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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한겨레 프리즘] 이러려고 풍자 못하게 했나/남지은

등록 2016-11-06 17:25수정 2016-11-10 18:52

남지은

대중문화팀 기자

이미경 씨제이 부회장은 방송을 좋아한다. 직접 프로그램의 세밀한 부분까지 챙길 정도다.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를 재미있게 봐서 출연진을 초청해 식사 대접을 하기도 했다. 톱스타만 챙기는 방송사 간부들과 달리, 조연 한명 한명의 문자에도 답장을 해준다. “다른 건 몰라도 프로그램 제작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씨제이 피디들은 말한다. 그런 그가 2년 전 경영에서 손을 뗐을 당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예능 <에스엔엘 코리아>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광해> <변호인> 등 정권을 비판하는 듯한 영화를 배급·투자하면서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닐까 싶다가도 어김없이 이런 말들로 정리됐다. “설마 그런 걸로. 대통령이 쪼잔하게.” 우리의 대통령은 쪼잔했던 걸까? ‘대통령이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종용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른다.

박근혜 정부 들어 ‘정치 풍자자’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정권마다 풍자를 불편해하는 시선은 있었지만, 특히나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탓에 제대로 엄두를 못 냈다. 하기만 하면 바로 응징을 당했다.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은 메르스(중동기호흡증후군) 사태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풍자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인 ‘의견 제시’를 받았고, <무한도전>은 “낙타를 어디서 보냐”고 말했다고 같은 징계를 받았다. ‘여의도 텔레토비’도 결국 폐지됐다. 정치 풍자가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바뀌면서 2개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지상파에서 정치 풍자를 했던 한 개그맨은 “이유없이 출연 중이던 종편에서 잘리기도 했다”고 한다. 방심위가 결성된 2008년부터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2년까지 프로그램 제재는 약 28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10건이 내려졌다. 한 예능 피디는 “이명박 정권부터 정치 풍자가 힘들어졌는데, 이번 정권 들어서는 아예 엄두를 못 냈다”고 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엄포의 강도도 달라졌다. 정치 풍자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들은 심심하면 간부들한테 불려간다. ‘그 코너 재미없더라’는 식으로 에둘러 말하면 그만하라는 신호다. 이 정권 들어서는 아예 대놓고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단다. “나 한번만 살려주라” 애걸복걸하는 간부도 있었단다. 그 얘기를 무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그 정권이 정치 풍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정권마다 간부들의 살살 하라는 요구는 있었지만, 이번은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피디들은 말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풍자가 힘들었던 ‘숨은’ 이유는 또 있다. 대통령 자체가 국정 운영만큼이나 특징이 없기 때문이다. 바뀌지 않는 머리모양을 제외하면 개그적으로 소화할 만큼 개성이 없어 개그맨들한테 구미 당기는 대상도 아니라고 한다.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처럼 대통령마다 연설문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들이 있지만, 이번 정권은 그런 특징도 찾아보기 힘들다. 김영삼 대통령은 ‘와이에스’(YS), 김대중 대통령은 ‘디제이’(DJ),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 대통령’ 등 별칭이 있어 풍자도 쉬웠지만, 지칭하는 말들이 대부분 비하 표현이라 은유적 풍자도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반전이 일어났다. 보란듯이 온갖 풍자 거리를 쏟아내고 있다.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런닝맨> <무한도전> 등 예능의 자막으로 활용되고, 오방낭 주머니는 드라마 <옥중화>에 나올 정도로 화제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는 누리꾼들의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다. 알고 보니 다른 누군가한테 조종되고 있었다는 아바타 패러디까지. 그를 조종한 ‘숨은 실세’의 신발 한짝 벗어던지는 신데렐라 패러디는 또 어떻고. 그간 못다 한 풍자 마음껏 해보라는 듯 막판 ‘열일’하는 대통령에 제작진과 개그맨들은 환호한다. 한 드라마 작가는 “연설하고 나가면서 신발 한짝 벗겨지면 바로 대통령 풍자가 되는 게 아니겠느냐”며 신나했다. “우리 마음껏 풍자하게 해달라”던 이들의 간절함에 온 우주가 도왔던 걸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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