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긴 봤는데, 대체 뭘 본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가 흘러는 갔는데, 끝나고 나니 남는 건 없더라는 거다. 인상적인 장면도, 넘버(노래)도 없다.
1992년 영화가 원작이고, 한국에서 처음 선보여 관심을 끌었던 라이선스 뮤지컬 <보디가드>는 그냥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 양파(혹은 손승연, 정선아)의 연말 디너쇼 같다. 양파는 혼자서 ‘올 앳 원스’,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 등 휘트니 휴스턴의 곡을 15곡이나 부른다. 그러나 최대한 많이 넣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오!캐롤>이 닐 세다카의 노래를 스토리와 잘 엮어 적재적소에 집어넣어 짜임새를 갖춘 것과 달리, <보디가드>는 뜬금없는 상황에서 노래가 나오는 등 곡 자체의 감흥과 이야기를 제대로 엮지 못한다. 예를 들어, 레이첼이 아들과 잠깐 얘기한 뒤 바로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을 부르는 식이다. 직전 장면에서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중점적으로 그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 와닿을 수 있을까.
<보디가드>는 여느 뮤지컬과 달리, 넘버(노래) 대부분을 여자 주인공에 몰아준다. 남자 주인공 프랭크(박성웅, 이종혁)는 딱 한 곡만 부르고, 레이첼의 언니 니키 마론(최현선)이 몇 곡 부르는 정도다. 그렇다면, 레이첼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관객을 혼미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양파는 그저 노래를 잘할 뿐이다. 흡인력이 부족했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잘 소화할 이들 위주로 캐스팅하다 보니, 노래할 때 표정 연기가 안 됐다. 뮤지컬의 기본인 춤이 안 되니 2012년 영국에서 처음 선보인 원작과 달리 초반 등장하는 다이내믹한 무대가 살지 않았다. 미국 드라마를 더빙하는 성우 같은 대사톤도 아쉽다.
스토리가 심하게 압축되어 막장드라마 뺨치는 빠른 전개도 관객을 겉돌게 한다. 레이첼과 프랭크가 왜 사랑에 빠지는지 영화를 못 봤다면, 이해가 안 됐을 1막을 지나 2막 시작부터 둘은 이미 침대다. 레이첼은 좀더 까다로운 톱스타여야 했고, 뮤지컬에 새롭게 등장하는 “단 한번이라도 레이첼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는 레이첼의 언니 니키의 복잡한 내면은 좀더 강조돼야 했다. 무엇보다 영화와 달리 너무 평면적인 프랭크가 아쉽다. 공연 도중 들러붙는 팬들을 저지하고 레이첼을 안는,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전혀 멋있지 않았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노래하다 프랭크가 대신 총 맞는 장면, 마지막 레이첼이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를 부를 때 등의 장면도 특별한 인상을 심지는 못했다.
연말 기분 전환이 목적인 관객들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겠다. 잘 아는 영화 원작에, 익숙한 노래가 흐르는 것만으로 지루하지는 않다. 인터미션(휴식시간) 때 관객들에게 야광봉을 나눠주고, 공연이 끝난 뒤 양파가 콘서트 앙코르 무대처럼 관객을 일으켜 세워 노래한다. 극적인 장면에서 그림자 홀로그램을 등장시키는 등 임팩트를 주려는 노력도 곳곳에 보인다. 그럼에도 푯값을 생각하면, 가성비는 떨어지는 편이다. 내년 3월5일까지 서울 엘지(LG)아트센터.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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