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48시간> 한장면. 티브이엔 제공
만약 당신이 48시간 뒤에 죽게 된다면? 하루아침에 70대 노인이 된다면? “이건 말도 안 된다”며 현실을 부정하다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고, 식음을 전폐하며 울다 지쳐 주어진 시간보다 더 일찍 세상과 안녕할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이건 확실하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선고받은 이는 부정, 분노, 협상, 우울을 넘어 결국엔 남겨진 자와 앞날까지 생각할 정도로 안정되는 ‘수용’의 단계에 이른다고 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후회도 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지 계획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 경험을 미리 하며 후회 없는 오늘을 살자고 말하는 예능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해 눈길을 끈다.
<티브이엔>이 30일 시작하는 <내게 남은 48시간>(수 밤 11시)은 출연자들에게 48시간 시한부 인생을 설정해주고 그들이 마지막 순간을 살아가는 여정을 들여다본다. 죽음의 선고가 배달됐을 때 숨가쁘게 변하는 감정과, 생애 마지막 시간 ‘인생을 통틀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서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전환점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전성호 피디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들여다보며 시청자들도 함께 공감하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미숙, 탁재훈, 성시경, 박소담이 출연한다. 방영 중인 <미래일기>(문화방송 목 밤 11시10분)는 하루 동안 60~80대가 되어‘미래’를 살며 ‘지금, 오늘’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한다. 매주 새로운 출연자들은 남편 혹은 부모, 친구와 노인 분장을 하고 의미있는 하루를 보낸다.
<내게 남은 48시간>의 한 장면. 티브이엔 제공
웃자고 만드는 예능에서 늙음과 죽음은 무거운 주제였다. <나 혼자 산다>(문화방송)에서 노홍철이 임종 체험을 하는 등 잠깐 소재로 활용된 적은 있지만, 이를 주제로 만든 프로그램은 없었다. 전성호 피디는 “죽음을 소재로 한 예능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랬던 예능이 죽음을 내세워 잘 살자고 말하는 것은 최근 부는 ‘힐다잉’(힐링+웰다잉) 바람과 맞물려 있다. 2009년 2월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런 죽음의 과정을 받아들인 고 김수환 추기경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웰다잉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아진 젊은이들도 입관 체험이나 유언장 쓰기 등 죽음을 미리 경험하며 인생을 반추하고 오늘에 힘을 얻는 행위가 인기를 얻고 있다. 전 피디는 “‘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현상을 반영했다. 죽음은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 죽음을 받아들일 때 밝을지 어두울지를 생각해보길 바랐다”며 “세상이 너무 엉망이고 혼란스러울수록 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체험만으로 감흥이 올까 싶은데, 제작진은 죽음과 마주한 출연자들이 내가 곧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에 의외로 몰입하더라고 했다. 전 피디는“출연자들이 내가 죽는다면 가장 뭘 하고 싶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더라”고 했다. <미래일기> 출연자들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듯 일제히 눈물을 쏟아낸다. 70살이 된 이천수를 본 아내는 “내 남편이 이렇게 늙는구나. 영원이라는 건 없구나, 세월을 못 막는구나 싶어 만감이 교차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 피디는 “우리 일상과 닮아 있는 편안한 리얼 예능에서 늙음과 죽음을 얘기하면서 오히려 시청자들한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내게 남은 48시간>은 섭외가 잘 되지 않았고, <미래일기> 시청률도 1~3%대에 그치는 등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은 많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은 웃음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한다는 점에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죽음을 앞둔 48시간을 보내면서,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를 70대 노인으로 살면서, 결국 부와 명예도 다 부질없더라는, 오늘을 잘 살자는 깨달음을 준다. 검버섯 핀 손,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니 “내가 어제 했던 고민은 고민이 아니구나 싶더라”는 이천수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시청자가 많다. 배우 박진희는 “늙어보니 내가 뭘 원하는지 명확해지더라”고 했다. 전 피디는 “결국은 ‘나를 돌아보며 오늘을 잘 살자’를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