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이 뉴스 다시 하자”는 피디의 말에 강성범(왼쪽)과 김일희는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단다. “마음껏 해보라”는 대답에 만감이 교차했다는 그들은 다시 부는 정치풍자 개그 바람이 오랫동안 순풍이기를 바랐다. 지난 23일 서울 등촌동 에스비에스 공개홀 연습실에서 1년10개월 만에 돌아온 <웃음을 찾는 사람들> ‘엘티이 뉴스'팀이 환하게 웃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박태환, 김연아는 이번주 아니면 못 다룰 것 같은데.”
“탄핵소추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여긴 어디고 이들은 누군가. 1년10개월 만에 돌아온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스비에스 수 밤 11시10분) 정치풍자 개그 ‘엘티이(LTE) 뉴스’ 아이디어 회의 현장은 언론사 편집·보도국과 다름없다. 대통령 탄핵부터, 수학능력시험, 촛불집회까지 다섯시간 내내 다양한 정치·사회 현안이 오르내린다.
‘박근혜 게이트’가 드러난 이후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이 돌아오고, <웃찾사>는 ‘엘티이 뉴스’를 다시 하는 등 개그프로그램에 모처럼 정치풍자 바람이 분다. 정치풍자는 개그의 본령이지만, 이명박 정권부터 시작해 박근혜 정권에 이르면서 사실상 외압에 시달리며 자취를 감췄다. 돌아온 정치풍자는 만개할 수 있을까. 지난 21일 “이 분위기를 이어가 개그에서 정치풍자가 계속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강성범과 김일희, 임준혁이 만드는 ‘엘티이 뉴스’ 공정 과정을 엿보며, 정치풍자 개그 존재의 가치를 곱씹었다.
■ 개그맨인데 1주일 내내 정치·사회 뉴스 “각자 준비해 온 아이디어를 내보라”는 강성범의 말에 임준혁이 먼저 창고를 연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찰 차벽에 붙인 스티커를 다시 떼서 가져간다더라고요. 경찰이 힘들까봐. 성숙해진 촛불집회 문화를 담아서, 시민들은 위대했다로 한 대목을 풀면 어떨까요” “외국에서 마네킹 챌린지 놀이가 유행이래요. 촬영하는 사람 말고 다 멈춰 있는 것인데 우리는 대한민국 전체가 멈춰져 있다?” 한명씩 차례로 쏟아내면 의견을 나누고 강성범이 살을 붙여 대사처럼 정리하는 호흡이 척척 맞는다. 임준혁은 “나는 넓고 크게 보고 일희 형은 집중적으로 세밀하게 파고 성범 형은 그걸 조율해서 정리를 잘한다”고 했다.
이들은 1주일 내내 방송 뉴스와 신문 등을 끼고 산다. 화제가 되는 아이템을 고르고, 웃음과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키워드를 찾아낸 뒤 살을 붙인다. ‘탄핵카드’라는 한 단어에서 라임을 맞추기도 하고, “촛불은 결국 바람 불면 꺼진다”는 국회의원의 얘기에서 비판 지점을 잡기도 한다. 강성범은 “색깔이 다른 신문을 함께 보고, 종편방송까지 보며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고 했고, 김일희는 “뭐가 핵심인지 헷갈릴 때는, <김어준의 파파이스>, <황진미의 새가 날아든다> 같은 팟캐스트를 들으면 정리가 된다”고 했다.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에는 녹화하고 1주일 뒤 방송이 나가는 제작 여건상 한물간 개그가 될 우려가 크다. “그래서 보통 월수 검사(제작진 앞에서 아이디어를 검사받는 것)를 받지만 ‘엘티이 뉴스’는 녹화 전날인 수요일에 한번만 받는다.”(김일희)
‘엘티이 뉴스’의 강성범, 김일희가 제작진한테 코너 검사를 받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엘티이 뉴스’팀은 1주일간 정치·사회 뉴스를 섭렵한 뒤 회의를 거듭한다. 남지은 기자
■ 은유? 돌직구? 정치풍자도 전략 2014년 5월~2015년 1월 방송한 ‘엘티이 뉴스’가 화제를 모았던 건 이전과 다른 돌직구다. “교육부 장관 후보자 김명수씨는? (표절이요!) 국무총리 후보자 문창극씨는? (망언이요!)”처럼 실명까지 거론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구멍난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을 꼬집었다. 1983년 <유머 1번지> ‘회장님 우리 회장님’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정치풍자 개그는 은유적이었지만, 공개코미디 형식으로 바뀌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즉각 끌어낼 수 있는 돌직구형으로 변화했다. 돌아온 ‘엘티이 뉴스’는 작전을 바꿔 은유를 가미했다. “슈퍼문 보고 소원 빌었나요?”라고 물으면 “촛불 보고 빌었어”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제는 뉴스에서 실명 거론하며 하루 종일 보도하는데, 그걸 뛰어넘을 수 없어요. 다른 이야기 하듯 하는 게 맞아요.”(강성범)
풍자할 수 있는 범위는 넓어졌다. 1년10개월 만에 머리를 맞댄 이들은 과거에 견줘 자유로운 분위기를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예전에는 청와대의 청 자도 못 꺼내게 했는데, 이제는 청와대를 말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강성범) “피디가 다시 하자고 전화 와서는 이번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더라고요”(김일희) 그래도 암묵적 원칙은 있다. 한쪽으로 쏠려도 안 되고, 주장을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대놓고 ‘까는 것’은 안 된다. “아무리 대다수의 의견이 그렇다고 해도 소수의 의견도 존재하거든요. 중립을 지키려고 하죠.”(강성범) 회의 때 나온 “지구의 나이가 천년에서 최대 일만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대통령의 임기는 얼마나 남았을까요?”는 “너무 직접적”이라는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 19금도 안 된다. “23일 나온 청와대의 비아그라 구입 기사는 어떻게 해도 야하게 흐를 수밖에 없어, 결국 담지 못했어요.”(김일희)
■ 정치풍자 DNA는 타고난다 개그맨들 사이에는 ‘정치풍자 디엔에이는 따로 있다’는 말이 있다. 관심도 많아야 하고, 한마디로 속을 시원하게 하면서도 개그적으로 잘 비틀어야 한다. 김형곤으로 시작한 정치풍자 개그맨 계보는 유민상, 강성범, 김일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성범은 “정치풍자 개그가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2006년 <웃찾사> ‘형님뉴스’부터 ‘응답하라 1594’ 등 현안을 파헤치는 개그를 해왔다. 김일희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들은 뒤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최순실 사건도 1년 전부터 팟캐스트에서 떠들었던 얘기라 사실 놀랍지도 않았어요.”
공부도 많이 해야 하는 등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정권에 따라 가장 많이 휘둘리는 것도 정치풍자 개그다. 2012년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은 당시 박근혜 당선자한테 “(공약을) 지키길 바래”라고 반말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지금은 말할 수 있는 외압은 없었을까? 이들은 “직접적으로 우리한테 얘기가 온 것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한달에 두번은 했던 지자체 관련 행사를 1년 동안 두번밖에 못 하기는 했다”(강성범)며 웃었다. “피디들한테 시사코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었을 때 말을 흐리면 풍자가 힘든 시기구나 느껴요. 피디들한테 자유를 줬으면 좋겠어요.”(김일희) 김일희는 “그동안 지자체 행사 제안을 받으면 구청장이 어느 당인지 알아본 뒤 새누리당이면 프로필에 ‘엘티이 뉴스’를 빼고 보내는 등 알아서 조심했다”며 “김제동씨와 이승환씨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면, 외압이 있나 없나 신호가 보인다”고 웃었다. “‘엘티이 뉴스’를 왜 다시 하느냐고 아내가 걱정해요.”(강성범) “엄마는 지금이 기회라며 마음껏 하라고 응원해요.”(김일희)
가끔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걸 하고 있나, 누가 알아준다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들이 정치풍자 개그를 놓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치풍자 개그를 통해 많은 이들이 정치사회 현안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보면서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가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강성범) 1990년대까지는 전체 개그프로그램의 30%가 정치풍자였다. 그 찬란했던 시절이 다시 돌아올까. “다음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어쨌든, 요즘처럼 정치풍자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때는 두번 다시 없을 것 같아요.”(김일희)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이것만 알면, 당신도 강성범
풍자 개그 짜기 4단계
요즘 대한민국은 풍자공화국이다. 개그프로그램뿐 아니라 누리꾼들이 알아서 쏟아내는 정보가 엄청나다. ‘짤방’ ‘인물 패러디’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실댄다. 분위기 타고 ‘엘티이 뉴스’ 짜기에 도전해보자. 아이디어 짜내려 공부하다 보면, 대한민국이 더 깊이 들여다보인다.
STEP 1 그날의 신문과 뉴스를 모두 섭렵한다 정치풍자는 시의성이 중요하다. 그날 나온 신문·방송 뉴스를 섭렵한 뒤 공통적으로 다뤄지는 주제를 차례로 메모하자. 가장 중요한 현안이라는 뜻이다. 그날 발생한 기사도 챙겨두면 좋다. 공감대 형성할 수 있다. 음…, 요즘은 탄핵, 검찰 조사 시간끌기, 세월호 7시간, 촛불집회 등이 있겠다.
STEP 2 가장 많은 뉴스의 키워드를 파악하라 ‘촛불집회’가 가장 많이 다뤄졌다면, 인터넷 검색 등으로 내용을 들여다보고 흐름을 파악하자. 이번 촛불집회의 특징은 무엇이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 살핀 뒤 키워드를 정리한다. 참여 인원수가 많았다면, ‘국민 분노’가 키워드가 될 수 있다. 키워드를 나열해 현안과 연관지을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 트럼프-아베 만남, 조류인플루엔자 등 다른 키워드와 크로스할 방법은 없을까.
STEP 3 의문을 가져라 키워드를 갖고 궁금한 것들을 적는다. 국민들의 분노는 누구를 향하는 걸까? 아베는 만났는데 박 대통령은 언제 만나나? 왜 검찰 조사를 미룰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장들을 적다 보면, 연결지점이 보인다.
STEP 4 형식을 생각하라 ‘엘티이 뉴스’는 라임이 중요하다. 김연아와 박태환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받았다는 뉴스라면, ‘국민 여동생, 국민 남동생’이었던 이들의 단순 키워드를 활용해 “국민 여동생, 국민 남동생, 국민 개고생!”으로 연결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검찰 조사 시간끌기는 궁금증들을 나열한 문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아베 총리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과 트럼프와의 만남은 언제쯤?” “일단 검사부터 만나고!” 어, 한 대목이 나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