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드라마는 20대 배우 기근 현상에 시달렸다. 김혜수, 전도연, 고현정 등 막강한 언니들과 <시그널>(2016년, 티브이엔) 조진웅 등 ‘중년파탈’의 매력에 눌렸던 청춘들이 다시 빛나고 있다. 김고은, 박소담 등 영화계에서 넘어온 배우들과 2015년 <상류사회>(에스비에스) 박형식, 2016년 <응답하라 1988>(티브이엔) 박보검 등이 먼저 주목받았다. 남주혁, 이성경, 박혜수, 박은빈 등 샛별들도 2017년 드라마를 이끌 주인공으로 기대받고 있다. 새해 찬란할 청춘들을 만났다.
■ 남주혁 “청춘의 아이콘이고 싶어요” 요즘 주목받는 20대 남자 배우들은 맑은 얼굴과 청량한 매력이 특징이다. 남주혁(23)이 대표적이다. 2014년 모델로 데뷔한 그는 청춘의 풋풋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도맡으며 ‘청춘의 얼굴’이 됐다. <후아유-학교 2015>(한국방송2)와 <역도요정 김복주>(문화방송, 2016년)로 사랑받은 그는 1m88의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투명한 얼굴 등 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청춘물에 최적화된 이미지를 십분 활용했다. “시청자들이 ‘청춘’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내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왜 비슷한 이미지만 소비되나 싶은 고민 따윈 없다. 2014년 <잉여공주>(티브이엔)로 연기를 시작한 지 3년차. 지금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잘 어울리는 무대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즐기려 한다. 청춘드라마에 출연하며 실제 청춘의 삶도 변했다. 특히 <역도요정 김복주>는 전환점이 됐다. “청춘들에게 해주는 말이 많았잖아요. 그런 대사를 읽으며, 연기하며 청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같은.” 그는 “<역도요정 김복주> 이후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 나이답게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했다. 그 즐거움이 연기에서도 드러났다.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인 건 아니다. 남주혁의 ‘청춘 연기’가 가벼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오랜 기간 치열하게 살아온, 노력의 묵직함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왔다. 농구 선수를 하다 중학교 3학년 때 부상으로 운동을 접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내가 원하는 게 뭘까를 생각하다” 잡지에서 본 패션모델을 떠올렸다. “유튜브 영상 등을 보며 공부했어요.” 모델기획사의 ‘1일 모델 체험’ 프로그램에서 1위 한 이후 3개월간 무료로 모델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됐고, 눈에 띄어 패션모델로 데뷔했다. 배우가 된 이후에도 그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노력했다. 아무것도 모를 때 출연한 <잉여공주>에서 자신의 연기를 보고 “연기 지망생 친구들한테 미안해” 감정을 잘 드러내려고 얼굴 근육까지 바꾸는 연습을 했다. 입이 아닌 가슴으로 소리를 내는 법을 배워 발성을 바꿨고, <후아유>부터 연기가 부쩍 늘었다. “발성 연습은 지금도 해요. 내가 배우로서 성장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처럼 연기학원에 다니거나 전공하지 않고도 이 자리에 왔다. “호아킨 피닉스나 에디 레드메인 등의 영화 속 표정과 행동 등을 주의깊게 보는 등” 스스로 연습하고 고민하고 해답을 찾았다. 타고난 끼에 승부욕이 채찍질을 했다. 그는 “운동하면서 체력 단련을 위해 했던 고된 훈련을 버틴 끈기와 노력,, 승부욕 등이 지금 연예계 활동을 하는 근본이 되었다”고 했다. “운동하면서 멘털도 강해졌고,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연습하는 ‘나만의 방법’이 도움이 됐어요. 농구 할 때도 내일 잘해야지보다는 1년 뒤에 ‘3점슛 잘 넣는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일 슈팅 연습을 했어요. 사소한 것부터 채워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에 도달해 있더라고요.” 그는 “매해 작년보다 어떤 부분에서 나은 사람이 되자는 식으로 목표를 세워나간다”고 했다.
올해는 드라마 <하백의 신부> 물망에 오르는 등 주연배우로서 자리매김할 요량이다. 기둥 주, 빛날 혁. 2017년 이름처럼 ‘빛나는 기둥’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의 뜻풀이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겠습니다.”
■ 순수·코믹 오가는 박혜수, 박은빈 2017년 기대되는 20대 여자 배우들은 순수함과 코믹을 오간다. 아역부터 시작한 박은빈(25)에 박혜수(23)까지 때묻지 않은 이미지의 틀을 깬 배우들이 한꺼번에 도드라졌다. <청춘시대>에서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대학생의 풋풋함을 보였던 박혜수는 방영중인 <내성적인 보스>(티브이엔)에서 코믹 연기를 하고, 26일 시작하는 사극 <사임당 빛의 일기>(에스비에스)에서 단아한 이영애의 아역으로 등장한다. 이미지에 맞는 순수함만을 고집하지 않고 1년 사이에 다양한 얼굴을 오가는 것이다. 박혜수는 지금의 소속사 대표가 <케이팝스타>(에스비에스)를 보다가 “배우 얼굴”이라며 캐스팅했다고 한다. 소속사 쪽은 “맑은 얼굴과 어떤 색을 입혀도 변화 가능한 깨끗한 이미지”라고 했다. <내성적인 보스> 송현욱 피디는 “로맨틱코미디의 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주로 단아한 역할을 도맡았던 박은빈도 ‘나를 깨고’서야 배우로 주목받고 있다. 1998년 <백야 3.98>(에스비에스)로 데뷔한 이후 순수한 외모와 똑 부러지는 아역 연기로 주목받았다. <비밀의 문>(에스비에스, 2014년) <구암 허준>(문화방송, 2013년) 등 사극에서 성인 역할을 하며 단아한 매력을 뽐냈지만, 진가가 발휘된 건 <청춘시대>에서 19금 발언도 서슴지 않는 털털한 송지원을 연기하면서다. 방영중인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문화방송)에서도 평소 얌전한 성격과 다른 당찬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좀더 다이내믹한 삶을 살기 위해 평소 자신과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선택하려고 한다”고 했다.
■ 이성경, 모델을 벗다 <역도요정 김복주>로 이성경(27)은 단숨에 기대주로 우뚝 섰다. 대학생 역도 선수로 나온 이 작품에서 그는 몸무게를 5㎏ 이상 불리고,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역기를 들다 손에 굳은살과 팔근육이 생기고 살갗도 여러번 까졌다. 배우가 역할을 소화하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몸’이 생명인 모델로서는 모험이다. “모델 이미지가 강해 역할에 어울릴까 걱정하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는데 보란 듯이 해냈다. 그는 치킨을 몇개씩 먹고 털털한 김복주를 제 옷을 입은 듯 연기해냈다.
이성경은 2014년 <괜찮아 사랑이야>로 데뷔한 이후 <닥터스> <치즈인더트랩> 등에서 화려하고 세련된 역을 했다. 주요 배역으로 꾸준히 등장했지만, 화려한 모습에 배우보다는 모델 이미지가 강했다. 앞머리를 짧게 잘라 동글동글한 얼굴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등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비로소 배우가 되기 위해 나를 내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순수하고 동글동글한 얼굴이 대반전이라는 반응이 나와서 놀랐다. 지금껏 내가 사람들한테 그렇게 화려하게 비쳤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는 그는 “그 선입견을 깰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했다. 시청자에게 한발 가까이 다가선 그는 2017년 또 어떤 역할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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