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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연예계 분노에서 우주의 기운이 느껴진다

등록 2016-11-03 18:16수정 2016-11-03 21:42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예계도 들썩
가수 이승환 ‘하야’ 펴침막 내걸고
배우 신현준은 ‘촛불’로 마음 표현
김제동·윤도현·김의성 뿐만 아니라
소신 밝히길 꺼리던 아이돌도 가세
방송선 ‘우주의 기운’ ‘오방낭’ 패러디
“이 심정을 어떻게 한마디로 얘기합니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현 시국에 대한 생각을 묻자, 한 방송인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몇날 며칠 밤을 지새워도 다 못할 이야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다른 행동으로 심정을 대변할 게 있을까 고심 중”이라고 했다.

최순실씨가 움직인 건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최씨 ‘덕분’에 연예인들도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사회·정치적 현안에 입장을 잘 표명하지 않던 이들까지 함께 나서는 게 다르다. 촛불을 들고 펼침막을 거는 등 태도 또한 훨씬 적극적이다.

가수 이승환이 소속사 건물에 내건 펼침막. 페이스북 갈무리
가수 이승환이 소속사 건물에 내건 펼침막. 페이스북 갈무리
■ 촛불 들고 ‘박근혜 하야’ 행동에 나서다 지난 2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울 강동구 기획사 드림팩토리 건물에 ‘박근혜 하야하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펼침막이 걸렸다. 가수 이승환의 소속사다. 국정교과서 등 여러 현안에 목소리를 냈던 그이지만, 이번에는 더 적극적이었다. 이 펼침막은 구청 직원의 방문 뒤 내려졌다. 그러나 다음날인 3일 이승환은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다시 펼침막을 내걸었다. 이번에는 오는 12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 참석을 권유하는 내용을 추가로 담았다.

그의 행동에 많은 이들이 지지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승환은 2일 페이스북에 “동료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제 생각을, 제 행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결국 소원해진 관계도 많아져 버렸다. 혼자가 아니란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오늘이다. 선한 영향력을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이 옳다”고 썼다. 그의 말대로 선한 영향력은 번져가고 있다. 한 배우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그를 보며 내가 부끄러워진다”며 “촛불집회나 1인 시위 등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다는 용기가 생긴다”고 했다. 배우 신현준은 촛불집회가 있던 지난달 29일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한 손에 촛불을 든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방송인 김제동 페이스북 갈무리
방송인 김제동 페이스북 갈무리
■ ‘심정 표현…수사 촉구’ 뜨거운 SNS 에스엔에스에 심정을 담는 일은 더 확산되고 있다. 김제동은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달 29일 “국민이 역할을 다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왔구나. 길 지나가는 모든 이의 뒷모습에 마음으로 깊이 머리 숙였습니다”라고 적었다. 최순실씨가 귀국 직후 건강상의 이유로 몸을 추스를 여유를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온 30일에는 “지금 그런 위로와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입니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꽁꽁 숨었던 최씨가 검찰에 출석한 30일은 에스엔에스가 뜨거웠다. 오상진은 최씨가 검찰에 출두한 뉴스 화면과 함께 “그녀가 왔다”라는 짧지만 강렬한 한 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윤도현은 지난 2일 “검찰이 쥔 열쇠가 제발 희망의 문(으로 가는) 열쇠이기를. 이런 시국에 검찰도 너무나 힘들겠지만 잘 부탁한다. 국민이 간절히 바란다”고 썼다. 김의성은 “가장 화가 나는 건 몰랐을 리 없는 사람들이 몰랐다고 잡아떼는 것이다”라며, 연루된 이들을 향해 일침을 날렸다. 현안에 소신을 잘 드러내지 않던 아이돌도 나섰다. “이 난리통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거라는 걸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양파는 까면 깔수록 작아지는데 이건 깔수록 스케일이 커지냐”(투피엠 황찬성), “나라가 어순실해서 모두 화가 났나요”(배우 전혜빈)처럼 말놀이로 시국 풍자에 나선 사례도 있다.

<런닝맨> 갈무리
<런닝맨> 갈무리
<런닝맨> 갈무리
<런닝맨> 갈무리
■ 예능·드라마도 ‘최순실 풍자’ 한목소리 최순실의 힘은 각 방송사 예능·드라마까지 한마음으로 만들었다. <개그콘서트> ‘1 대 1’과 <무한도전>의 풍자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일요일이 좋다-런닝맨>과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의 프로그램들까지 나선 건 이례적이다. <런닝맨>은 지난달 30일 방송에서 ‘아바타 하우스’라는 콘셉트로 초대손님들이 진행자들의 주인이 되어 그들을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내용을 방송했다. 대통령이 최순실의 꼭두각시였다는 의혹을 연상케 한다. 또 게임 중 “순하고 실한 주인 놀리는 하바타”, “비밀실세 그분이 시키는 대로”, “실제론 참 순하고 실한데”, “감히 이 하우스의 실세는 난데” 등의 자막을 잇달아 내보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지난달 30일 샘 해밍턴의 강아지가 배우 기태영의 딸 로희가 과자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장면에서 “간절하게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자막을 달았다. 관계자는 “절대 아니다”라고 하지만, 개의 마음이라는 것을 두고 단순한 표현 이상의 더 깊은 풍자가 담겼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달 29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현 남한 정권을 바라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마음이라며 누리꾼들이 사용하는 김정은 ‘움짤’(움직이는 이미지를 뜻하는 온라인 용어)과 “아… 이건…”이라는 자막이 등장했다. 오방낭이 등장한 드라마 <옥중화>에 이어, <막돼먹은 영애씨>에서는 극중 이영애(김현숙)가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에서 자막으로 “말 타고 ‘이대’로 가면 안 돼요”, “말 좀 타셨나 봐요. 리포트 제출 안 해도 B학점 이상”이라고 표현했다.

과거에 견줘 연예인들과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뭘까. 한 방송사 관계자는 “현안을 빗댄 풍자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이번 사안은 해도 해도 너무한 역대급 사건이라 정상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모두가 누가 잘못한 것인지를 알기에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풍자를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풀이도 있다. “죽은 정권, 눈치 볼 게 뭐 있겠나.”(한 배우)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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