재미를 고조시켜 공감을 일으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극의 강도를 높여 시청률을 높이려는 방송사의 안일한 자세는 결국 주말드라마의 질적 하락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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