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민진웅과 보이그룹 비원에이포(B1A4)의 진영.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올 한해 드라마계의 발견이라는 점이다. 민진웅은 <혼술남녀>에서 성대모사를 잘하는 공무원 시험 학원 강사 ‘민진웅’으로, 진영은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영의정 ‘김훤’(천호진)의 손자 꽃선비 ‘김윤성’으로 존재감을 빛냈다. 둘 다 절제된 연기로 복잡한 내면을 잘 드러냈고, 많은 이야기를 품은 듯한 눈빛 연기가 특히 좋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른 듯 닮은 둘을 차례로 만났다.
가수들이 배우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얼굴’이다. 배우는 표정으로 말하고, 얼굴 자체만으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데 훈련이 안 되면 쉽지 않다. 진영은 그런 점에서 독보적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가로로 긴 눈과 날렵한 턱선은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머리 올리고 얼굴을 다 드러내야 하니까 걱정부터 앞섰어요. 꼬리가 위로 올라간 눈도 콤플렉스였는데 갓을 쓰니 괜찮아 보였나 봐요. 처음에는 외모가 신경쓰였는데, 감독님이 연기 잘하면 잘생겨보인다고 해서, 연기에만 집중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손가락도 길다. 선이 고운 느낌이 사극에서 극대화됐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복잡 미묘한 내면을 묘한 마스크로 적절히 드러냈다.
진영은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에 반감을 갖지 않는다. “아이돌이라는 편견으로 보지 말라”며 노력보다 말이 앞서는 그들과 달리, 그는 책임감을 얘기한다. “본업이 가수이기에 다른 것을 할 때 더 눈여겨보게 되는 건 당연해요. 노력해서 그 말을 안 듣게끔 하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주연을 고집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배역부터 차근차근 밟아왔다. 2013년 <우와한 녀> 주인공 부부의 아들을 시작으로 2015년 웹드라마 <연애탐정 셜록케이> 등이다. 2011년 비원에이포 데뷔 전인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역부터 시작했다. “주연은 그만큼 힘들고 어깨가 무거운 자리잖아요. 오히려 작은 역부터 시작하면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단역 시절 가장 많이 듣던 이야기가 ‘왜 이렇게 긴장하냐'였는데 많이 출연하다 보니 서서히 긴장감이 사라졌어요. 경험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내 자리를 차근차근 넓혀간 데는 칭찬은 가려듣고 비판은 새겨듣는 자세도 한몫했다. <우와한 녀> 당시 단조롭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을 줄 알게 됐다. “윤성은 다 가진 풍족한 아이라 여유있게 행동할 거란 생각”에 손동작과 걸음걸이, 말투에도 여유를 담으려고 했단다. “예전에는 내 대사에만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상대방의 대사를 잘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러면 내 대사도 더 잘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는 “칭찬도 비판도 50%씩만 받아들이려고 하고 선플도 악플도 모두 챙겨 본다”며 “좋은 의견, 나쁜 의견을 취합하다 보면 어느새 괜찮은 결론에 도달한다”고 했다.
20대 중반 아이돌인데, 꽤 경륜이 밴 듯한 답변이다.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프로듀서 형 등이 대부분 40대예요. 형들한테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주현미의 ‘탄금대’라는 노래를 작사했다는데, 연예인의 끼를 물려받은 걸까. “충주 케이비에스 기자셨는데, 할아버지도 가수를 꿈꾸셨나? 어쨌든 제 최고의 모니터 요원이세요.” 비원에이포 음반 수록곡을 대부분 작곡하고, 걸그룹 아이오아이의 두번째 미니음반 수록곡 ‘잠깐만’을 작사, 작곡하는 등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바쁜 중에도 다양한 일을 병행했다. “잠을 줄이면 되는 걸요.” 원래 도전을 좋아한단다. “‘인생 뭐 있어?’라는 말을 자주 해요. 대충 살자는 게 아니라 어차피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겁먹지 말고 도전하자는, 나에게 거는 주문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일이 다 즐거워요.” 그는 “예능도 진행도 잘하든 못하든 부딪혀보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부딪혀 올라온 배우로서 다음 목표는 뭘까? “전쟁영화 찍고 싶어요.”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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