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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주연만큼 바빠요 ‘뮤지컬 앙상블’의 세계

등록 2017-02-06 11:00수정 2017-02-06 11:11

<아이다> 강동주, 지새롬 <오!캐롤> 한준용, <영웅> 김진철 대표적

코러스·주변 인물 등으로 1인 다역
뮤지컬 ‘제3의 주인공’ 손꼽혀

주조연과 달리 모든 공연 혼자 소화
연기 군무 등으로 체력소모도 커
“토일 하루 2번씩 주말엔 방전돼”
“누나 결혼식도 못 갔어요”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눈빛까지 신경
<영웅> 추격신 등 앙상블 합 압도적

과거보다 위상 높아져 지원자 늘어
“지방공연까지 따라오는 팬 있어”
월리를 찾아라가 아니다. ‘강동주’는 <아이다> 곳곳에 숨어 있다. 이집트의 궁수였다가 피라미드 대신이었다가, 누비아 노예로 또 이집트 시장 상인, 박물관 관람객으로도 나온다. 1인 5역이다. ‘한준용’은 더 분열됐다. <오!캐롤>에서 웨이터도 하고 여장도 하는 등 군무 장면까지 포함하면 최대 11명으로 변신한다. 한정된 무대에서 여러 인물을 오가며 작품을 더 풍부하고 웅장하고 촘촘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앙상블’ 배우들이다.

‘함께’를 뜻하는 앙상블은 뮤지컬에서 대개 주·조연을 제외한 배역을 일컫는다. 주인공이 노래 부를 때 코러스를 넣거나, 뒤에서 춤을 추고, 주변 인물로 등장해 사건을 고조시키며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오!캐롤>을 홍보하는 노민지 과장은 “요즘 뮤지컬에서 앙상블은 제3의 주인공이다. 전체적인 극을 끌고 가는 것은 주연의 몫이지만, 앙상블이 없다면 작품 전체가 매끄럽게 흘러갈 수 없다”고 했다. 주목받는 앙상블 배우들을 만나,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앙상블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아이다> 강동주와 지새롬, <오!캐롤> 한준용, <영웅> 김진철이다.

<아이다> 강동주
<아이다> 강동주
<오!캐롤> 한준용
<오!캐롤> 한준용
■ 앙상블의 위상을 드높인 주인공들 강동주는 2009년 <침묵의 소리>부터 앙상블만 한 데뷔 9년차이고, 한준용은 2014년 <라카지>가 시작이다. <삼총사>로 데뷔한 지새롬은 <아이다>에서 앙상블과 함께 조연인 네이브카도 맡고 있다. 한준용과 지새롬도 주로 앙상블을 했다. 김진철은 2004년 <밤으로의 긴 여로>로 데뷔한 이후 주·조연, 단역을 고루 거쳤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백댄서, 코러스 정도로 인식됐던 앙상블의 위상을 드높인 주인공들이다.

앙상블은 대개 대사가 없거나 적고, 역할 이름도, 단독 넘버(노래)도 없다는 점에서 언뜻 사극 속 보조출연자를 연상케 하지만, 수준급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떼로 나와 배우 한 명 한 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이들은 표정 하나, 감정 하나에 세밀한 노력을 기울인다. <영웅>에서 일본군 의장대, 일본 헌병, 외국 기자, 독립군 역할을 맡고 있는 김진철은 “역사, 인물 등을 공부해 캐릭터마다 각기 다른 정서를 싣고 있다”고 했다. “공연,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으며 정서를 쌓고 감정 연습을 한다.” 강동주는 눈빛까지 신경쓴다. “전쟁터에서 이겨 신나게 돌아오는 오프닝에서는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피라미드 대신이 돼서는 살기 담은 눈빛을 내보낸다”고 했다. 강동주는 “앙상블은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게 아닌, 연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에 앙상블이 나오는 장면 중에 특히 명장면이 많다. <명성황후>에서 경사진 무대에서 전 배우가 밀도 있게 천천히 내려오면서 군무 없이 노래로만 채워진 장면은 관객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영웅>에서 카오스 상태가 이어지며 군무, 야마카시, 합 등의 여러 장면이 연출되는 추격 신은 박수가 가장 많이 터져나온 대목이다. 지새롬은 “동선 하나부터 모든 게 계산되어 있는 <아이다> 1막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배우 혼자 나오는 장면보다, 앙상블과 떼를 지어 노래를 부르고, 군무를 선보이는 장면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낀다는 관객이 많다. <영웅> <아이다> <오!캐롤> 등이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지새롬은 “관객의 박수소리에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영웅> 김진철
<영웅> 김진철
■ 체력 소모 크지만 달라진 위상 자부심 다양한 역할을 오가야 하는 앙상블은 주연배우 이상으로 힘들다. 주·조연들이 ‘더블 캐스팅’ 등으로 매회 번갈아 무대에 서는 것과 달리 앙상블은 매일 혼자서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 체력 소모가 가장 크다. 하루 2회를 하는 토·일은 모두 네 번 무대에 오른다. 한준용은 “일요일 저녁때는 체력이 방전된다. 녹초가 된다”고 했다. 지새롬은 “비타민을 꼬박 챙겨 먹고, 쉬는 날에 영양제를 맞거나 한의원에서 침도 맞는다”고 했다.

공연을 시작하면 수개월을 공연에 묶여 있어야 해 개인 시간도 없다. 지새롬은 “저녁 약속도 잡지 않는다”고 했다. 강동주는 “연애도 못 한다”며 웃었다. “<광화문 연가> 할 때는 스윙(대타)이 없어서 누나들 결혼식도 못 갔어요.” 여러 명이 합을 맞춰야 해 연습도 힘들다. 대개 공연 수개월 전부터 춤과 노래를 맞추지만, 한 명이 다치면 다시 모여 동선을 짠다. 인터뷰를 한 날도 한준용은 “앙상블 배우 중 한 명이 다쳐 동선을 다시 짜야 한다”며 집합 시간보다 이른 3시에 연습실에 갔다.

몸도 힘들고 개인적으로 포기해야 할 것도 많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앙상블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강동주는 “앙상블은 작품의 뼈대다. 앙상블이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우리가 든든하게 받쳐주니까 메인들이 힘을 받고 잘 갈 수 있다”고 했다. 앙상블의 위상도 수년 전부터 달라지고 있다. 강동주는 “앙상블 스윙도 예전에는 초보들이 바로 투입됐는데, 외국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요즘은 검증된 사람을 시킨다”고 했다. 한준용은 “예전에는 백댄서, 백코러스 정도의 개념이었다면 요즘은 앙상블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극의 퀄리티가 달라진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라고 했다.

제3의 주연으로 인식되면서 지원자도 는다. 앙상블도 대부분 오디션으로 뽑는다. 많게는 20~30명 뽑는데 200명 정도 몰려든다. <아이다>는 100 대 1이었다. 강동주는 “앙상블이 꿈인 친구들도 늘고 있다. 이런저런 연기를 더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것 같다”고 했다. 앙상블 배우들을 보려고 모든 지방 공연을 따라다니는 회전문 관객도 생겨난다. 퇴근길 기다리는 팬들이 점점 는다. 한준용은 “어떻게 나를 알아봐 주시는지 신기하고 감사할 뿐이다”라고 했다. 김진철도 “그런 관객들 때문에 힘이 난다”고 했다. 강동주는 “앙상블은 애드리브도 할 수 없고 혼자 튀는 행동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팬들을 위해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없는 건 아쉽다”고 했다.

<아이다> 지새롬
<아이다> 지새롬
■ 대우는 여전히 아쉬워 앙상블은 나이 제한은 없지만, 군무를 소화하는 경우가 많아 체력 소모가 커 수명이 짧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대략 30~38살을 전성기로 본다. 올해 35살인 강동주는 “앙상블은 춤도 춰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엄마도 길어야 3, 4년 하지 않겠냐며 다른 직장을 구하라고 한다”며 웃었다. 김진철은 “나이 제한은 없지만, 30살이 넘어가면 체력 소모가 큰 군무가 있는 건 힘들다”고 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금전적인 대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회당 4만~5만원에서 많이 받는 베테랑은 15만원 정도까지 받는다고 한다. 연습비나 교통비, 식비 제공은 제작사마다 다르다. 오디션을 뚫고 힘겹게 앙상블이 됐지만, 출연료가 너무 적어서 그만두는 사람도 꽤 있다. 뮤지컬계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뮤지컬 지원자가 늘고 앙상블을 하려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는 시선이 팽배해 근로 조건이 크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제2의 직업을 갖거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이들도 있다. 베테랑인 이들은 대학 강의(강동주)나, 고등학교 레슨(한준용) 등을 하지만, 아직 자리잡지 못한 앙상블 배우 중에는 밤에 대리운전을 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지새롬은 “물가는 오르는데 앙상블의 페이는 거의 제자리걸음인 게 씁쓸하다”고 했다.

“고3 때 우연히 뮤지컬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진로를 바꿨다.”(지새롬) “어릴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다.”(김진철) 저마다의 이유로 뮤지컬 배우를 꿈꿨고, 그 길에 들어선 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린다. 때론 “나도 저렇게 주연들처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속이 상한다”(김진철) 하다가도 “앙상블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이고, 춤출 때 내가 가장 빛난다”(강동주)며 만족하기도 한다. 목표는 조금씩 다르지만, 앙상블의 가치를 알고 최선을 다해 앙상블을 빛내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같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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